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나는 죄인이고 나 스스로 죄값을 갚을 수 없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겠습니다. 나를 구원하여 주소서”
서로 다른 종교가 서로 존중하고 서로 배움으로써 인류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자는 것은 합리적이고 그럴듯한 것처럼 보입니다. 심지어 기독교의 지도자들조차도 한 가지 종교만이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아집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를 서슴지 않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종교 다원주의라고 하고 오늘날의 시대정신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이나 의식이나 종교나 모든 믿음이 우리가 구원받고 천국에 가는 데는 전혀 쓸모없다는 것이 바로 사도행전 4장 12절의 말씀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주이시다라는 진리에 조금의 타협이나 양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라는 것을 주님께서 분명하게 선포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말씀을 조금도 가감 없이 믿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에센스(essence)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기적을 행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자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사도들을 붙잡아서 감옥에 가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대제사장이라고 할지라도 죄 없는 사람을 오래 가둬 둘 수 없기 때문에 다음날 풀어주게 되었습니다. 그때 사도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문중과 관원과 장로와 서기관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하였습니다. 이 설교를 들은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마땅히 할 말이 없자 베드로와 요한을 향해서 사도행전 4장 18절에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협박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이 핍박에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4장 19절에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라고 하며 계속해서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이 말씀을 선포하다가 핍박을 받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주라고 선포하면 핍박을 받고 심지어는 감옥에 갈 날도 멀지 않은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지금은 우리가 마음껏 신앙의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언제까지나 그러할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핍박을 받든지 감옥에 가든지 간에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에 대한 믿음의 여부가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해 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4장 12절에 대한 영혼의 반응이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게 해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영원한 구원이 있는 것이고 그분의 이름에 등을 돌리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멸망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행전 4장 12절은 참으로 위대한 선언인 것입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4장 12절을 중심으로 세 가지 주제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I. 행 4:12은 얼마나 공격적인 말씀인가?
첫째,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만 있다는 배타적인 선언입니다. 현대인들은 이런 배타적인 선언을 싫어합니다. 이것에 대해 매우 혐오하고 분노를 일으키고 많은 비난을 가합니다. 이것이 소위 포스트 모던 시대의 특징입니다. 모던 시대라는 말은 근대 시대라는 뜻이고 포스트 모던이라는 말은 근대 이후 시대 즉 현대 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포스트 모던 시대의 특징은 상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믿는 것은 내게 옳은 진리이고 네가 믿는 것은 네게 옳은 진리이다’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상대방이 믿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말라는 상대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이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해서도 서로 간섭하지 말라는 것인데 이것은 표면적으로 볼 때는 합리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또 서로 다른 종교가 서로 존중하고 서로 배움으로써 인류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자는 것은 합리적이고 그럴듯한 것처럼 보입니다. 심지어 기독교의 지도자들조차도 한 가지 종교만이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아집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를 서슴지 않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종교 다원주의라고 하고 오늘날의 시대정신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정신은 세계 각국에서 법으로 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기독교가 왕성했던 영국에서는 기독교인들이 다른 종교인들에게 전도할 때 모독을 느꼈다고 고소하면 징역 7년이 선고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강간죄와 동일한 형벌에 처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일이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 캐나다에서도 일어나게 될 것이고 10년이 지나면 조만간 대한민국에도 일어나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둘째, 그런데도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성경은 이런 시대정신과는 반대되는 메시지를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이외에는 구원을 얻을 다른 이름이 없다는 이 말씀이 얼마나 공격적인 말씀이냐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를 않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받을 수 있는 다른 길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는 13억 명에 달하는 무슬림이 있고, 힌두교인은 9 억명, 불교인이 3억 5천만 명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복음은 이들이 구원 문제에 관해서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또 공자와 맹자를 따르는 자들이 2억 2천 5백만 명과 무신론자 9억 명들도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성경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20억명에 달하는 기독교인 중에서도 사도행전 4장 12절을 믿지 않는 사람들 또한 천국에서 만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상이나 의식이나 종교나 모든 믿음이 우리가 구원받고 천국에 가는 데는 전혀 쓸모없다는 것이 바로 사도행전 4장 12절의 말씀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주이시다라는 진리에 조금의 타협이나 양보가 없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영어로 보면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the라는 정관사가 붙게 되면 다른 것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라는 것을 주님께서 분명하게 선포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말씀을 조금도 가감 없이 믿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에센스(essence)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은 분명히 이 시대의 시대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공격적이고 교만해 보이고 좁은 마음을 가진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참된 성도들은 이런 좁은 마음을 바꿀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II. 참된 교회는 왜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주이심을 변함없이 믿고 있는가?
첫째,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가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구원(salvation)이란 단어는 인간에게 극도로 중요한 단어입니다. 참된 종교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내가 진리를 찾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지극히 교만한 사람일 것입니다. 참된 종교란 다른 종교에 지혜에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자나 석가모니나 마호메트와 같은 자들의 사상이나 책이나 경전들을 보면 많은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된 종교는 인생이 당하고 있는 어려운 문제를 풀어가는 지혜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종교는 바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구원이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다른 종교가 무식하고 기독교만 지혜롭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구원의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 구원이라는 단어는 세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1) 구원이란 인간이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그냥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구원이라는 단어는 아주 심각한 위험에서 건짐을 받을 때 쓰는 용어입니다. 우리는 사소한 것을 가지고 구원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살해당할 위험이라든지 물에 빠져 죽을 위험이라든지 불에 타 죽을 것 같은 위험에서 살아나게 될 때 ‘구원받았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간 전체가 극도로 심각한 위험에 빠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으로부터 죄로 말미암아 분리되어 하나님 없이 살다가 죽어서도 하나님이 없는 곳인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위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로부터 영원히 분리되어 있는 근본적인 위험인 것입니다. 인류는 첫 조상인 아담과 하와 때부터 지금까지 이런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잠깐의 인생을 살다가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되는 위험 속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인간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과거에도 하나님과 분리되어 살았고 현재에도 하나님 없이 살고 있고 미래에도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 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태어나서 살고 있습니다. 2) 이 문제는 인간 스스로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지옥 갈 운명을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인간은 과거도 바꿀 수 없고 현재도 이런 문제를 피해서 도망칠 수 없고 미래는 더욱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죄를 짓고 사는 것이 싫어도 인간은 모두 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영적인 바이러스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 19절에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신약시대의 위대한 인물인 사도 바울의 고백인 것입니다. 바울도 안 되는데 우리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한 존재가 아니라 죄인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이래로 인간은 죄성을 가진 죄인들이 되었습니다. 그 죄를 그대로 갖고 하나님 앞에 죽게 되면 내가 행한 모든 일과 내가 말한 모든 말과 내가 지은 모든 죄를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내리시는 지옥 심판의 선언을 피할 길이 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3) 인간은 인간 외부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구세주가 필요합니다. 인간은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 낸 거짓 구원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주신 참된 구원자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늘에서 오신 참된 구원자이시기 때문에 교회는 예수만이 구원자이심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야구경기를 좋아합니다. 가끔 경기를 보면 야구선수에게 위기가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사만루의 상황입니다. 무사만루가 되면 아무리 훌륭한 투수라도 자기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는 구원투수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구원투수는 밖에서 들어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스스로가 어쩔 수 없는 지옥 갈 위기에 있을지라도 외부로부터 구원자가 오시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옥으로부터 건져주신 구원자는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거짓 구원자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늘에서 오신 참된 구원자이시기 때문에 교회는 예수만이 구원자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종교의 창시자들에게는 그만한 능력도 지혜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받을 만한 이름이 없다고 강력하게 선언을 한 것입니다.
III. 하나님이 부르시는 개인적인 초청
첫째로 인간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는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구원자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자를 통해서 인간을 지옥과 멸망에서 그리고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에서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기독교가 다른 종교나 다른 이름에 구원이 없다고 선포하는 것은 교만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배타적이거나 다른 종교를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누구도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하늘에서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시고 영원 전부터 존재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어떻게 하나님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는가 하는 것은 인간의 존재 양식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 양식과 다른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삼위로 존재하시면서 하나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위대한 존재 양식을 가리켜 삼위일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창조주이십니다. 예수님이 천지를 지으셨습니다. “만물이 그가 없이는 하나도 된 것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에 마리아라는 동정녀에게 탄생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신성과 인성을 한 몸에 지니신 존재가 되셨습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독특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죄는 조금도 없으신 분이시고 사랑과 자비가 풍성한 분이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셨기 때문에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고 문둥병자나 나면서부터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도 고치셨고 바다와 풍랑을 명하여 잔잔케도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어린아이도 사랑하시고 죄인들도 사랑하셨습니다. 심지어는 죄인들을 대신해서 죄값을 치르시고자 수난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율법의 일점일획도 어기지 않으시고 완전한 의를 우리에게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죄의 용서를 받게 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완전한 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어두움 가운데서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외동아들이 악한 사람들에게 잡혀서 어두운 가운데서 울부짖으면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은 독생자이신 예수님에게 이렇게 어두운 가운데서 부르짖다가 죽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도 예수님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죄인들이 받을 형벌과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3일 만에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내셨습니다. 부활을 통해 예수님은 인간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이고 수백 명의 증인들이 있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중보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능력 있는 구원자이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넷째로 예수님은 아직도 구주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지금 이 순간도 초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의 모든 죄를 용서해 줄 것이고 너는 천국에 들어올 수 있는 완전한 의를 얻게 된다”라고 초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받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를 얻게 된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가는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죄인 중에 괴수도 구원하시고 죄가 적은 자들도 구원하셔서 죄 사함과 완전한 의를 주시는 구원자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앉은뱅이가 일어난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지만 그것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는 지옥으로부터의 구원과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에서의 구원을 주시는 유일한 구원자이시고 능력자이심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불신앙으로부터 돌이켜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37절에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 나는 죄인이고 나 스스로 죄값을 갚을 수 없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겠습니다. 나를 구원하여 주소서”
이런 기도를 진실로 올리는 순간 우리의 인생은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등을 돌리는 사람은 영원한 멸망을 자초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믿는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구원자가 없음을 믿고 예수님의 초청에 응답하는 자에게는 영생하고 영원한 부활의 몸을 입고 천국에서 주님과 축복 가운데 살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어두움 가운데 이를 갈면서 영원을 보내시겠습니까? 아니면 천국에서 사랑의 주님과 영원히 축복 가운데 살겠습니까? 천국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 천국은 이 땅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이 내려와서 하늘과 땅은 하나가 되고 천국이 되고 우리는 그곳에서 죽지 않는 몸이 되어서 영생을 누리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축복을 버리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에게 등을 돌리시겠습니까? 오늘 우리를 택하신 예수님을 믿고 다 영생과 구원을 받게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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