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제 회생의 규례

날짜 : 2015-10-04
본문 : 레위기 3:1~5, 7:11~18

서론

오늘은 레위기 3장과 7장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5대 제사 가운데 세 번째 제사인 ‘화목제’에 관해 말씀을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5대 제사는 이스라엘의 예배입니다. 예배의 기본적인 원리들을 통해 죄인들이 제물의 희생을 근거로 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제사에 관한 율법을 주셨지만,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의 은혜를 예표로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화목제는 히브리어로 ‘쉘렘’이라고 합니다. 번제는 ‘위로 올라간다’는 의미의 ‘올라’, 소제는 ‘제물’이나 ‘예물’을 뜻하는 ‘민하’라고 했습니다. 화목제는 ‘보답’을 뜻하는 ‘쉘렘’이 사용되었습니다. ‘쉘렘’은 ‘평화’를 의미하는 ‘샬롬’과 같은 어근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도 서로 ‘샬롬’이라고 인사하며 안부를 묻고 있습니다.

Ⅰ. 화목제의 적용에 관한 두 가지 관점

이스라엘의 제사는 언제나 번제, 소제, 화목제 순으로 나옵니다. 성경 어디에도 화목제가 먼저 나오고 소제와 번제가 나오는 순서로는 기록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선 화목제의 의미를 생각하기에 앞서 순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아모스 5장 22절에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지자들이 말할 때도 번제, 소제, 화목제 순서로 언급하였습니다. 제사의 순서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화목제가 갖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1차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는 것이고, 2차적으로는 성도의 삶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1차적으로 번제, 소제, 화목제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번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희생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속죄 제사 드린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피를 흘리시고, 그 몸을 다 찢기심으로 우리를 위한 속죄제물이 되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소제’는 고운 가루를 드리는 것으로, 예수님이 한 알의 밀이 되어 죽고 싹이 나 열매 맺힌 후 곱게 갈아져 하나님께 드려진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소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고운 가루가 될 때까지 겪은 수난의 전 과정을 계시해 주는 것입니다. 화목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제거하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주심으로, 죄인들이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고 죄인들 상호 간에도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신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4~18절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셨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게 되었고, 유대인과 이방인도 화목할 수 있게 되었고, 죄인들끼리도 화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리고 번제, 소제, 화목제는 2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성도들에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번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는 자가 사죄와 칭의의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소제는 칭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 그 삶 속에 성령의 기름과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유향, 그리고 세상의 방부제 역할을 하는 소금이 있어야 함과 동시에 죄를 상징하는 누룩과 사치와 방탕을 상징하는 꿀은 없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성도의 삶에 실제적인 지침이 될 만한 교훈을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화목제는 이미 사죄와 칭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는 삶을 살도록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과 화목을 얻고자 하는 목적에서 화목제를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화목을 얻은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기 위한 목적으로 드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목제를 다른 말로 ‘감사제’(Thanksgiving offering)라고도 하고, ‘찬미의 제사’(Offering of Praise), 또는 ‘교제를 위한 제사’(Fellowship offering)라고도 합니다.
또한 화목제의 의미를 생각할 때 매우 중요한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레위기 3장 5절입니다.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단 윗불 위에 있는 나무 위 번제물 위에 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화목제물을 태우는 곳이 ‘번제물 위’라는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화목제물은 번제물 위에서 불살라야 합니다. 성막 뜰에는 번제단이 있습니다. 번제단 가운데 놋망이 있습니다. 놋망 위에는 나무를 벌여놓고 불을 붙여 번제 제물을 태웁니다. 그래서 재가 놋망 아래로 떨어지게 되는 것인데, 화목제물은 번제물 위에 불태웠습니다. 이것이 화목제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화목제는 결코 번제 없이 드려질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번제는 제사장들이 아침저녁으로 하나님께 양을 한 마리 씩 드리는 ‘상번제’(Regular burnt offering)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전제되어야만 인간이 그 공로 위에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은 성도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속죄 제사를 드리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3장 15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찬미의 제사는 화목제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런데 그 제사는 예수로 말미암아 드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근거가 히브리서 13장 12절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사람이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바른 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전혀 없이 늘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사람은 바른 정신의 소유자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시는데, 왜 하나님을 향해 욕을 합니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고 지혜의 근본입니다. 화목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야 함을 계시해 줍니다.

Ⅱ. 화목제를 드리는 절차에 관한 규례

화목제 제사 절차에 관한 규례는 레위기 3장, 7장, 17장, 19장까지 총 네 개의 장에 걸쳐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제사의 규례는 이렇게 여러 차례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복잡한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아무 생각 없이 무관심하게 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은 지대한 관심을 쏟으며 제사에 임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도들 중에도 어떤 사람은 무관심하게 예배에 임하는 방관자가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배하는 자세도 삐딱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목사가 뭐라고 떠드는가 한 번 들어나 보자고 하는 심산으로 앉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예배는 예배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주 잘못된 예배자입니다. 예배하는 사람은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릴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나 뵙고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준비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준비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헌금도 주머니에 구겨진 천 원짜리 지폐를 드리지 않고, 미리 정성껏 준비하여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런 사람들의 예배가 바로 신령과 진정으로 하는 예배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에 대한 규례를 정신 차리고 잘 공부해서 똑바로 예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열납하실 만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화목제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번제와 비교해 보는 것입니다. 화목제는 번제와 비슷한 점도, 전혀 다른 점도 있습니다. 먼저 번제와 비슷한 점 가운데 첫 번째는 제물입니다. 번제와 화목제 예물은 소나 양이나 염소입니다. 그러나 야생동물을 잡아서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이 동물들은 반드시 자기가 기르는 동물들 중 흠 없는 것을 취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제물을 드리는 경배자가 제물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안수하여 자신의 모든 허물과 죄악을 동물에게 전가합니다. 그리고 성막 북편에서 제물을 잡아 피는 제사장에게 줍니다. 피를 받은 제사장은 번제단 사면에 뿌립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제물을 불로 태워 여호와께 향기로운 향기가 되게 합니다.
이처럼 번제와 화목제는 경배자가 제물을 가져와 안수하고 잡은 후 제물을 태워서 드린다는 점에서 세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차이점도 있습니다.
첫째, 번제는 소나 양이나 염소가 반드시 수컷이어야만 하지만, 화목제는 암수의 구별이 없습니다. 번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예표하기 때문에 반드시 수컷을 제물로 사용해야 하지만, 화목제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이기 때문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성별 또는 국적의 차별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 번제는 경제적인 형편이 좋지 못한 사람의 경우에 집비둘기나 산비둘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화목제는 비둘기가 제물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태워도 먹을 고기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비둘기 고기를 드셔 보신 분이 계십니까? 저는 갈매기 고기는 먹어 봤지만 비둘기 고기를 먹어본 적은 없습니다. 참새는 맛있지만, 비둘기를 먹었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비둘기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에 화목제 제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는데 돈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거저 받으라는 것입니다. 돈이 있는 사람도 오고, 돈 없는 사람도 오고, 돈의 많고 적음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감사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주머니를 열어야 합니다. 노력이 좀 필요합니다. 감사를 드리는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을 갖다 드리면 되겠습니까?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고 수고와 노력이 담겨 있어야 감사입니다.
셋째, 번제는 제물의 가죽을 벗겨서 제사장이 취합니다. 그리고 가죽을 제외한 모든 것을 불로 태워버립니다. 그러나 화목제는 제물의 기름만 태웁니다. 소나 양이나 염소의 내장 기름만 떼 내어 태우는 것입니다. 내장에 붙은 기름이나 주변의 기름, 콩팥이나 간에 붙은 기름을 다 떼 내어 불로 태워 드리고, 소나 염소는 그렇지 않지만 양의 경우에는 꼬리에도 기름이 많이 있어서 꼬리까지 태운다고 합니다. 
그러면 화목제물을 드릴 때 기름을 태워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감사할 때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얼마나 감사한 분이십니까? 우리 생명을 지금까지 살려주셨고, 영혼을 구원해 주셨고, 영생을 주셨고, 내세의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올바른 정신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저 체면치레나 하듯 드려서 감사를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감사는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둘째는 기름이 고기보다 사람을 살찌게 하는 생명의 본체라는 점에서, 기름을 태워드린 다는 것은 하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린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최상의 것으로 감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때는 최상의 것으로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6장 6~13절에 보면 예수님이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에 죄인으로 소문난 여자가 식사하시는 예수님 앞으로 나아와 향유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 향유가 얼마나 비싼 것인가 하면 당시 노동자의 일 년 연봉에 해당합니다.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제자 중 유독 계산이 빨랐던 가룟 유다가 그 여인을 야단치며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자의 행한 일은 나의 장례를 준비한 행동이었다고 칭찬하시며,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의 행한 일을 꼭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일 년치 임금을 다 써버렸지만, 엄청난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번제는 제물을 다 태우지만 화목제는 기름만 태운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넷째, 번제는 경배자가 얻는 몫이 전혀 없는 반면, 화목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제사장의 몫도 있고, 경배자의 몫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을 하면서 고기를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오소리나 고라니 같은 고기는 먹을 수 있었지만, 소나 양, 염소와 같은 고기를 먹으려면 반드시 화목제를 드리고 나서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동물을 아무데서나 도살할 수 없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경배자는 성막 뜰 북편에서 동물을 잡고 하나님께 드린 후 제사장의 몫을 드리고 나머지를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날 두고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루 이틀 안에 다 먹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런 규정을 만드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우상숭배를 근절하시기 위함입니다.
성막 뜰이 아닌 다른 곳에서 동물을 잡는 사람은 우상숭배하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피도 먹고 기름도 먹으며 우상 숭배하는 백성들을 바로 잡기 위해 하나님은 모세에게 광야에서는 이런 짓을 절대로 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물론 이 규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바뀌게 됩니다. 신명기 12장 15~16절에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따라 각 성에서 네 마음에 즐기는 대로 생축을 잡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나니 곧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무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음과 같이 먹으려니와 오직 그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을 것이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에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각 성에서도 짐승을 잡아 피는 땅에 묻고 나머지는 먹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화목제에는 하나님의 몫이 있고, 제사장의 몫이 있고, 경배자의 몫이 있습니다. 피와 기름은 하나님의 것이고, 가슴고기(갈비)와 소의 네 다리 중에서 우편 뒷다리는 제사장의 것입니다. 제사장은 ‘요제’(搖祭)를 통해 가슴고기를 들어서 한 번 흔든 후에 취했고, 우편 뒷다리는 무겁기 때문에 들었다가 놓았다고 해서 ‘거제’(擧祭)를 한 후에 취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 몫은 ‘흔든 가슴’과 ‘든 우편 뒷다리’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경배자가 먹을 수 있었습니다.

Ⅲ. 화목제의 세 가지 종류

화목제는 세 가지로 분류됩니다. 감사제와 서원제와 낙헌제입니다. 감사제의 경우, 고기를 당일에 다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서원제나 낙헌제의 경우는 이틀까지 먹을 수 있었습니다. 삼일 째까지 남은 것은 모두 불로 태워 없애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철저한 위생관리도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러운 것에 접촉한 것은 절대로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부정한 것에 접촉된 사람도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시며 모든 감염의 원인을 차단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을 따라 철저하게 위생관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화목제의 희생제물을 먹되 제물이 소 한 마리라면 그것을 어떻게 하루 이틀에 경배자가 다 먹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가족, 친지, 이웃들과 나눠 먹어야 합니다. 화목제는 주변의 사람들과 나눠먹을 수 있도록 하시는, 교제를 위한 제사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는 이웃을 생각하고 좋은 것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외국 사람들은 자녀들 교육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가 ‘나눔’(Sharing)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누는 일을 했을 때, 많은 칭찬을 하고 격려해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죔죔’을 가르치지 않습니까? 한 번 쥐면 놓지 말라고 가르치니 나눔을 모르는 것입니다. 움켜쥐기만 하는 아이들로 교육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화목제는 “혼자 먹지 말고 나눠 먹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받은 복이 있으면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눠 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화목제는 감사할 때 드립니다. 이를 ‘감사제’(Thanksgiving offering)라고 합니다. 감사제를 드릴 때는 제물도 드릴 뿐만 아니라 무교병과 유교병을 한꺼번에 드립니다. 그러면 무교병은 하나님께 태워서 소제로 드리고 유교병은 고기 먹을 때 나눠 먹는 것입니다. 감사제를 드리며 누룩이 들어 있는 유교병을 먹는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도 우리 속에는 여전히 죄가 남아 있는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또 서원을 했거나 서원을 성취했을 경우 제물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이를 ‘서원제’(Votive offering)라고 합니다. 그리고 ‘낙헌제’ 또는 ‘자원제’(Freewill offering)라고 합니다. 자원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헌물을 드리는 제사입니다.

결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소나 양이나 염소 고기를 먹고 싶으면 반드시 화목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복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화목제를 드린 사람은 고기를 먹을 수 있고, 고기를 먹으려면 화목제를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미국 유학 후 신학교에서 교수로 생활했고, 이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목회사역을 감당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제가 잘 보니까 복을 받는 사람에게는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었습니다. 감사가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아무 복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 속에 감사가 없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감사가 있고 불평과 원망이 없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 복을 받습니다. 화목제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최상의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고, 하나님으로부터 항상 복을 받고 누리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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