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는 모세가 모압 평야에서 율법을 두 번째로 강론한 것입니다. 모세가 두 번째로 강론을 했던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을 지나는 동안에 그들의 자녀들이 다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광야에서 성장한 새로운 세대에게 율법을 다시 한번 강론하게 된 것입니다.
모세의 제1강론은 신명기 1장 6절에서 4장 43절까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제1강론은 종주권 언약문서의 역사적 서언 부분에 해당하는 것으로써 왕이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어떠한 일을 행하셨는지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별히 바산 왕 옥과 아모리 왕 시혼의 두 왕을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물리치게 된 사건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압 평야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제 요단강만 건너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모세의 첫 번째 강론의 내용입니다.
모세의 제2강론은 신명기 4장 44절에서 26장 19절까지로 율법의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은혜를 베푼 왕이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요구사항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2강론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먼저 신명기 5장 6절에서 11장 32절까지로 율법의 기본적인 명령들을 다루고, 신명기 12장 1절에서 26장 19절까지는 구체적인 율법의 적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왕이신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의무사항을 요약한 것이 바로 신명기 5장의 십계명입니다. 그런데 신명기 6장 1~5절은 이 율법의 명령을 한 층 더 요약한 것입니다. 신명기 6장 5절에 보면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요약하면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38절에서 예수님도 신명기 6장 5절을 인용하시면서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모든 율법의 명령 가운데 가장 중요한 명령이고 그 어떤 명령보다도 더 클 수 없는 명령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떤 선행을 하든지 간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이 명령보다 더 큰 명령은 없다는 것이 신명기 6장 5절의 핵심인 것입니다.
또한 신명기 6장 1~5절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6장 1~3절은 십계명으로부터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권면을 말씀하고 있고 둘째로 신명기 6장 4절은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의 신학적인 기초를 말씀하고 있고 셋째로 신명기 6장 5절은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을 강조형으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세 가지를 가지고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I. 전환을 위한 권면(1~3절)
첫째, 이 명령은 하나님의 최고의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 1절에 “이는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 명하신바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행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명령’은 영어성경(NIV)에서 복수로 쓰였지만 히브리어로는 단수로 쓰였습니다. 따라서 ‘그 명령’이 정확한 번역이 되는데 여기서 말한 ‘그 명령’은 5절의 크고 첫째 되는 명령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십계명에서부터 가장 큰 계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명령’을 단수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명령들 가운데 최고로 중요한 명령으로서 이 명령을 올바로 수행하는 것이 하나님께 축복받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명령은 우리가 어느 자리, 어느 장소, 어느 위치, 어느 직장에 있든지 간에 그 곳에서 수행해야 할 최고의 명령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 이 명령을 듣기만 하지 말고 수행하는 자가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는데 신명기 6장 2절에서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이스라엘 지파의 두령과 장로들이 하나님을 무서워 한 것처럼 ‘무서워 한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녀가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듯이 하나님께 명예와 존경과 사랑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모든 규례와 명령을 대대손손 지키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크고 첫째 되는 명령’을 우리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도 잘 전수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자녀를 교육시킬때 무엇을 가르칩니까? 물론 공부도 잘하고 출세도 하고 성공하는 것도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교육의 핵심 목적은 아닙니다. 우리가 자손들에게 가르쳐야 할 최고의 목적은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평생동안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살도록 가르치는 것이 최고의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모세는 다시 한번 이 명령을 요약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설교를 했던 것입니다.
셋째, 이 명령을 행할 때 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명기 6장 2절 후반부와 3절에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세 가지의 결과를 보게 됩니다. 1)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그 날이 장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는 일이 없고 포로 되는 일이 없고 오래 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2) 여러 가지로 복을 얻습니다. 물질적인 복도 받고 건강과 장수의 복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3) 번성케 되고 번영케 되는 복을 얻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자손의 수효가 번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도 복을 받고 인구도 증가 되고 자손들도 번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이미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약속입니다. 창세기 15장 5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이 약속이 가나안 땅에서 실현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십계명을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너와 네 자손이 복을 얻어서 자손이 번성케 되고 번영케 되는 축복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명기 6장 1~3절은 십계명으로부터 크고 첫째 되는 계명으로 전환하려는 권면과 그 목적과 순종의 결과가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II.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의 신학적인 기초(4절)
첫째, 이 명령은 신앙교육에 기초가 됩니다. 신명기 6장 4절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신명기 6장 4~9절은 히브리어로 ‘들으라’로 시작되는 유명한 단어 쉐마(Shema)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교육에 가장 기본이 되는 명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5절의 쉐마는 핵심 내용이고 4절은 5절을 위한 신학적인 기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신명기 6장 4절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여호와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어 ‘나는 너희 하나님이고 너희는 내 백성이다’라고 하신 하나님은 오직 여호와 한 분 뿐이시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4장 35절에도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만이 이스라엘의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2) 오직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에 신이라고 불리우는 존재가 많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신들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물들도 있고 타락한 천사들이나 악신들이 신으로 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신이 아닙니다. 참 신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분 뿐이십니다. 신명기 4장 39절에 “그런즉 너는 오늘날 상천하지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겨야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다른 것들은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은 우리에게 축복을 줄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 신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3) 본질에 있어서 한 분 이라는 것입니다. 그 위격은 성부, 성자, 성령 세 분이시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는 하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성경에서 가르치는 삼위일체의 교리와도 완전히 일치하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0장 30절에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하셨고 마태복음 29잘 19절에도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라는 지상 명령에도 ‘이름’은 단수로 쓰여 졌습니다. 따라서 위격이 세 분이시더라도 본질은 한 분이신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이단입니다. 2000년 동안 수 없이 훌륭한 학자들과 목사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논의하고 연구했지만 결국 삼위일체가 옳다라는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꼭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신명기 6장 4절은 다신론(polytheism)을 철저히 배격하고 유일신론(monotheism)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유일신론은 신이 여러 명이 아니고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 분은 세 위격으로 존재하시는 삼위일체로서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시는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8장 5~6절에도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세 위격을 가지신 한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이시라는 선언인 것입니다. 우주의 원리는 어떻게 보면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생이 복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참 하나님만을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우리 인생은 복 있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III.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을 선언함(5절)
첫째, 이 계명은 하나님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 5절에 보면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신명기 6장 4절이 근거가 되어서 신명기 6장 5절의 명령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성도의 사랑은 분산되어서는 안 되고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신명기에 가장 두드러진 내용입니다. 신명기 10장 12~13절에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그 명령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리에게 행복이 오는 것입니다. 신명기 11장 13~14절에도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나의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비 늦은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여호와를 사랑하는데 있다면 하나님께서 비도 내려주시고 물질의 복과 행복도 내려주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들에게는 인생의 최고의 목적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사모하고 경외하며 교제하기를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와 베드로 둘 중에 누가 더 나쁜 사람이겠습니까?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먹었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저주하고 부인했습니다. 죄질로 보면 서로 비슷합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와 베드로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기가 아무리 허물이 많고 죄를 지었어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베드로는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을 마음속에 품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다시 찾아오시고 그를 긍휼히 여기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약하고 허물이 있을지라도 마음속에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잘못해도 다시 일어나고 망해도 다시 일어나고 비록 죄를 지어서 지금 현재 고통 속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다시 일으켜 주실 줄을 믿습니다. 불신자들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오직 구원받은 성도들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9절은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고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스바냐 3장 17절에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 전에 택하시고 부르셔서 우리의 죄값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갚아 주시고 우리를 성령으로 불러 주셔서 예수님을 믿게 해주시고 이 복음이 나의 구원의 복음이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이 사랑을 먼저 받았기에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셋째, 이 명령을 지키면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받은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가장 크고 첫째 되는 명령을 지키게 되면 또한 그 결과로서 행복도 주시고 온갖 축복을 내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넷째, 우리의 생각과 의지, 감정 모두를 동원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주시는 축복으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두 번째로 율법을 강론하게 된 것입니다.
결론
모세의 율법을 요약하면 십계명이고 더욱 요약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십계명을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인 하나님 사랑을 하게 되면 이웃 사랑은 저절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계명을 잘 지킨다고 해도 하나님을 사랑함 없이 십계명으로 공적을 쌓아서 그 댓가로써 행복과 축복을 누리려 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태도인 것입니다. 십계명의 핵심 자체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사랑 없이 축복과 행복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요한일서 4장 20~21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최고의 인생 목적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계명을 마음의 심비에 새기고 살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행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자손대대로 복을 넘치도록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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