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고린도전서 15:12~22)

날짜 : 2009-04-12
본문 : 고린도전서 15:12~22

본문 :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제목 : 고린도전서 15장 12-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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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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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8세기에 영국의 유명한 시인이었던 길버트 웨스트(Gilbert West)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목사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때 성경을 믿지 않는 지독한 불신자로 기독교를 공격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기독교를 공격하려면 기독교의 핵심진리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공격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믿음도 헛것이요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증인으로 발견되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부정한다면 기독교의 모든 것이 다 헛것이 되고 기독교는 무너지겠다는 반기독교적인 편견을 가지고 그리스도 예수님이 부활하지 아니하셨다는 증거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동안 그리스도의 부활이 부정할 수 없는 진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기독교로 개종하고 1747년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역사와 증거에 관한 관찰’이라는 위대한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증거는 그의 불신앙을 압도하고 나아가 교정할 만큼 충분히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육신의 부활은 부정하고 공격하려고하는 목적으로 연구해도 결국은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검증된 진리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자 가운데서 삼일만에 부활하셔서 최소한도 열두 번 이상 제자들에게 부활의 몸을 보이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은 환상을 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환상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렇게 다양한 장소에서 그렇게 여러 번 보았다면 그것은 부활보다도 더 큰 기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몸을 열두 번 이상 제자들에게 보이셨는데 그것도 부활하시기 이전에 당신이 직접 가르치시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시면 그들은 부활 이전의 예수님과 부활 이후의 예수님이 동일한 분인줄을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님은 부활이전에 알던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부활이전의 그리스도요 동일한 그리스도라 하는 것을 증거로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 가운데서 20절 말씀에 주목해서 말씀을 증거하고자 합니다. 본문 20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짧은 구절이지만 두 가지 위대한 사상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는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확실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는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라는 것입니다. 20절 후반에 “그리스도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예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이 중요한 많은 이유 중에서도 그리스도가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셨다는 이유가 중요합니다. 이 두가지 위대한 사상이 한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이다는 20절 앞부분을 증거하는 것보다도 뒷부분인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라고 하는 선언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리스도가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셨다는 것은 세 가지 큰 의미가 있습니다.

1. 성도들은 “죽음”에 대해서 획기적인 관점의 변화를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가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셨다는 선언은 성도들이 죽음에 관해서 획기적인 관점의 변화를 가지라고 하는 요구입니다. 이 말씀은 성도의 죽음에 대해서 두가지 관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죽음이란 “잠자는 것”이고 안식을 의미하며, 새로운 차원에서 일어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죽으면 고통이 올 것이고 모든 것이 다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죽음이란 잠자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조심할 것은 기독교 역사에는 영혼수면설 혹은 영혼멸절설이라고 하는 이단 사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영혼수면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의식이 없이 존재한다는 사상입니다. 또 영혼멸절설은 사람은 죽으면 영혼이 멸절되어 없어진다는 이론입니다. 이것은 16세기의 아나뱁티스트들이나 아니면 20세기의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와 같은 이단들이 믿고 있는 사상으로 이미 이단으로 정죄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죽음이란 잠자는 것이다”라는 말은 의식이 없다고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천국에 가서 하나님보좌 앞에서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죽음이란 잠자는 것이다” 하는 것은 수고를 그치고 안식한다는 의미입니다. 수고도 고통도 슬픔도 질병도 없는 상태에서 지극한 행복감 가운데 안식하는 것이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다가 죽는다고 하는 것은 안식으로, 행복으로 들어가는 것이지 어두운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잠을 자는 것은 목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잠잘 때 죽어야지, 없어져야지 하고 자지 않습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힘을 얻어서 다시 아침에 일어나기 위해서 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하는 성도의 영혼은 다시 육신을 입어 생명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바울은 잠을 잔다고 표현했습니다. 성도의 죽음은 잠자는 것입니다.
  둘째, 성도의 죽음이란 “씨를 심는 것(Sowing)”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첫 열매라고 했습니다. 열매가 있기 위해서는 씨를 심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죽음이란 씨를 심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6절에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죽음이란 우리의 육신을 심는 것입니다. 육신은 연약해 나이가 들면 늙어갑니다. 그런데 이 육신을 심는 것입니다. 심으면 우리는 썩지 않는 영광스럽고 강하며 신령하고 죽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아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죽음은 그 과정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절로 44절에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여기에 “심고”와 “다시사나니”라는 동사가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씨앗인 육신을 심게되면 죽지않고 병들지 않고 쇠하지 않고 늙지도 않는 그런 몸으로 다시 살아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도 없고 죽음을 너무 슬퍼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죽음이란 잠자는 것이요 씨를 심는 것에 불과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에 예언된 모형의 “실체” 이시다.

  그리스도가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셨다는 선언은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의 모형의 실체라고 하는 확증의 선언인 것입니다. 구약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많은 모형(type)들이 있습니다. 모형은 실체가 아니고 앞으로 올 실체에 대한 그림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구약에 예언된 대부분의 모형은 그리스도의 수난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수난을 받을 것이라고 모형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어린양이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든가 5대제사 피의제사가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든가 광야에 달린 놋뱀을 보면 살리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든가 이런 대부분은 그리스도가 피흘려 죽으심으로 자기 백성의 죄를 사하실 것에 대한 모형인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실 것에 대한 모형도 있는 것입니다.
  레위기 23장 4절로 14절에는 유대인의 일곱 절기가 나오는데 그 가운데서 세 가지 절기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 월력으로 일월을 니산월이라고 합니다. 유대인 월력으로 1월 14일은 여호와의 유월절이라고 했습니다. 애굽왕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놓아주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피, 개구리, 이, 파리, 전염병, 독종, 우박, 메뚜기, 어둠, 장자의 죽음의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마지막 재앙이 죽음의 천사를 보내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다 죽이는 재앙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너희는 어린 양을 잡아서 그 피를 가지고 문설주에 발라라. 문설주에 피를 바른 집은 죽음의 사자가 건너 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월력으로 1월 14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양을 잡아 피를 바르고 그 고기는 먹었습니다. 죽음의 사자는 피를 바른 집들은 모두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피가 없는 애굽 집들의장자는 다 죽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애굽왕 바로가 손을 들고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에서 해방시켜 버렸습니다. 이처럼 넘어갔다 해서 그날을 영어로 “pass”라 하는데 그냥 넘어간 것이 아니라 “over” 해서 넘어갔다 해서 합쳐서 “passover”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한자로 넘어갔다는 넘을 월을 써서 유월절(逾越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 월력 1월 14일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어 피를 흘리심으로 그 피를 믿는 사람은 사망에서 구원받고 애굽의 포로, 죄의 포로에서 해방된다는 것을 예표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5장 7절 후반에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은 예수님이 어린양이 되어 죽을 것이다 하는 예표입니다.
  유대인 월력으로 유월절 다음날 1월 15일부터 시작해서 7일간은 무교절(無酵節)이라고 합니다. 무는 없을 무자요 교는 누룩교자입니다. 그러므로 누룩이 없는 떡을 먹는 절기라는 말입니다. 이 7일 가운데 첫 날과 마지막 날은 큰 성회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7일 동안은 누룩없는 떡을 먹을 뿐만 아니라 노동도 금지되었습니다. 무교절 첫날은 토요일이기 때문에 유월절은 금요일이요 그 다음날은 토요일입니다. 토요일은 유대인의 풍습으로는 안식일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이 무덤에 묻혀 장사될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죽음이란 안식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안식후 첫날 즉, 유월절로부터 이틀 뒤인 지금 요일로 치면 주일은 초실절이 되는 것입니다. 이 초실절은 큰 절기로는 무교절 7일 가운데 포함되어 있습니다. 초실절이 되면 이스라엘 자손들은 보리를 거두는데 그 첫 열매를 거두어 이삭 한 단을 제사장이 가져갑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이삭 한 단을 흔들어서 제사를 드립니다. 이 흔드는 제사를 가리켜 한자로 흔들 요자를 써 요제(搖祭)라고 말합니다. 요제라고 하는 방식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첫 열매가 되셨다는 표현의 기원은 바로 구약의 초실절에 있는 것입니다. 초는 첫이라는 말이고 실은 열매실입니다. 구약의 초실(初實)에서 첫열매라고 하는 용어가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교절 절기 가운데 안식 후 첫날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하는 초실절인 것입니다.
  초실절이 되면 제사장은 첫열매를 하나님앞에 흔듭니다. 이것이 첫열매가 맞다고 흔드는 것입니다. 첫열매의 증거를 보여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심으로 부활하신 몸을 하나님께 보여드렸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열두 번 이상이나 나타나서 증거로 보여드렸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모든 절기를 연구하게 되면 유월절은 그리스도가 수난 받은 날이요 그다음 안식일은 그리스도가 장사된 날이요 그다음 초실절은 그리스도가 부활한 날이요 그리스도의 첫 열매를 흔든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를 제자들과 하나님께 보이는 것을 예표하는 것이다 이것을 그림처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모형을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실현하신 분은 인류역사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십니다. 사람이 성경을 읽고 연구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성서가 예언하고 있는 메시야임이 틀림없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성경을 비판할 목적으로라도 읽으면 결국 나중에는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이 예언하고 있는 메시야가 틀림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은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예수님은 구약이 예언하고 있는 메시야 이심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시간이 지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도 모두 육신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보증이다.

  그리스도가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셨다는 선언은 시간이 지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도 모두 육신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보증입니다. 첫 열매를 제사장이 흔드는 것은 첫열매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의미도 있습니다만 또한 이 첫열매를 흔들지만 저 밭에는 곡식이 잔뜩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첫열매를 보시고 “하나님 저 밭에 있는 곡식을 다 무사히 거둘수 있도록 우리를 축복해 주시고 이 추수가 끝까지 잘 될 것을 보증하여 주시옵소서”라며 축복과 보증을 해달라고 첫열매를 하나님께 흔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첫째로 그리스도 예수님이 육신의 부활을 하신 이후로는 세계적인 규모의 영원추수가 있을 것이다를 말하는 것이고 둘째로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부활의 첫열매가 되신것처럼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도 부활의 열매를 맺게 된다고 하는 보증인 것입니다. 첫열매만 수확하고 나머지는 수확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도 그리스도가 육신의 부활을 한 것처럼 믿는 성도들도 육신의 부활을 하게 될 것이다 라고 하는 확실한 보증으로서 그리스도가 첫열매가 되신다고 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1절로 24절에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이 강림하시게 되면 세 가지 현상이 일어납니다. 첫째는 그리스도 예수께 붙어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모두 육신의 부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직은 예수 믿고 죽은 사람들이 부활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이 강림하실 때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22절에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은 조심스럽게 해석해야 됩니다. 아담은 육신을 가지고 태어나는 모든 인간의 대표자입니다. 육신을 가지고 아담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아담처럼 죄인이 되었고 아담처럼 죽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도 대표자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all people in Christ)과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사람(all people in Adam)은 다른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택하신 사람들이요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람들이요 하나님이 의롭다 하심을 주시는 사람들이요 이들은 그리스도의 양들이요 예수님은 이들을 가리켜 자기 백성이라 하셨고 이들은 알곡이요 좋은 나무요 좋은 고기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삶을 얻게 될 것입니다.
  23절에 보니 그 의미가 분명해 집니다.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아셔야 됩니다.이 세상에 다른 것은 못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있는 일은 꼭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에 붙어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다시 죽은자 가운데 부활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하되 요한이 말한 것처럼 부활해서 지옥가는 사망의 부활이 아니고 부활해서 하나님과 영생을 누리는 생명의 부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24절 후반에 “그 후에는 나중이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 후에는 종말이 온다는 것입니다. 더 다른 역사시대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님이 강림하실 때는 첫째로 믿는 그리스도 예수께 붙어있는 자는 생명의 부활을 하고 종말이 오는데 두 번째 일어나는 현상은 무엇이냐? 24절 중반에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대적하는 모든 원수, 대적세력들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그 때에 다 망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정치세력을 가진 자들이 그리스도를 대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안 망해도 그리스도 예수님이 강림하실 때는 다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대적하는 문화세력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반대하는 영화를 만들고 불신앙적인 글을 씁니다. 이런 문화세력도 그리스도가 강림하실 때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대적하는 경제세력은 그리스도 예수를 대적하는데 돈을 씁니다. 그러나 그런 세력들도 그리스도 예수님이 강림하실 때는 멸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이 강림하실 때에는 첫째로 그리스도 예수님께 붙어 있는 사람들은 생명의 부활을 하고 둘째로 그리스도 예수를 대적하는 세력들은 멸망하게 되며 셋째로 하나님 나라는 완성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는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께 바칩니다. 24절 후반에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아버지여 창세전에 택하여 나에게 주신 영혼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말고 다 구원하라 하셨고 그 백성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라고 하셨는데 그 나라가 이제 완성되었습니다. 아버지 받으시옵소서”라고 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성도의 육신의 부활, 원수 세력의 멸망, 하나님 나라의 완성의 세 가지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가 첫 열매가 되셨다 하는 것은 예수 믿고 그리스도에게 붙어있는 모든 사람들도 다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죽은 자 가운데 살아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결론

  첫 열매라고 하는 것은 우리도 그처럼 부활하게 될 것 이라는 강한 보증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시기 이전에도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약에 세 번, 신약에 세 번 있습니다. 구약 열왕기상 17장 23절에 보면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려냈습니다. 또 열왕기하 4장 35절에 보면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려냈습니다. 그리고 열왕기하 13장 21절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장사지내고 시체를 가지고 가던 사람이 전쟁이 일어나자 시체를 무덤으로 던져버렸는데 그 무덤이 엘리사의 무덤입니다.그런데 죽은 시체가 죽은 엘리사 뼈에 닿더니 그만 회생하여 살아나 버렸습니다. 엘리사는 죽어도 기적을 일으키고 죽은 뼈도 사람을 살려냈습니다. 자기는 안 살아나고 죽은 시체를 살려냈습니다. 이처럼 구약에도 죽었다가 살아난 경우가 세 번 있습니다. 신약에도 세 번 있습니다.마가복음 5장 42절에 예수님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내셨습니다. 달리다굼 소녀여 일어나라 하자 일어났습니다. 또 누가복음 7장 15절에 예수님께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려내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1장 44절에 죽은지 4일이나 된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려내셨습니다.
  이처럼 구약에 세 번, 신약에 세번 죽었다 살아난 경우가 있는데 왜 예수님을 일곱 번째 열매라고 하지 않고 첫 열매라고 하는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앞에 있는 여섯 경우는 살았났다가 다시 죽었으므로 부활이 아닙니다. 단순히 일시적으로 생명을 회복한 것(resuscitation)입니다. 그러나 부활이란 죽었다가 다시 살아 영원히 죽지 않고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피곤하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다시 살아날 줄로 믿습니다. 불교는 윤회(reincarnation)를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윤회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부활은 윤회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습니다. 그런데 죽었다가 다시 살아 영원히 죽지 않는 것입니다. 그 때 살 때는 이처럼 약한 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몸으로 죽지 않는 몸으로 썩지 않는 몸으로 살아 영원히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 성도의 부활을 보증해 주는 첫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있는 우리도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영원히 죽지 않는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다시는 죽지도 않고 썩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번 죽는 것은 멸망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슬픔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안식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을 위해서 씨를 심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성도들은 사망을 두려워하지도 슬퍼하지도 마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세상의 어떤 정치, 경제 세력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영원하고 찬란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좀 배고프고 아프고 슬프고 쓸쓸하기도 하나 그것은 잠깐입니다. 현재 우리가 받는 고난은 장차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이 소망을 갖고 살기 때문에 이 세상 살아가며 슬픔과 배고픔과 연약이 있어도 다 이길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인류에게 그리스도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 이외에 다른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요 성도의 소망이요 인류의 유일한 소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님에게 붙어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에 유혹되지 마시고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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