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말라기 2:1~9
제목 : 제사장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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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의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라 3 보라 내가 너희의 종자를 견책할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4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5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6 그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7 대저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어늘 8 너희는 정도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파하였느니라 9 너희가 내 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편벽되이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모든 백성 앞에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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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말라기”가 사람의 이름을 뜻하는지 아니면 문자 그대로 ‘나의 사자’라는 일반 명사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말라기서는 예수님께서 오시기 430여 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라기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셨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감사함과 순종함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신 하나님을 향한 불평과 반항심이 그들 속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라기 2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지도자 제사장들이 극도로 부패했다고 말합니다. 제사장들이 하는 일은 율법을 가르치고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며 백성들이 죄로 인한 저주를 받지 않고 죄사함을 받아 생명과 평강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생명과 평강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부패하여 앞장서서 악을 조장한 것입니다. 어느 사회든지 그 사회가 축복을 받을지 저주를 받을지는 그 사회 종교 지도자들의 삶의 태도에 달려있습니다. 목사가 타락하면 그 사회는 별로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은 목사가 아니니까 이 말씀이 상관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목사뿐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다 제사장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6절, 5장 10절 그리고 20장 6절을 보면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5절과 9절을 봐도 우리가 ‘제사장’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목사뿐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너의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말 2:1). 하나님께서 말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명령하실 수도 있는데 직접 명령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심정이 얼마나 급하고 간절한지 우리는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강하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에게 총 4가지를 명령하고 계십니다.
Ⅰ.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라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말 2:5). 하나님께서 레위와 세우신 생명과 평강의 언약은 민수기 25장 12~13절을 의미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의 방황을 거의 마쳤을 때 싯딤이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모압 여인들이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한 것입니다. 거기에 이스라엘 남자들이 다 넘어가서 바알신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모세에게 명하시기를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죽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또한 나머지 백성들에게는 염병을 내리셔서 이만 사천 명이 죽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스라엘 남자 하나가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자기 장막으로 음행하러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본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손에 창을 들고 그 장막으로 돌진해서 두 사람의 배를 한꺼번에 꿰뚫어서 죽였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비느하스의 행동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민 25:11~13). 비느하스가 창을 들고 미디안의 여인과 이스라엘 남자를 죽이지 아니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이만 사천 명이 아니라 백만 명도 더 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느하스 덕분에 하나님께서 진노를 그치시고 백성들에게서 염병도 거둬가셨습니다. 제사장이 자신의 직무를 올바로 수행할 때 백성들이 속죄함을 입고 생명과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말라기서에서 제사장의 책임 중 가장 중요한 책임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향한 존경심을 갖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works)과 하신 말씀(words)을 보고 존경해야 합니다. 등산을 가서 산을 보면서도, 하늘 위에 태양을 보면서도, 밤에 별과 달을 보면서도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한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생각을 갖고 살아가십니까?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참으로 중요한 분이시라고 생각하는 것을 뜻합니다. 요한계시록 5장을 보면 하나님의 보좌에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가 있고 천천만만의 천사들이 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천천만만의 천사들이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을 찬송합니다.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계 5:12). 쉽게 말하면 “어린양은 존귀하도다”라고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심으로 지옥에서 우리를 건져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누구냐고 물으면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나님 그리고 우리에게 구원을 알게 해주신 성령님이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을 우리가 존귀하고 가치 있게 여겨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여겨주십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업신여기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멀리하십니다. 우리의 영혼이 축복받고 존귀한 인생이 되는 중요한 비결은 하나님을 가장 존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그 사람을 멸시하십니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며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도 존귀하게 해주시고 그 사람을 자랑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두려운 마음을 갖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과 나를 비교해 보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결하시지만 나는 부정하고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지만 나는 부패했으며 하나님께서는 높으신 분이시지만 나는 낮은 자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지만 나는 약하고 하나님께서는 전지하시지만 나는 무지하다.” 이렇게 비교해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나님께서는 두려운 분이시라는 고백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하나님의 영광을 대할 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사 6:5). 이사야 선지자 같은 사람도 자신이 부정하여 망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는데 하물며 우리는 하나님을 얼마나 두려워해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약하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죄를 지으며 살 수는 없습니다. 중간에 돌이켜야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두렵기 때문에 계속해서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첫째, 우리 속에 하나님을 존경하고 둘째,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며 셋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모두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책임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 경외하는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Ⅱ. 제사장들의 입술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언어”가 있어야 한다
“그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대저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말 2:6~7). 제사장들은 언어가 중요합니다. 제사장들은 언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언어를 써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언어는 네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진실입니다. 제사장들은 정직해야 됩니다. 진리를 말해야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 8:44). 마귀는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버지입니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마귀의 종인 것입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엡 4:25).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골 3:9). 제사장들이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항상 정직한 언어, 진실한 언어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을 뽑을 때도 거짓말하는 사람은 뽑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마귀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정결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정결한 말을 해야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하나님의 영광을 대하자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라고 말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대는 온통 욕설과 부정한 언어로 가득합니다. 지난번에 어떤 사람은 국회의원으로 나왔다가 하도 욕설을 많이 해서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인터넷을 봐도 언어가 거칠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세대 속에서도 성도들은 정결한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셋째, 덕을 세우는 언어가 되어야 합니다. 남에게 유익을 주는 언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 4:29). 신약성경에서 특히 야고보 사도는 사람의 혀가 가지고 있는 파괴력에 관하여 경고합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약 3:6). 지옥불이 사람의 혀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악한 말, 남을 해치는 말, 죽이는 말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의 입에서 지옥불이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지옥불이 남을 태울 뿐만 아니라 자기 인생의 바퀴도 불사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말, 복음을 증거 하는 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죄악에서 돌이키도록 하는 말을 사용하게 되기 바랍니다.
넷째, 은혜스러운 언어가 되어야 합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 같이 하라” (골 4:6). 제사장들은 은혜스러운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Ⅲ. 제사장들은 늘 “하나님과 교제하며 동행”해야 한다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 (말 2:6).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됩니다.
첫째, 기도하는 삶입니다. 성도의 삶에서 가장 어려우면서도 필요한 일은 기도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힘을 받습니다. 성도들은 기도를 해야 영적인 힘이 생기고 생명력을 얻으며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만 나오고 기도회에 한 번도 안 나오시는 분들은 그러지 마십시오. 교회가 멀어서 못 나오시면 혼자서라도 집에서 꼭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매일 기도와 성경 읽기를 하게 되면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기도하면서 자꾸 다른 음성을 들으려고 합니다. 저도 경험해보니까 가끔 성령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가끔이지 매번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늘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직접 말씀하시는 것만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단들의 특징입니다. 자신이 매번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100% 이단입니다. 그런 사람들과 가까이하지 마십시오.
셋째,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분에 정성을 다하시고 충성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맡은 직분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잘하든 못하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정성 어린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내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구역장의 직분을 내게 맡기셨는데 1년 내내 구역예배 한 번도 안 드리고 앞으로도 드릴 계획이 없으면 그만 두셔야 합니다. 구역예배 드리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안 오면 혼자서라도 말씀 보면서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성을 다하는 것을 보십니다.
기독교인의 삶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다 보면 거기서 축복과 은혜와 능력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삶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기도 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겪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끔은 푸른 초장을 지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디를 가든지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Ⅳ. 제사장들은 “복음 전도의 삶”을 살아야 한다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대저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어늘” (말 2:6~7)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입니다. 여호와의 사신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후 5:20).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대사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는 대사냐? 사람들을 만나서 “너희는 하나님과 원수로 지내지 말고 하나님과 화목하라” 이렇게 복음을 증거하는 대사입니다. 만약 외국에 대사를 파송했는데 가서 놀기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그런 대사는 해고하고 다른 사람으로 바꿔야 합니다. 대사는 국가가 명한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사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과 원수로 지내지 말고 화목하라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 주일인 10월 14일은 새생명 초청잔치의 날입니다. 우리가 대사의 사명을 수행하는 주일입니다. 이번 주 집에 가실 때 전도지를 가지고 가서 사람들에게 다 나눠주십시오. 받든지 안 받든지 간에 나눠주시고 전도축제가 있으니까 오시라고 초청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신으로서 사명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제사장에게 하나님께서 지금 부탁하시는 것이 아니라 명령하시는 것인데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지 않으면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말 2:2). 복인 줄 알고 누리던 것들이 도리어 고통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자식들이 많아서 복인 줄 알았더니 다 속을 썩여서 고통이 되고, 돈이 많아서 복인 줄 알았더니 그것으로 인해서 불안하고 고통이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종자를 견책할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말 2:3). 종자라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식물의 씨앗이라는 의미와 둘째, 사람의 후손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이 농사를 해서 씨를 뿌려도 농사가 안 된다는 이야기인지 자식을 낳으려고 해도 낳을 수 없다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둘 다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사장이 자신의 사명을 다 하지 않으면 그 후손들이 하나님께 책망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라기 2장 3절 중반에는 희생의 배설물을 얼굴에 바른다고 나옵니다. 오늘 아침에 교회에 오기 전 화장을 하면서 화장실에서 퍼다 바른 분이 계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얼마나 냄새나고 수치스럽겠습니까? 원래 제사장이 제물을 드릴 때는 제물의 배설물들은 성전 바깥으로 나가서 태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제사장의 얼굴에 바르시겠다고 하시니 얼마나 수치스럽겠습니까?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는 헤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네 가지 사명을 잘 지켜야 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언어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시고 넷째,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최선을 다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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