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는 총 34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1~4장까지는 왕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슨 일을 베풀어 주었는지에 대한 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 주시고 광야 40년 동안 먹을 것도 주시고 또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다 물리쳐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4장 44절부터 26장까지는 왕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5장부터 11장까지는 기본적인 삶의 원리를 다루고 있고 12장부터 26장까지는 그 구체적인 원리의 적용문제를 다루고 있고 27장부터 34장까지는 왕이신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하게 되면 받게 되는 상벌에 관한 규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5장부터 11장에서의 기본적인 삶의 원리는 십계명으로 요약이 됩니다. 하나님이 구원받은 성도에게 십계명을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더 강력하게 요약하면 신명기 6장 5절이라는 것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또 신명기 6장 10절 이하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원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구원받게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미 애굽에서 구원받았기 때문에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축복받는 삶의 원리로 삼고 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축복의 조건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고, 칭의의 조건이 아니라 성화의 조건을 말씀하는 것이고, 기본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건설구원의 조건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신명기 6장 10~25절까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겪게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이고, 둘째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항상 복을 누리며 살기 위한 7가지 권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가난안 땅의 삶에 대한 경고와 권면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I. 가나안 땅에서 겪게 될 위험에 대한 경고(10~12절)
첫째, 실제적이고 큰 위험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금 모세는 모압 평야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새로운 세대들에게 닥치게 될 여러가지 위험을 6~8장까지 경고하고 있습니다. 먼저 신명기 7장에는 가나안 땅에 강한 일곱 족속이 이스라엘을 대적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그러나 이방 족속이 아무리 대적하더라도 그들을 조금도 두려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신명기 7장 21절에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심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이방 원수들의 공격은 무서워할 것이 없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공격의 위험은 있다라고 하는 것이 7장의 내용입니다.
신명기 8장에서는 광야 40년 동안 받은 교훈을 잊어 버리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광야 40년 동안의 교훈은 신명기 8장 16절에서와 같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고 마침내 복을 주려 하심이라”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영적인 교만심을 경계해야 복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신명기 7장은 가나안 일곱 족속의 위험이고 신명기 8장은 영적인 교만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둘째, 신명기 6장은 번영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 두 가지 위험보다도 실제적으로 더 큰 위험을 7장과 8장에 앞서 경고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번영의 위험(danger of prosperity)입니다. 사람이 잘 먹고 잘 살게 되면 신앙을 버릴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위험을 지금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새로운 세대에게 번영을 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신명기 6장 10~11절에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게 하사 너로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라고 했습니다. 모압 평야에서 모세의 강론을 듣고 있는 세대는 축복된 세대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실제로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도 자기의 묻힐 마므레 동산만 가지고 있을 뿐이지 약속의 땅을 유업으로 갖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새로운 세대는 그 땅을 다 소유하게 되고 그 땅에서 온갖 복을 다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새로운 세대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도시를 얻고 집을 얻고 우물을 얻고 포도원을 얻고 감람나무까지도 다 공짜로 얻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좋은 말씀입니까? 40년 동안 광야에서 고생만 했는데 이런 축복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들의 기쁨과 기대감은 정말 충만했을 것입니다.
잠언 13장 22절 후반에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고 했습니다. 죄인들이 부지런히 돈을 벌어놓으면 의인들이 그것들을 다 쓰게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대로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이처럼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복들은 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은 다 좋은 것이고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배불리 먹고 마시고 누릴 때에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가나안 일곱 족속의 위험보다도 더 크고, 영적인 교만심의 위험보다도 더 큰 위험이라는 것입니다. 그 문제가 뭐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문제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 12절에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번영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번영의 위험은 복을 주신 하나님을 잊게 되는 위험을 낳게 되기 때문입니다(forgetting God). 그래서 다른 사람이 어떠하든지 상관치 말고 너 자신은 번영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단순히 기억에서 사라진다는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행동의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들을 누리기 위해서 하나님을 밀어내고 고의적으로 무시하고 멸시하고 아는 척을 안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의 목적이 이제부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 아니라 도시와 집과 우물과 포도원을 더욱 발전시키는데 관심과 목적을 두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축복만을 신뢰하고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주신 축복만 좋아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도 동일한 위험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춥고 배고프고 가난하고 살아갈 힘도 없을 때는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습니다. 기도도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조금 일이 잘 되고 소득이 생기면 기도부터 포기하고 직장생활이 바쁘다면서 예배부터 빼먹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행동으로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공통적인 죄성입니다. 모세는 이런 위험을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전 세대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해서 번영을 이룬 것을 다음 세대에 제대로 넘겨 주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그 모든 좋은 축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기본적인 원리를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잊어버림으로 국가적인 위기가 오게 되고 가정적인 위기와 개인적인 위기가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위기는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는 사실을 인식으로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잊어버릴 때에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넷째, 모세 이후에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음으로 인해서 포로되는 고통을 겪었다고 선포를 하였습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호세아 13장 5~6절에 “내가 마른 광야에서 너를 권고하였거늘 저희가 먹이운대로 배부르며 배부름으로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인하여 나를 잊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린 결과 호세아의 예언대로 B.C 722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면 결국 큰 위험과 위기가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머리로만 잊어버리는 것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잊어버리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나 영광 돌리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II. 가나안 땅에서 복을 누리며 살기 위한 7가지 권면(13~25절)
첫째는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 13절 전반부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라고 했습니다. 신명기의 가장 중요한 명령 가운데 하나가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가 하면 사망과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무서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에 14번이나 반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히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능히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며 능히 부자가 되게 하시고 부자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하게도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 율법서에서만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강조한 것이 아닙니다. 지혜서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잠언 1장 7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고 잠언 9장 10절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참된 지식과 지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함부로 대하는 자는 지식과 지혜의 근본도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말씀이나 잠언의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께 경외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섬기며 살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 13절 중반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항상 행복할 수만은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문제나 시기와 다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게을리하거나 사람 때문에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 13절 후반에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내 말이 진실인가 아닌가를 호소하는 궁극적인 대상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맹세한다’라는 말의 뜻은 만일 내 말이 거짓이라면 하나님이 나를 저주하시고 만일 내 말이 진실이라면 하나님이 나를 변호해 달라는 요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은 하나님이 공의의 심판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이심을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왜 모세는 맹세하라고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거짓된 맹세나 잘못된 맹세와 같은 맹세의 오용이나 남용하는 것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할 경우도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않고서는 풀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녀가 동침을 했어도 합의에 의한 것인지 강압에 의한 것인지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알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면 믿어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짓 맹세를 했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가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맹세를 통해서 자신의 억울함이 풀릴 수 있다고 한다면 진실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다른 이름으로 맹세하지 말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라고 한 것입니다.
넷째는 다른 신들을 좇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 14절에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양한 신들을 믿는 가나안 일곱 족속에 둘러쌓여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고 유일신 사상을 주장하면 이방 백성들은 조롱하고 비방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의 신들도 신적인 역사를 행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신적인 역사를 행하고 예언이나 능력을 행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 이외에는 다 악신이고 타락한 영물들이고 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들이지 참 하나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심을 강조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의 거짓된 신들에게 미혹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21세기는 다른 형태의 위험이 있습니다. 바로 모든 종교는 이름은 달라도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는 종교 다원주의입니다. 종교 다원주의는 가나안 일곱 족속이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참 하나님은 다른 이름을 가진 하나님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만이 참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되시는 참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은 악신들이고 거짓된 신들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알게 되는 아버지가 참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3절에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참 하나님을 믿을 수 없게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젊은 시절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훌륭한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노년 시절에 배교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라는 종교 다원주의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솔로몬의 길을 따른 우매한 설교자요 배교자의 길을 간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길을 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 침례교의 정신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는 교단입니다. 아무리 어떤 사람이 기상천외한 소리를 한다 하더라도 성경에 없는 것은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대로 하나님만을 좇고 다른 신들을 좇지 않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다섯째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 16절에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17장 7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비딤에 도착했을 때에 물이 다 떨어지자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물이 필요할 때 하나님이 과연 그들 가운데 계신가 아닌가를 시험하기 위해서 모세에게 물을 달라고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시험했다는 의미로 그곳을 맛사라고 불렀고 하나님과 다투었다는 의미로 므리바라고 불렀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물건을 생산하면 시험을 거쳐야 합니다. 회사가 광고하는 대로 말하는 것과 동일한 성능을 가진 제품인가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시험했다는 것은 모세가 말하는 것과 하나님이 행하는 것이 진짜 같은가를 자기들이 시험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을 주시면 하나님을 믿을 것이고 안 주시면 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은 4장 6절에서는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해서 성전에서 뛰어내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천사들이 발을 받쳐 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게 될 것이라고 시험했습니다. 예수님은 신명기 6장 16절을 인용해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주시면 믿고 안 주시면 안 믿는다는 기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기도와 같은 것입니다.
여섯째는 하나님의 명령과 증거와 규례를 지키라는 것입니다(17~19절). “여호와의 명령과 증거와 규례를 지키는 것은 선량한 일이고 순종하면 너희 대적들을 모두 쫓아낼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신명기에서만 ‘삼가 지키라’는 동사가 30번 이상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은 옳은 일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익한 일이고 원수들과의 싸움에서도 승리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일곱째는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규례를 가르치라는 것입니다(20~23절). 후손들에게 기록된 역사와 하나님의 규례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나중에 때가 되면 ‘여호와의 명하신 말씀과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고 그런 것이 우리에게 왜 필요한가?’ 라고 물을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몰라서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시비를 거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럴때 후손들을 앉혀 놓고 자세히 출애굽의 모든 역사를 사실 그대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역사를 왜곡하면 그 후세대는 장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6장 7절에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일학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주일학교 봉사를 하고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게 되면 나중에 자녀들이 다 신앙을 떠나게 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고 결국은 복을 누리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이러한 경고와 권면을 지켜야 했습니까? 신명기 24~25절에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로 오늘날과 같이 생활하게 하려하심이라 우리가 그 명하신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첫째로 성도가 축복받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항상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원리라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참으로 축복받은 나라입니다. 전세계에 어디를 보더라도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급속도로 발전한 나라를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불과 60년 전만 해도 지금의 대한민국을 감히 상상도 못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놀라운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날과 같이 복을 계속해서 누리고 받으려면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겨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성화를 이루는 의로움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의롭게 사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칭의라는 의미의 의로움이 아니라 성화를 이루는 의로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게 사는 길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사는 것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이 불의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의롭게 사는 길은 예수 믿고 사는 길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축복받고 의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 명령과 권면을 잘 따르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과 같은 복을 누릴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잊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하고 살면 우리 후손들도 항상 복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 성도들과 우리 후손들에게 복이 되는 말씀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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