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신명기 7장을 중심으로 거룩한 전쟁의 여섯 가지 원리에 대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신명기 6장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 부요를 누리게 될 때 그 부요를 주신 하나님을 잊게 되면 영적인 위험이 따를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신명기 7장에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겪게 될 외적인 위험, 즉 가나안 7족으로부터 오는 위험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7장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첫째, 신명기 7장 1~5절로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가나안 7족과 전쟁을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거룩한 전쟁의 원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 신명기 7장 6~16절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 누리게 될 특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 신명기 7장 17~26절로 가나안 7족과 전쟁할 때 오게 되는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원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아브라함 때부터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이었습니다. 또한 가나안 땅은 좋은 것으로 가득한 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가면 아무 수고도 없이 차지할 수 있는 땅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에 이미 살고 있는 가나안 7족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기들의 땅을 내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피할 수 없는 전쟁의 과정을 거쳐서 그 땅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행해야 할 전쟁은 단순한 물리적인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7족은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매우 부패하고 악한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치를 전쟁은 근본적으로 영적인 전쟁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물리적 전쟁뿐만 아니라 영적 전쟁까지 포함한 이중적인 전쟁을 대비하기 위하여 철저히 정신적 무장을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류의 평화가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인류의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인류에게 전쟁이 끝까지 있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단 9:26).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장 15절에서 인류의 역사를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의 갈등의 역사라고 요약하셨습니다. 여기서 여자의 후손은 믿음의 사람들이고 뱀의 후손은 불신앙의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갈등의 역사는 신명기 7장에도 나타났고 오늘날에도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물리적인 전쟁도 있지만 그 배후에는 항상 영적인 전쟁이 있습니다. 성도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 천국은 갑니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이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신명기 7장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행해야 할 전쟁은 거룩한 전쟁이었습니다. 거룩한 전쟁은 히브리어 동사 חָרַם(하람)에서 나온 명사 헤렘으로써 모든 것을 진멸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전쟁이 다 거룩한 전쟁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6.25와 같은 전쟁은 거룩한 전쟁이라 할 수 없습니다. 같은 민족끼리 서로 죽이는 전쟁은 비극이지 거룩한 전쟁이 아닌 것입니다.
거룩한 전쟁, 즉 헤렘이 되려면 5가지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 전쟁을 하라는 하나님의 승인이나 명령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는 전쟁은 거룩한 전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전쟁을 하라고 할 때에만 거룩한 전쟁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이미 말씀하신 언약을 이루려는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언약을 하셨기 때문에 가나안 7족과의 전쟁은 거룩한 전쟁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원수를 진멸하는 전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거룩한 전쟁은 포로도 살려두어서는 안 되는 전쟁이었습니다. 원수를 완전히 진멸하는 것이 거룩한 전쟁인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이 승리를 주시겠다는 약속이 있는 전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전쟁을 하기만 하면 이긴다고 하실 때에만 거룩한 전쟁이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 전쟁 자체가 영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는 의미가 있는 전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전쟁인 것입니다. 천국을 차지하고자 하는 영적인 전쟁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 전쟁은 거룩한 전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전쟁이 되려면 이처럼 5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에서 모세가 명령했고 여호수아서에서 여호수아가 수행한 물리적인 전쟁으로서의 거룩한 전쟁은 예표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시대에 성도들이 수행해야 할 영적인 전쟁의 예표인 것입니다. 가나안 7족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적인 전쟁의 예표이고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하신 천국의 예표이고 거룩한 전쟁은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 싸우는 영적 전쟁의 예표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은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 전쟁을 하다가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전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명기 7장의 거룩한 전쟁의 원리는 신약시대 성도들의 영적 전쟁에도 적용될 수 있는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거룩한 전쟁을 수행하는 여섯 가지 원리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I.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존함
첫째, 승리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전쟁에서는 하나님이 승리를 주시겠다는 약속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존해야 합니다. 이긴다는 승리 의식을 가진 사람과 패한다는 패배의식을 가진 사람과 싸우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당연히 승리 의식을 가진 사람이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이 승리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면 더 확실한 승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명기 7장 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들이시고...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라고 했고, 2절에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만일 하나님이 승리를 주신다면”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네게 승리를 주실 때에”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if(만일)이 아니라 when(때에)이 사용되었습니다. 즉 가나안 7족은 반드시 쫓아내시고 반드시 치게 하신다는 약속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질 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겨도 겨우 이기는 자가 아니라 넉넉히 이기는 자들입니다. 더구나 우리는 세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있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넉넉히 이긴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미 졌습니다. 우리 원수 마귀는 하늘에서 쫓겨날 때 머리통이 터지고 계급장도 뜯기고 땅으로 쫓겨나서 지금은 땅의 성도들을 괴롭히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이기신 존재가 되셨기 때문에 우리도 이긴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패배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면 안 되겠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나는 이긴다는 승리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승리의식을 가지고 전쟁에 임하면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의지해야 합니다. 가나안 7족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교해 볼 때 숫자나 군사적인 능력으로 살펴보게 되면 가나안 7족이 훨씬 숫자도 많고 힘도 강했습니다. 물리적인 능력으로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7족의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상황에서 열세이지만 이 전쟁은 군사적인 숫자나 능력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직 너희는 자만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질 수도 없고 망할 수도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셋째, 고린도후서 10장 3~6절이 이 원리를 신약의 용어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약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전쟁의 첫째 원리는 승리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II. 적이 누군가를 분명히 알아야 함
첫째, 가나안 땅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적은 분명합니다. 전쟁에서 적이 누구인지를 모르면 전쟁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셋 족속, 아모리 족속, 가나안 족속, 기르가스 족속, 히위 족속, 브리스 족속, 여부스 족속이라는 분명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종교적으로 도덕적으로 너무나 부패하였고 죄악의 분량이 다 찼기 때문에 하나님이 벌을 내리실 때가 된 족속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잘못했을 때에 금방 벌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분량이 차면 그때는 벌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예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창세기 15장 16절에 “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괴로움을 당할 것이고 그 후 가나안 땅을 하나님이 주시는데 가나안 땅의 주민들은 죄악이 관영해서 쫓아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둘째, 신약시대의 성도들도 원수가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복음서와 서신서들은 성도가 개인적으로 전쟁 대상으로 삼아야 할 원수가 세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는 교회가 전체적으로 전쟁 대상으로 삼아야 할 원수가 다섯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부터 14장까지는 이러한 다섯 원수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우리는 이것을 꼭 알아야 하겠습니다.
1) 원수의 두목 용입니다. 이 용은 마귀라고도 불리우고 사단 또는 옛뱀이라고도 불리우는 온 천하를 꾀는 자입니다. 2) 바다에서 나온 짐승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복음전파를 방해하는 정치세력입니다. 3) 땅에서 나온 짐승입니다. 이것은 바다에서 나온 짐승과 연합하여 복음진리를 대적하는 종교세력, 이단, 거짓된 종교 세력들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서로 연합해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이단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이단들이 왜 이렇게 세력이 큰가 들어가보면 그들이 정치 세력들과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지옥에 가서 큰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4) 큰 음녀라고 불리우는 바벨론입니다. 정치 세력도 아니고 종교 세력도 아닌데 교회를 대적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문화와 경제 세력입니다. 대중 문화나 경제적인 힘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이것을 큰 음녀 바벨론이라고 하였습니다. 5) 짐승의 수 666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끝까지 복음을 대적하고 교회를 훼파하는 불신자들입니다. 6이라는 숫자는 인간의 숫자요 실패의 숫자요 패배의 숫자입니다. 그러나 7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숫자요 성공의 숫자요 승리의 숫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666이라는 숫자의 의미는 단순히 이마에 666을 그려 넣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인생이 하나님을 “안 믿어, 안 믿어, 안 믿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그런 사람의 인생은 “멸망, 멸망, 멸망”으로 철저하게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다섯 원수들의 공통점은 예수님을 핍박하고 교회를 핍박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요한계시록은 ‘여자가 낳은 남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로 승천하여 올라가자 이들은 핍박의 대상을 교회로 삼아 핍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를 핍박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요한계시록 12장 11절의 말씀처럼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승리한다고 했습니다. 즉 성도는 이러한 영적인 전쟁을 예수 그리스도와 말씀으로 이긴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이 다섯 원수는 결국 예수그리스도에 의해 모두 전멸 당하고 불과 유황이 타는 불못에 던져지게 된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말씀을 붙들고 날마다 기도로 영적인 원수들을 이겨야 될 줄 믿습니다.
III. 원수들과 조금도 타협할 여지를 주지말고 진멸해야 함
첫째, 거룩한 전쟁은 원수를 진멸하지 않으면 자기가 죽기 때문에 진멸해야 합니다. 신명기 7장 2절에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진멸하다라는 히브리어 동사 하람(חָרַם)으로부터 ‘헤렘’이라는 명사가 나왔습니다. 바로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것이 거룩한 전쟁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무엘상 15장을 보면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 왕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3절에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 하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사무엘상 15장 9절에서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사울 왕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는 사무엘상 15장 23절에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사울 왕은 거룩한 전쟁의 원리를 버리므로 왕에서 폐위 되었고 악신이 그에게 들어가서 미친 짓을 하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둘째, 원수를 진멸해야 할 이유는 살려 두게 되면 악한 영향력이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7장 4절에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원수들을 진멸하지 않으면 그 악한 영향력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이 진멸당하게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셋째, 성도들도 마귀의 일을 멸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 8절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했고 에베소서 4장 27절에도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이단사설이나 거짓말과 같은 것에 빈자리를 내어주지 말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물론 카톨릭이나 불교에서도 자원봉사나 구제와 같은 좋은 일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정적인 것에서 거짓말을 합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 중요한 문제를 가지고 잘못 가르쳐서 사람들을 지옥에 가도록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원수의 어떤 가르침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IV. 원수들과 어떤 언약도 맺지 말아야 함
신명기 7장 2절 후반에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언약이란 상호 간에 맺는 협정이나 약속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어떤 일에도 원수들과는 타협이나 약속을 맺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9장에서는 기브온 거민들이 이스라엘과 상대하여 싸우려 하지 않으려고 심히 먼 지방에서 온 사람들인 것처럼 속여서 화친의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3일 후에 그들이 가까운데 사는 기브온 거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브온 거민들을 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회중들이 언약을 맺은 족장을 원망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백성들은 기브온 거민들을 진멸시키지 못하고 그들을 나무를 패며 물 긷는자로 삼게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14~15절은 신약시대에도 이 원리가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교회는 이단들과 어떤 협정도 맺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내용을 타협하면서까지 타종교나 이단들과 대화라든가 연합운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WCC입니다. 이들의 문제는 비성경적인 성경론으로 성경의 원리를 무너뜨리고 다른 종교들과 연합하여 종교적 다원주의나 혼합주의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성경적인 에큐메니칼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연합과 일치를 통해 인류를 정의롭고 공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고 주장하면서 공산주의 원리에 입각한 해방신학이나 여성신학과 같은 것들을 통해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을 꿈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WCC는 교회의 연합이 아니라 종교의 연합인 것입니다. 심지어 WCC 총회에서 한국의 한 여성 신학자는 그 자리에서 한풀이 굿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신앙을 파괴하는 이러한 것들을 절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겠습니다. 종교개혁의 정신과 같이 오직 성경의 원리만을 따르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할 구원자이심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V. 원수들과는 절대로 혼인관계를 맺지 말아야 함
다섯째 원리는 사실상 네 번째 원리를 결혼과 가정의 영역으로 확대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7장 3절에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 때문에 이스라엘이 멸절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7장 4절에도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혼인관계는 매우 밀접한 관계이기 때문에 유혹해서 여호와를 떠나게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그 대표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아내가 700명이고 첩이 300명 도합 1000명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족속의 여인들도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그 여인들의 유혹에 넘어가서 우상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 죄로 결국 나라가 망하게 된 것입니다.
신약의 성도들도 불신자와의 혼인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7족과 혼인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16절에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이 불신자들과 혼인하지 않도록 하는 책임은 근본적으로 ‘아버지’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7장 3절은 아버지에게 명하는 명령인 것입니다. 아버지는 책임자로서 그런 자에게 딸을 주지도 말고 그런 며느리를 받아들이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을 결혼시킬 때 꼭 신앙 안에서 결혼시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VI. 원수들의 종교와 관련된 우상들과는 완전히 단절해야 함
신명기 7장 5절에 “오직 너희가 그들에게 행할 것은 이러하니 그들의 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사를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방 예배의 장소나 우상을 모두 파괴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불상을 파괴하거나 마리아상을 불사를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큰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시대에 성도들이 이 말씀을 적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 성도들의 가정이나 마음이나 삶의 모든 영역에 우상숭배와 관련된 모든 것을 완전히 단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0장 4절에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성도의 삶의 영역에 ‘우상숭배’의 흔적이나 냄새 조차도 없애버리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 성도들은 영광가운데 천국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그냥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영적전쟁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의 삶의 곳곳에 견고한 진을 만들어 놓고 물러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사단의 견고한 진을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다 파괴해 버리고 하나님을 향한 깨끗한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날마다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시고 천국의 영원한 영광을 누리는 우리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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