서론
성경에는 의미 있는 숫자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런 숫자들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도 있습니다. ‘수(數)신학’이라고 합니다. 숫자가 지닌 의미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성경에 많은 숫자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복된 숫자는 ‘7’입니다. 우선 7은 창조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은 안식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도 6일 동안 일했다면 하루는 쉬어야 합니다. 쉼과 복의 날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날을 구별하여 지키도록 십계명 중에 제4계명을 넣어두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중요한 숫자는 거의 7인 경우가 많습니다. 유대인의 절기가 7가지이고, 무교절이 7일 동안 지켜졌으며, 오순절도 안식일이 7번 지난 후 그 이튿날에 지킵니다. 안식일도 7일째 되는 날이고, 안식년도 7년째 되는 해에 지킵니다.
또 7월 10일은 대속죄일인데, 대제사장이 숫염소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소 위에 피를 뿌립니다. 그리고 지성소에서 나와 성막 뜰에 있는 번제단에 피를 또 뿌립니다. 몇 번 뿌렸을까요? 7번씩 뿌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안식년이 7번 반복 되고 그 이듬해인 50년이 되는 해, 즉 ‘희년’(Jubilee)에 대해서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희년은 49년째도 안식년이고, 50년째도 안식년이기 때문에 두 해를 계속해서 안식하게 됩니다. 오늘은 다섯 가지 주제로 희년에 대해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Ⅰ. 희년 제도의 기본은 ‘안식년 제도’에 있다.
희년은 특별한 안식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식년에 관해서는 출애굽기 23장 10~11절에 “너는 여섯 해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네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6년 동안은 씨를 심고 열매도 거둬 먹고 살지만 7년째 안식년이 되면 씨를 뿌리지도 않고 열매도 거두지 않음으로 일절 농사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동안 농사를 짓지 않고 무엇을 먹고 살겠습니까? 물론 파종하지 않아도 저절로 자라는 과실이 있었지만, 그런 열매는 자기 땅에서 난 것이라고 해서 저장의 목적으로 거둘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안식년에 하나님이 주시는 곡식들은 특정 주인이 없는 것이고, 누구나 와서 먹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때는 절도죄가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안식년에 하나님이 저절로 주시는 양곡들은 공동소유가 됩니다. 아무나 먹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심지어 짐승들까지 돌봐야 한다는 것이 안식년의 첫 번째 정신입니다.
신명기 15장 1~2절에는 “매 칠년 끝에 면제하라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무릇 그 이웃에게 꾸어준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 해는 여호와의 면제년이라 칭함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식년을 ‘면제년’이라고도 불렀습니다.
형제들끼리 서로 돈을 빌려줬다면 안식년 끝에 형제가 돈을 갚지 못해도 빚을 탕감해 주라는 것입니다. 7년째가 될 때까지 갚을 능력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안식년이 되면 면제해 주도록 했습니다. 빚을 졌는데, 면제 받은 사람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안식년은 가난한 사람이나 빚진 사람에게 엄청나게 좋은 해입니다.
또 신명기 15장 12절에 “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육 년을 너를 섬겼거든 제칠년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것이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안식년이 아니라 할지라도 형제가 종이 되었다면 7년째에는 풀어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당하는 말씀이지 블레셋, 암몬, 모압과 같은 이방 백성들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방인에게 돈을 빌려줬다면 끝까지 가서 받아야 하고, 이방인들을 종으로 삼았으면 안식년이 되어도 자유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안식년은 이스라엘 백성과 형제들에게 국한되어 이뤄지는 제도입니다. 안식년이 되면 토지도 쉬고 사람도 쉬고 빚도 면제해 주고 노예로 삼은 형제가 있으면 풀어 자유를 주라 하시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좋은 제도입니까?
안식년을 주신 목적은 다섯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땅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이 땅을 등기해서 가지고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다 죽으면 소유권이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갑니다. 그러니까 땅의 궁극적인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것을 살아있는 동안 인간이 빌려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으면 다시 반납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토지공개념을 도입하자고 주장하는데, 땅의 주인은 국가가 아닙니다.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우리가 사는 동안 땅을 소유하고 살아도, 근본적인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안식년을 주신 것입니다.
둘째, 사람이나 땅이나 6년 정도 일하고 사용했다면, 1년은 쉬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1년간의 휴작을 통해서 땅의 생산력을 회복할 수 있게 되고, 산성화를 막을 수 있게 됩니다.
미국은 국토가 넓기도 하지만 1년 정도 땅을 쉬게 합니다. 우리나라도 6년 동안 농사를 지었다면 가급적 1년은 쉬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소출을 늘리고, 토지의 산성화를 막아 양질의 양곡을 생산해 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양곡을 먹는 사람들이 건강해 집니다. 토지를 쉬게 하지 않으면 좋은 양곡을 얻을 수 없고, 사람의 몸도 산성화되기 때문에 아토피나 각종 피부질환들이 생기게 됩니다. 안식년은 토지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토지도 쉬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 인간도 쉬어야 합니다. 인간도 무한정 계속해서 일만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쉬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영적인 생활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일하면서 소홀했던 기도, 말씀, 예배 등 영적 생활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 사람이 농사를 계속하다 보면 재물을 쌓는 재미에 탐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식년을 통해서 탐욕을 버리고, 주변의 가난한 이웃들과 동물들의 생명을 존중하는 법도 배우도록 하셨습니다. 나 하나만 잘 먹고 잘 살고 보자가 아니라 타인의 삶도 고려하며 살라 하시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위해 6년을 투자했다면 1년은 타인을 생각하며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사회이든지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면 결국 부유한 사람들도 피해를 받게 됩니다.
다섯째, 안식년은 인간의 궁극적인 안식이 천국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언젠가 천국의 안식을 누리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천국 사모하는 신앙을 갖도록 하시기 위해 안식년 제도를 세우셨습니다.
Ⅱ. 희년의 기본정신은 ‘자유를 공포하는 것’이다.
희년이 되면 자유를 공포해야 합니다. 10절에 “제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이런 자유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해방된 날입니다. 그 날 온 국민이 자유를 경험하였습니다. 저는 광복의 기쁨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지만, 연세가 80이 넘은 어르신들은 그 느낌을 기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당시 일본으로부터 얻은 자유가 얼마나 귀중합니까?
그런데 그 자유를 공산주의자들에게 다시 빼앗길 수 있겠습니까? 지금 북한의 김정은이 핵을 만들고 미사일을 쏘면서 미국을 견제하고 있습니다. 차후 남한을 공격하게 되면 미국으로 하여금 끼어들지 못하게 하려는 심산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사일의 사정거리가 미국 본토까지 이른다는 것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의 모습을 그대로 본 따서 테러하는 방법을 실전으로 훈련하고 있다고 합니다. 서울에 테러가 발생하면 이 사회가 얼마나 혼란스러워지겠습니까?
우리 국민들도 정신을 차리고 국가 안보에 힘써야 할 줄로 믿습니다. 어떻게 얻은 자유인데, 공산주의자들에게 빼앗길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희년은 온 백성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50년째를 거룩하게 하여 자유를 공포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희년의 자유는 ‘R’로 시작되는 세 단어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Return’(돌아가다)입니다. 13절에 “이 희년에는 너희가 각기 기업으로 돌아갈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기업’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12지파별로 배분해 준 땅을 일컫습니다. 이 땅은 대대로 팔 수 없는 땅(기업)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고 살기 어려워지자 그 땅을 팔아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이 기업을 50년째, 즉 희년이 되면 도로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기업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잃어버렸던 자기 땅을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너의 기업으로 돌아가라!”(Return to your inheritance). 이것이 희년의 복음입니다.
그런데 희년이 오기 전이라도 친척이 그 땅을 무르면, 기업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을 ‘기업 무를 자’(Kinsman-Redeemer)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기업 무르는 사람을 히브리어로 ‘고엘’이라 했습니다. 혹시 고엘이 없다고 할지라도 50년이 되면 모든 사람이 원래 땅으로 돌아가고 기업을 다시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 46장 17절에 기록되어 있는 ‘희년’을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땅을 되돌리는 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둘째, ‘Release’(풀어 놓다)입니다. 자유를 주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남에게 빚을 져 종이 되었다면 6년 동안 일하고 안식년에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6년이라도 도중에 희년이 찾아오면 무조건 자유를 베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레위기 25장 39~41절에 “네 동족이 반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품꾼이나 우거하는 자 같이 너와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 그 때에는 그와 그 자녀가 함께 네게서 떠나 그 본족에게로 돌아가서 조상의 기업을 회복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희년까지 섬기게 하라”는 것은 안식년이 되기 전이라도 희년이 오면 자유를 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년을 ‘여호와의 은혜의 해’라고도 하였습니다.
이사야 61장 2절에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는 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감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금일부로 모두 석방이라고 한다면 죄수들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까지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보통 날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희년입니다.
셋째, ‘Rejoice’(크게 기뻐하다)입니다. 희년은 기쁨을 되찾는 해입니다. 자유를 되찾은 자에게 나타나는 가장 큰 감정은 ‘기쁨’입니다. 잃었던 땅과 자유를 되찾는 사람에게 기쁨이 있을 수밖에 없죠. 희년을 히브리어로 ‘요벨’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에서 ‘희년’을 뜻하는 ‘Jubilee’와 ‘환희, 큰 기쁨’이라는 의미의 ‘Jubilation’이 파생되었습니다.
그런데 요벨은 ‘양각 나팔’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희년이 되면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모세 시대에는 은으로 만든 나팔이 있었는데, 희년에 부는 나팔은 은 나팔이 아니라 양의 뿔을 잘라 만든 양각 나팔이었습니다. 희년이 오면 전국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양각 나팔을 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지배에서 해방되고 난 후 학교에서 이런 노래를 가르치고 배웠습니다. “따따따 따따따 주먹손으로 따따따 따따따 나팔 붑니다 우리들은 어린 음악대 동네 안에 제일가지요.” ‘어린 음악대’라는 이 노래 가사 속에는 주먹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불면서 기쁨과 환희를 표현하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 이 노래를 부르고 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희년에는 양각 나팔을 붑니다. 자유를 공포하여, 땅과 자유를 되찾고, 기쁨과 회복을 누리는 복된 해인 것입니다.
Ⅲ. 진정한 희년이 도래할 수 있는 근거는 ‘그리스도의 속죄’에 있다.
9절에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지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희년의 시작이 7월 10일 속죄일(욤 키푸르)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희년은 속죄일로부터 시작됩니다.
대제사장이 속죄함으로 희년이 1년 동안 지속되고 이듬 해 7월 9일까지 계속됩니다. 속죄일은 대제사장이 제사를 드리는 날인데, 다섯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겸비의 날’(Day of Humiliation)입니다. 대제사장의 화려한 의복을 벗어 놓고, 일반 제사장 복장으로 지성소에 들어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낮추는 날입니다.
둘째, ‘죄를 전가하는 날’(Day of Imputation)입니다. 대제사장은 속죄일이 되면 염소 두 마리를 데려다가 그 중 한 마리는 ‘아사셀’이라 해서 그 머리에 안수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난 1년 동안 지은 모든 죄를 전가하여 광야로 내 보내 죽게 합니다. 백성들의 모든 죄를 염소에게 전가하는 것입니다.
셋째, ‘대표로 속죄하는 날’(Day of Representation)입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을 대표해서 지성소에 들어가 나머지 한 마리의 염소를 죽여, 그 피를 가지고 속죄소 위에 일곱 번 뿌립니다. 그러면 백성들의 죄가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넷째, ‘죄 사함의 날’(Day of Purification)입니다. 속죄일은 백성들이 지난 1년 동안 지은 모든 죄에 대해 정결함을 받는 날입니다.
다섯째, ‘통회하는 날’(Day of Contrition)입니다. 속죄일은 백성들이 스스로 괴롭게 하고 회개하는 날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겸비하시고, 택하신 백성의 죗값을 자기에게 전가하셔서 하나님 앞에 십자가 속죄제사를 드림으로 모든 죗값을 갚아주신 ‘속죄’(Redemption)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스스로 통회하며, 죄를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진정한 기쁨의 해, 즉 희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저는 28살에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는데, 그 전에는 매일 음주가무를 즐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보니 세상의 그 어떤 일을 해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대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기쁨을 찾고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니 하늘의 기쁨이 제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나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기쁨은 속죄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속죄가 없이는 희년도 없습니다.
Ⅳ. 희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진 믿음을 보일 기회이다.
희년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초신자들은 가끔 “어떻게 주일을 쉴 수 있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진짜 믿음이 있는 성도는 6일 동안 일하면 주일에 일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복 주실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주일에 돈 벌이를 하지 않고 오직 영적인 생활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때론 어리석은 짓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주일을 지키지 않고 사는 사람은 돈을 벌어도 정작 써야 할 때가 되면 돌아가시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부자로 살기는 좋아도 부자로 죽기는 억울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죽을 때는 돈이 아무 소용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 12:20)
성도는 6일 동안 일하고 하루는 무조건 쉬어야 합니다. 일을 하지 않아도 복을 주신다는데 왜 일을 합니까?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송하며 복을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도 믿음이 요구되지만, 49년째부터 50년째까지 계속되는 희년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욱 큰 믿음이 요구됩니다. 안식일 하루를 일하지 않고 지키는 것도 힘든 일인데, 2년 동안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먹을 것을 다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49년째부터 2년을 쉬어야 하기 때문에 48년째 되는 해는 3년 먹을 양식을 거둬야 합니다.
20절에 “혹 너희 말이 우리가 만일 제칠년에 심지도 못하고 그 산물을 거두지도 못하면 무엇을 먹으리요 하겠으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나?”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21절에 “내가 명하여 제육년에 내 복을 너희에게 내려 그 소출이 삼 년 쓰기에 족하게 할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땅을 향해 명령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내년부터 희년이 시작되는 것 알고 있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3년치 소출을 내야 한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땅을 향해 명령을 내리시면 땅이 순종하고, 풍랑 이는 바다를 향해 명령하셔도 곧 잔잔해 집니다. 바다가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땅을 향해 3년치 소산물을 내라 하시면 순종하여 풍성하게 수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업이나 장사를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부자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셔야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 사업과 가정에 하나님의 복된 명령이 하달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의 가정에 복 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희년을 지킨다는 것은 보통 믿음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적어도 앞으로 3년 동안 먹을 양식을 공급해 주실 것을 믿는 자만 희년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년은 일종의 믿음 테스트입니다.
Ⅴ. 희년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안식년을 잘 지켰을까요? 그렇지 못했습니다. 노예를 풀어주고 빚을 탕감해 주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탐욕 때문에 하지 못했습니다. 희년은 차치해 두고 안식년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490년 동안 70년이나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다 백성들이 70년의 안식년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댓가로 바벨론 포로생활을 70년 함으로써, 그 땅은 70년의 안식년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역대하 36장 21절에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안식년 지키지 않은 것을 하나님은 다 계수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 보응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것인 십일조를 떼어 먹은 적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은 모두 계수하셨다가 찾아가십니다. 도둑과 사기꾼들이 앗아가고, 병원에서 가져가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것을 모두 회수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70년간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땅은 70년 안식년을 모두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안식년, 희년 모두 지키지 않았습니다.
한 유대인 랍비의 문헌을 보니, 이들은 지금도 희년을 지키지 않는다고 합니다. 희년은 가나안 땅에 12지파가 모두 있었을 때 지켜야 하는 규례라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12지파가 없기 때문에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합니다. 유대교를 믿으려면 똑바로 믿어야지 제대로 지키지도 않으면서 유대인의 특권만 주장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희년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는 것이 희년의 가치를 손상시키지는 않습니다. 누가복음 4장 17~19절에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첫 설교에서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온 목적이 희년을 선포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나의 속죄 사역으로 말미암아 주의 은혜의 해가 오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희년이 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지금 신약시대가 바로 희년입니다. 우리는 지금 희년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통회하고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으면 죄로부터의 자유, 마귀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잃어버린 천국의 땅을 되찾게 되는 희년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신약시대가 바로 희년의 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결론
어떤 사람은 희년 제도를 문자 그대로 실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키지 못한 것을 우리가 어떻게 지킬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십계명에 희년 지킬 것을 계명으로 넣지 않으시고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만 넣으신 것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희년 지키지 못할 것을 알고 그러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어떤 사람은 희년을 지키고 토지공개념을 해서 토지를 각 가정에 나눠주고, 빚도 다 탕감해주고, 죄수도 다 풀어줘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나라가 엉망이 됩니다. 이런 주장은 공산주의자들이나 하는 것이지, 희년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희년은 누구든지 영적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하늘의 참 기쁨을 누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희년의 자유를 누리십니까? 천국의 영원한 안식을 소망하고 사십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미래를 책임져 주십니다. 가까운 미래가 아니라 영원까지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희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희년의 나팔을 불고, 희년의 자유와 기쁨을 마음껏 누리며 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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