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아무리 시대가 어둡고 윤리적인 부패가 극에 달했을지라도 하나님은 남은 자를 통해 일하는 분이십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아합왕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대에는 엘리야 선지자를, 이후 요람왕의 시대에는 엘리사 선지자를 남겨두셨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일종의 순회설교자였는데, 그는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북 왕국 이스라엘에는 벧엘, 길갈, 여리고에 선지학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열왕기하를 읽다보면 엘리사 선지자가 선지자 생도들을 가르치고 도와주기도 하는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특별히 수넴이라는 지역을 자주 방문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 지역에 다볼산과 갈멜산 사이에 수넴이라는 곳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길보아산 근처에 있습니다. 사무엘상 28장 4절의 블레셋의 군대와 사울왕의 군대가 전쟁을 치른 곳이 바로 수넴입니다. 사울왕은 결국 이 길보아산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자기 칼에 엎드려 죽었습니다. 또 이곳은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말년의 다윗왕을 시중들었던 아비삭이라는 여인도 바로 이 곳 출신이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와 그의 사환인 게하시는 이 지역을 지날 때마다 수넴에 거주하는 한 여인의 집에서 음식을 먹고 설교 준비도 하고 숙박을 해결하였습니다. 10절에 “우리가 저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사이다 저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 유하리이다 하였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넴 여인은 남편과 의논하여 작은 방을 만들어 엘리사 선지자의 서재로 꾸며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선지자를 위해 이만한 일을 하였으니 선지자도 내게 이만큼의 은혜를 베풀어달라”는 식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 수넴 여인은 굉장히 담백한 성품의 소유자였습니다. 공자도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담백한 것이 좋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수넴 여인은 아주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 선지자가 사환 게하시를 통해 여인의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게 하였습니다. 13절에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저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생각이 주밀하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왕에게나 군대장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내가 요람왕도 잘 알고 군대장관도 잘 알고 있으니 네 가정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채워주겠다는 의사를 표현하였습니다. 그런데 수넴 여인의 대답은 간단명료합니다. “여인이 가로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 하니라” (왕하 4:13).
“나는 내 고향에서 내 백성들 사이에 내 집을 가지고 살고 있으니 더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여인의 상황을 보고 엘리사에게 대답했습니다. 여인에게 아들이 없으니 아마 아들을 원하고 있을 것이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그러자 엘리사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수넴 여인을 축복하였습니다. “엘리사가 가로되 돐이 되면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왕하 4:16).
이는 하나님이 99세가 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명년에 네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으리라”고 하신 말씀과 비슷해 보입니다. 사라도 그 말씀을 믿을 수 없어서 웃었는데, 수넴 여인의 대답도 비슷합니다. “여인이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여인이 믿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실현되었고 이듬해 수넴 여인은 늦둥이 아들을 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서너 살쯤 된 어느 날 아버지가 곡식 베는 것을 구경하러 나갔다가 두통을 호소해서 어머니에게 데려다 주었는데, 어머니 무릎에 누워 있다가 낮쯤 되어 죽고 말았습니다. 일사병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수넴 여인이 남편에게 이 사실을 일절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마 일반적인 여자들이었다면 남편에게 아이가 죽었다고 소리를 지를 텐데 이 여인은 남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엘리사 선지자가 누워 있던 침상에 시체를 눕혀놓고 문을 닫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나귀 한 마리와 사환을 구해 엘리사가 있는 갈멜산으로 달려갔습니다. 남편이 물었습니다.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어늘 그대가 오늘날 어찌하여 저에게 나아가고자 하느뇨?” (왕하 4:23). 그런데 여인은 평안하다는 말 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아들이 죽은 큰 일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아들에 관한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고 급히 나귀를 몰아 갈멜산으로 갔습니다. 그러자 엘리사 선지자가 수넴 여인이 멀리서 오는 것을 보고 게하시에게 여인을 영접하라고 지시했습니다. 4장 26절에 “너는 달려가서 저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게하시는 여인에게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고 물었는데, 여인이 대답하기를 “평안하다”, “모두가 괜찮다”고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참으로 놀라운 대답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 여인의 중심에 괴로움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알려주시지 않아서 그 이유를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 이 26절의 질문은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질문입니다.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은 평안하냐?”, “네 아이들은 평안하냐?”, “네 가정 전체가 평안하냐?” 수넴 여인은 아들이 죽은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평안하다는 아주 놀라운 대답을 했습니다.
Ⅰ. 고통 속에서도 평안하다고 대답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늦둥이로 얻은 아들이 죽었는데 무엇이 평안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이 평안하다고 대답한 것은 이것이 영적인 대답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현실이 고통스럽고 어려워도 여인은 영적으로 평안하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건강이나 사업, 직장 등에 아무 문제가 없어야 평안할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일생 중 단 하루도 평안한 날이 없을 것입니다. 끊임없이 문제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인은 영적인 대답을 한 것입니다. “내 영혼은 평안합니다.” 이 여인이 평안하다고 대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통 속에 있지만 평안하다고 대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8절에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 한 귀한 여인이 저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한고로 엘리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 여인이 ‘한 귀한 여인’이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흠정역(KJV) 성경에는 ‘A Great Women’(위대한 여인)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수넴 여인을 위대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여인의 위대함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의 재산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막강한 가문의 힘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도 아니면 그가 가진 사회적 지위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 여인을 위대한 여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겠습니까? 이 여인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믿음 있는 사람이 아주 위대해 보입니다. 아무리 잘난 척을 해도 믿음이 없는 사람은 위대해 보이지 않습니다. 16절에 “엘리사가 가로되 돐이 되면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여인이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인은 엘리사를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내 주’라 하고 엘리사를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한 것입니다.
당시 북 왕국 이스라엘은 각종 우상숭배가 만연해 있었고, 영적으로 매우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수넴 여인은 엘리사를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고백하고 그를 존경하였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23절에 “그 남편이 가로되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어늘 그대가 오늘날 어찌하여 저에게 나아가고자 하느뇨 여인이 가로되 평안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초하루나 안식일이 되면 어김없이 엘리사를 찾아가 하나님께 경배하는 규칙적인 예배의 습관을 가진 가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런 믿음을 가진 수넴 여인을 위대한 여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수넴 여인처럼 위대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바랍니다.
찬송가 470장 ‘내 평생에 가는 길’을 작시한 스페포드(Spafford)라는 집사는 시카고 무디교회에서 재정을 맡아 관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휴가를 받아 아내와 네 딸을 데리고 영국으로 배를 타고 떠났습니다. 사정상 아내와 네 딸을 먼저 돌려보내며 곧 따라갈 것을 약속했는데, 풍랑이 일어나 대서양에서 네 딸은 모두 죽고 아내만 극적으로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스페포드 집사는 급히 배를 타고 아내에게로 가던 중, 선장이 “이 곳이 바로 당신의 네 딸이 죽은 지점입니다”라는 말을 전해 듣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배 밑으로 내려가 밤새도록 기도하는데 새벽 3시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의 네 딸을 천국에 잘 받아두었노라.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그의 영혼에 큰 평안이 몰려오게 되었고, 그 때 지은 시가 바로 찬송가 470장입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여러분, 환경이 좋아야 평안한 것이 아닙니다. 네 딸을 잃어도 하나님이 평안을 주시면 평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평안이 없고 가정에 평안이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상황이 어렵기 때문이 아닙니다. 가난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몸이 약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사람이 어떻게 항상 건강할 수 있습니까? 몸이 약할 수도 있고 가난한 수도 있고 가정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평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평안이 없는 것은 상황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살고 있는 영적인 원인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면 영혼에 평강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사야 48장 22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하나님을 바라보면 우리 영혼이 평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과 여건 때문에 고달파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시는 하나님의 평강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성도들의 각 가정에 평강이 충만하기 바랍니다. 어르신들은 건강하시고 자녀들은 진로의 문이 열리고 다니는 직장과 하시는 모든 사업들이 형통하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는 복된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Ⅱ. 수넴 여인이 현실적으로 겪게 된 괴로움은 어떤 것인가?
수넴 여인에 대한 이야기는 열왕기하 4장과 8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여인은 하나님의 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삶 속에서 세 가지 고난을 겪었습니다. 첫째는 이유 없이 찾아오는 고통이었고, 둘째는 국가적인 재난이었고, 셋째는 이웃 사람들의 탐심으로 인한 고통이었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이 주신 아들을 잃은 고난은 수넴 여인에게 문제가 있거나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난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유도 없었고, 특별한 경고도 없었습니다. 곡식 베던 아버지를 구경하다가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두 번째 고난은 이스라엘 국가 전역에 임한 기근이었습니다. 열왕기하 8장 1절에 “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준 여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서 네 권속과 함께 거할만한 곳으로 가서 거하라 여호와께서 기근을 명하셨으니 그대로 이 땅에 칠 년 동안 임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근은 우연히 찾아 온 것도, 자연의 무질서로 인해 찾아 온 것도 아닙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전체적인 죄악 때문에 하나님이 7년 동안 내리신 것입니다. 열왕기하 4장에 살아있던 수넴 여인의 나이 많던 남편은 이미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열왕기하 8장에 가정의 영적인 호주는 수넴 여인입니다. 그러나 한 가정의 영적인 호주는 남편이 되는 것이 본래 옳은 일입니다.
가끔 믿음 없는 남편들이 예수님 잘 믿는 아내의 치맛자락 붙잡고 천국 가겠다는 말을 하는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가정의 영적인 호주는 남자가 되어야 합니다. 수넴 여인은 남편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남편을 잃고 어려운 상황에 7년 동안이나 국가적인 기근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가정이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 블레셋에 가서 7년 간 먹고 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세 번째 고난은 이웃 사람들에 의한 고난이었습니다. 7년 동안 블레셋에 기거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이웃 사람들이 여인의 집과 땅을 차지하고 돌려주지 않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8장 3절에 “칠 년이 다하매 여인이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돌아와서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호소하려 하여 왕에게 나아갔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인이 돌려달라고 아무리 말해도 사기꾼들이 빼앗고 돌려주지 않는 것입니다.
사기꾼들은 나쁜 짓을 저지르고도 태연합니다. 판사나 검사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들은 재판 받을 것을 예상해 놓고 빠져 나갈 구멍을 다 연구해 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기를 당한 사람이 억울한 것입니다. 억울한 사람이 많고 억울함이 풀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이 직접 손을 대실 것입니다. 수넴 여인은 이웃 사람들의 탐심으로 사기를 당해 집과 땅을 빼앗기는 고통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여인이 당한 아들 잃은 고통과 경제적인 기근, 그리고 사기범죄에 피해를 당한 상황을 이해해야 합니다.
Ⅲ. 하나님은 수넴 여인의 근심을 어떻게 해결해 주셨는가?
수넴 여인은 고통이 찾아왔을 때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청교도 설교자 가운데 유명한 토마스 왓슨이라는 목사님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불평하지 말라”는 아주 유명한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섭리하실 때 불평해봐야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17세에 형들의 미움을 받아 구덩이에 빠지고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 들어가 13년 동안 죽을 고생을 했지만 그는 단 한 마디도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욥도 인간이 견디기 어려운 극한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설령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믿겠다는 고백을 통해 엄청난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넴 여인도 불평이 없습니다. 수넴 여인의 말은 대단히 담백하고 지혜롭습니다. 아들을 잃은 상황에서도 수넴 여인은 “이 고난은 하나님만이 도우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엘리사에게 나아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들이니 아들의 생명을 살리실 수 있는 분도 하나님밖에 없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들을 주실 때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을 주셨으니 평안한 마음으로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고 엘리사를 찾아간 것입니다.
열왕기하 4장 27~28절에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저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 가만 두라 그 중심에 괴로움이 있다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여인이 가로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게하시가 수넴 여인을 보고 “왜 선지자의 발을 안느냐”며 말리려 하자 엘리사 선지자는 “가만 두라 그 중심에 괴로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수넴 여인이 입을 엽니다.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수넴 여인의 말은 직설적이지 않습니다. 간접적이지만 내용을 분명히 알 수 있도록 지혜롭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내 주여, 당신이 준 아들이 죽었나이다!”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간접적인 말이지만 원하는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말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사환 게하시에게 “너는 사람들을 만나지 말고 인사도 하지 말고 곧 바로 가서 내 지팡이를 아이의 얼굴 위에 놓으라”고 지시한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직접 찾아갑니다. 수넴 여인의 집에 들어가 자신의 평소 눕던 침상에 아이가 죽어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열왕기하 4장 33~34절에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사는 누워 있는 아이 위에 올라가 아이의 눈 위에 자기 눈을, 그 입에 자기 입을, 그 손에 자기 손을 맞대고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죽었던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를 크게 하고 일어나더니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엘리사 선지자가 이상한 짓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 아이 위에 올라가서 눈을 맞추고 입을 맞추고 손을 맞췄는을까?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엘리사와 이 아이가 연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이와 자신을 동일시 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아이를 데려가시려거든 나도 데려 가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네가 아직 할 일이 남아있으니 너를 데려올 수는 없고 아이를 되살려야 되겠다”고 하시며 아이의 생명을 살려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연합의 교리’라고 합니다. 엘리사가 죽은 아이와 자신을 연합시켰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믿는 자와 연합되신다는 것입니다(Union with Christ).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존재입니다. 로마서가 증거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진리 가운데 하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죽고 그와 합하여 일으킴을 받는 것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된 존재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도 예수님과 연합되어 거기서 죽었고,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실 때 우리도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려주셨듯이 우리도 다시 살려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부활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110세까지 살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누구나 한 번은 다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내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데 지금은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다”는 요지의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기 때문에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담대히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우리를 덮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일으켜 주실 뿐만 아니라 영생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5절에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했다”는 것은 수넴 여인이 믿음의 챔피언 명단에 등재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칠년 기근의 경제적 위기가 찾아왔을 때에도 하나님은 이 여인의 가정을 블레셋으로 피신하여 살도록 하셨습니다. 수넴 여인은 아무 주저함도 없이 연고도 없는 타향살이를 살았습니다. 식모살이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극심한 기근 속에 7년간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먹고 살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6절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근심이 있어도 잠깐일 뿐입니다. 근심이 지나가면 오히려 큰 기쁨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근심이 되는 일이 조금 있더라도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기쁨이 찾아올 것입니다.
7년이 지나고 고향으로 돌아온 수넴 여인은 자신의 집과 땅이 이웃에 의해 다 빼앗긴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요람왕에게 가서 호소하였습니다. 그런데 왕이 여인의 집 문제까지 다 들어주고 해결해 주겠습니까? 아마 밑에 일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대충 해결하라고 지시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요람왕 옆에 엘리사의 사환이었던 게하시가 죽은 아이가 살아난 일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8장 5절에 “게하시가 곧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할 때에 그 다시 살린 아이의 어미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왕에게 호소하는지라 게하시가 가로되 내 주 왕이여 이는 그 여인이요 저는 그 아들이니 곧 엘리사가 다시 살린 자니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게하시가 아주 절묘한 타이밍에 왕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여인을 변호하였습니다. 수넴 여인의 방패가 되어 준 것입니다. 게하시가 아주 큰 일을 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게하시의 말을 듣고 관리를 임명해서 수넴 여인에게 속한 모든 것을 다 돌려줄 것을 왕명으로 내리고 7년 간 얻은 모든 소출을 돌려줄 것을 명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7년 간 농사를 짓지도 않았는데 한꺼번에 모두 받게 되었습니다. 속된 말로 계를 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인의 가정을 모두 돌보아 주셨던 것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벧전 5:7).
결론
오늘날 한국사회는 개인도 가정도 국가도 평안하지 못합니다. 북이스라엘의 아합, 아하시야, 요람왕의 시대와 비슷합니다. 사람들이 우상숭배 좋아하고 점치러 다니고, 각종 범죄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우리의 가정과 국가의 평안이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젊은 부부들은 이혼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 전 세계적으로 이혼률 1위를 차지한 국가가 되었고 북한의 김정은은 잠수함을 만들어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김정은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핵무기를 만들겠습니까? 우리 힘으로 우리를 지킬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를 지켜 주실 분은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험악한 시대에도 남은 자를 남겨두시고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을 가진 백성들을 통해 시대를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살 길은 우리와 우리 가정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지켜 주시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는 길 밖에 없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딱 붙잡고 있으면 북한, 중국, 미국, 일본 등 세계열강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 나오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소망을 잃지 마시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항상 평안함을 고백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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