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베들레헴 작은 골(미 5:2)

날짜 : 2011-12-25
본문 : 미 5:2

본문 : 미가 5:2 
제목 : 오 베들레헴 작은 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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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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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구약성서에서 제일 위대한 주제는 메시야의 강림입니다. 메시야의 강림은 한 번에 계시된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계시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 3:15). 메시야는 천사 또는 짐승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여인의 후손 즉, 사람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창 22:18). 그리고 메시야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될 것입니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편에서 저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민 24:17). 또한 메시야는 아브라함의 자손 중 야곱의 후손으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창 49:10). ‘실로’란 ‘평화를 가져오는 자’라는 뜻으로 메시야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메시야가 야곱의 후손 가운데 네 번째 아들인 유다 지파에서 나올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계 5:5). 그리스도를 가리켜 유다 지파의 사자라고 말합니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삼하 7:12). 이것은 메시야가 유다의 자손 중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다는 예언입니다. 
 메시야는 인간으로 오며 아브라함, 야곱, 유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다고 구약성서에 점진적으로 예언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 7:14). 그런데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지만 동정녀에게서 탄생한다는 예언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사 9:6). 이것은 메시야의 본질에 대한 장엄한 예언인데, 구약성서에 예언된 모든 내용이 신약성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백 퍼센트 정확하게 실현된 줄 믿습니다. 
 미가 5장 2절은 메시야의 탄생 장소에 대한 가장 중요한 예언입니다. 마태복음 2장에서 동방의 박사들이 별을 보고 찾아와 예루살렘에 이르러 헤롯왕에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헤롯왕이 모든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불러 모아 유대인의 왕이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으니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이구동성으로 유대 땅 베들레헴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읽은 본문은 메시야 탄생 장소에 대한 예언임이 분명합니다. 메시야가 되려면 반드시 베들레헴에서 나야 합니다. 다른 곳에서 태어나는 것은 메시야가 아닙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메시야의 탄생 장소뿐 만이 아니라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메시야의 본질에 대해서도 증거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메시야가 어떤 분이신지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Ⅰ.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메시야의 본질. 

 첫째,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하기 이전에 영원 전부터 선재하신 분이십니다.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성”(Pre-existence of Jesus Christ)이라고 합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사 9:6). 메시야를 가리켜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하였습니다. 메시야가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성부 하나님이라는 것이 아니라 축복의 아버지, 구원의 아버지, 모든 사랑의 근원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요 8:58).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예수님은 존재하신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 6:38-39). 하늘에 영원 전부터 선재 하시다가 이 땅 가운데 오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는 줄 믿습니다. 
 둘째, 메시야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유대인의 왕, 만왕의 왕, 만주의 주, 평강의 왕이십니다. 인간을 다스릴 왕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마 2:2).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왕이십니다.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계 19:16).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왕 중에 최고의 왕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일 뿐 아니라 만유의 왕이십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사 9:6). 메시야는 평강의 왕입니다. 성탄절은 왕이 오신 날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종이 아니라 우리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진짜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메시야는 왕이십니다. 
 셋째, 메시야는 성육신하시기 이전에도 여러 번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미 5:2). “근본”이라는 말은 영어로 “Goings forth”입니다. 이 단어는 복수로 되어 있으며 태곳적부터 자주 오셨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 분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신 일은 옛날부터 계속해서 진행되어온 일이라는 것입니다. 메시야가 육신을 입고 온 것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때 일이지만 육신을 입지 않고 오신 일은 구약성서에 많이 있습니다. 
 구약성서에서 “여호와의 사자”(The Angel of the Lord)라는 표현은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창 22:11). 여기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출 3:2).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서 모세에게 출애굽의 사명을 주신 여호와의 사자,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삿 6:12). 기드온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를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니라” (삿 13:18).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났을 때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의 이름을 물으니 “기묘”(Wonderful)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사야 9:6절에 기록된 메시야와 같은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성서에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는 성육신하시기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 메시야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육신으로 태어나신 아기의 존재는 영원 전부터 선재하신 그리스도이시고, 우리의 왕이시며, 성육신하기 이전에도 인간에게 여러 번 나타나신 분이시라는 것을 미가 5장 2절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둘째로 메시야가 탄생하신 베들레헴은 어떤 곳입니까? 

Ⅱ. 메시야가 탄생하실 베들레헴의 네 가지 특징. 

 첫째, 베들레헴은 슬픔의 마을입니다.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창 35:19-20). 야곱이 삼촌 라반의 집에서 이십 년을 지내다가 고향으로 돌아갈 때 베들레헴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라헬이 해산할 때가 되었는데 그 고통이 심해 라헬은 베냐민을 낳고 죽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그 슬픔으로 라헬의 묘비를 세웠습니다. 그곳이 베들레헴입니다. 야곱은 베들레헴을 지날 때마다 라헬이 생각나 베들레헴은 나에게 슬픔을 준 곳이라고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베들레헴은 성경에 슬픔의 마을로 처음 등장하게 됩니다. 이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메시야가 우리 대신 슬픔과 고난을 당할 것이라는 예언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 53:3). 베들레헴에 탄생하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죽기까지 고생하시고 십자가까지 지시도록 고생하실 슬픔의 메시야입니다. 
 둘째, 베들레헴은 구원의 마을입니다. 베들레헴은 “생명의 떡”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6:35). 예수님은 생명의 떡, 영생의 떡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죽어도 다시 살고, 살아도 영원히 사는 선물을 받게 되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영생이 없습니다. 영생의 반대는 영벌입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벌 받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습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 진리는 하나님께서 우주를 다스리시는 법칙입니다. 
 구약성서에서 베들레헴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책은 룻기입니다.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이라는 남자는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과 기룐 그리고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 모압 땅으로 이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십 년 만에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은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오미와 두 며느리 룻과 오르바 세 여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나오미가 하나님께서 베들레헴을 권고해서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두 며느리는 모압 사람이었기 때문에 모압 백성에게로 돌아가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때 오르바는 모압으로 돌아갔지만 룻은 돌아가지 않고 나오미와 함께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룻과 나오미가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베들레헴은 보리를 추수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리를 추수하였는데, 룻과 나오미는 보리밭에 가서 떨어지는 보리를 주어 생명을 연명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룻은 엘리멜렉의 친척인 보아스에게 속한 보리밭에 가서 이삭을 줍게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부유하고 나이 많은 총각이었데, 룻을 가만히 보니 모압 여인이지만 인물도 좋고, 믿음도 좋고, 착하기도 하여 마음에 두었습니다. 이에 나오미는 룻에게 보아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기업 무를 사람이기 때문에 청혼을 하면 그 사람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룻은 한 밤중에 보아스의 발꿈치에 누워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라고 말하며 청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보아스가 한 밤중에 이런 일을 옳지 않게 여겨 날이 밝으면 당신의 청혼을 받아들여 기업 무르기를 하겠다고 하고, 날이 밝자 기업 무르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기업 무르기(Redemption)는 자기 친척이 가난해서 땅을 팔았을 때 그것을 부자 친척이 다시 돈을 주고 사오는 것인데, 땅만 사오는 것이 아니라 친척이 자식이 없을 때 친척이 남긴 아내와도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Redemption” 즉, 구속인 것입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땅도 찾아주고 룻과도 결혼을 해서 베들레헴에서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보아스와 룻이 낳은 아들이 오벳이고, 오벳이 낳은 아들이 이새이고, 이새가 낳은 아들이 다윗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들레헴은 다윗이 탄생한 다윗의 동네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1) 유다에 왕이 스무 명이나 있어도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왕은 다윗 혼자뿐이었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였고, 베들레헴은 작은 마을이지만 구원의 마을이 된 것입니다. 
 셋째, 베들레헴은 생수의 마을입니다. “그 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블레셋 사람의 영채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다윗이 사모하여 가로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하매,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충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서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삼하 23:14-16). 다윗은 블레셋과 전쟁에서 베들레헴 우물의 생수를 마시고 싶어 했고, 세 용사가 목숨 걸고 우물물을 떠 왔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생명을 걸고 떠온 물을 마실 수가 없어 여호와께 부어드렸다고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이처럼 베들레헴은 생수가 있는 동네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4). 주님께서 주시는 물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됩니다. 생수의 근원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넷째, 베들레헴은 위로의 마을입니다.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애써 구로하여 낳을지어다 이제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하며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너의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미 4:10). 베벨론에 포로가 되겠지만, 다시 돌아올 것이요,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은 포로로 끌려가는 유다 백성들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이 모든 예언은 누가복음에서 실현되었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0-11). 요셉은 나사렛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을 낳게 된 것은 그때 로마 황제인 가이사 아구스도가 제국 안에 있는 모든 백성들에게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요셉도 호적을 하러 자신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잠잘 곳이 없어 마구간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예수님을 낳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왕이시고 구주인 예수님께서 말구유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때 베들레헴 근처에 있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작은 소식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으면 아무런 소망도 없고,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늘의 일과 내세의 일을 말씀하시고, 예수 믿는 사람은 부활한다는 사실과 부활의 몸으로 영생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 잠시 잠깐 살아가는 삶 속에서도 영생을 준비하며 사는 의미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베들레헴 목자들에게 천군과 천사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눅 2:14). 지금 천군 천사는 땅에서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평화를 주시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를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풍성하게 생명을 주시려는 것이고, 양을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Ⅲ.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메시야에 대한 세 가지 반응. 

 첫째, 헤롯대왕은 메시야를 거부하고 죽이려 하였습니다.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마 2:8) 자신이 왕인데 왕이 또 있을 수 없다고 하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예수님을 찾아 죽이려 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들레헴 근처에 살던 두 살 이하 아이들을 찾아 모두 죽였습니다. 예수님을 배척하고, 미워하고, 죽이려는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둘째, 서기관들은 성경 전문가면서도 메시야를 환영하지도 않고,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셋째, 베들레헴의 목자들과 박사들은 메시야를 환영하고, 경배하며 예물을 드렸습니다. 메시야를 경배하는 사람은 이방인인 동방사람들과 유대인도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장소, 시간, 동정녀 탄생이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이뤄진 것입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떡이요, 생명수의 근원이십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중립을 취할 수 없습니다. 반대하든지, 무시하든지 아니면 환영하든지 셋 중에 하나입니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무시하는 사람은 왕의 진노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진실로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그리스도를 환영하고, 영접하고, 왕으로 섬기며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이십니다. 우리는 왕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의 작은 골이라는 곳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사람이 자기 스스로 위대하게 여기고, 지혜롭게 여기며, 굉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예루살렘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늘의 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베들레헴은 슬픔의 마을입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슬픔이 있고, 자기 스스로 작은 자이고, 죄인이고, 하나님 앞에 부끄럽게 살았다고 고백하며, 작은 자가 되고 슬퍼하는 자가 될 때에 하늘의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베들레헴에 메시야가 오셨듯이 하늘의 축복을 받으려면 우리 영혼은 스스로 작게 여기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베들레헴과 같이 되어야 하늘의 축복과 구원과 위로가 임하시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왕 되신 하나님 앞에 스스로 작게 여기고 겸손해지면 왕이 우리를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베들레헴 같은 슬픔 속에서도 하늘의 위로와 구원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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