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호세아 14:1~9
제목 :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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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 2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 3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 4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저에게서 떠났음이니라 5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6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행목 같으리니 7 그 그늘 아래 거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저희는 곡식 같이 소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 8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 내가 저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 9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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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호세아는 구약성경의 히브리어로 여호수아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여호수아와 호세아는 히브리어고 헬라말로는 예수입니다. 예수와 호세아는 같은 말입니다. 즉 호세아의 말씀은 옛날 사람 누군가 한 말씀이 아니라 오늘날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이라’ 이렇게 받아들이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호세아는 4-14장까지 호세아의 아홉 편의 설교입니다. 14장은 아홉 번째 설교이자, 마지막 설교이고 호세아서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호세아는 주로 북왕국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은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는 예언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14장은 하나님이 그들을 회복시키신다는 예언이 주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는 한마디로 말을 하면 패역이었습니다. 패역하다는 말은 어감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말로는 배역이라고도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배역은 등지고 되돌아간다는 말입니다. 영어로는 backsliding입니다. 뒤로 자꾸 미끄러진다는 뜻입니다. 신앙이 자꾸 뒤로 후퇴하다가 미끌어지는 것을 배역 혹은 패역이라고 합니다. 호세아 14장의 핵심구절은 4절입니다. “하나님은 패역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사랑하겠다” 이것이 호세아 14장의 주제입니다. 20세기의 최고의 설교자였던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참 훌륭한 설교자였습니다. 저는 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설교 한편은 참으로 주옥같다고 생각합니다. 이분은 원래 직업이 의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설교자로 부르셔서 그가 20세기의 가장 탁월한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쓴 책 가운데는 「설교와 설교자」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에서 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젊은 시절에 의사 설교자로 남부 웨일즈 지역에서 설교하고 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젊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충성을 했습니다. 가정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큰 위기가 왔습니다. 바람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를 따라서 남부 웨일즈에서 런던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런데 그의 삶은 점점 타락하고 부패하고 깊은 혼돈에 빠지게 되었고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삶의 얽힌 것을 정리할 수 없으니까 자살을 결심하고 런던의 템즈 강(Thames River)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으로 걸어가던 도중 자기가 젊은 시절에 하나님 말씀을 들었던 의사 설교자가 생각난 것입니다. 그분이 런던에 와있다고 하는데 그분은 어디계신가 하여 이 배역한 사람이 자살하던 길에 의사 설교자인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설교하는 웨스트 민스터 채플로 찾아간 것입니다. 당시 영국 황실이 있는 버킹검 궁전의 길 건너편에 웨스트 민스터 채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예배에 참석했는데 마침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설교를 하셨는데 “하나님은 배역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나님은 배역한 자를 회복케 하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설교를 듣다가 그의 삶은 획기적으로 변화되고 타락했던 모든 삶은 깨끗이 정리되고 다시 헌신적인 성도가 되어서 그의 인생 후반부는 웨스트 민스터 채플에서 봉사하고 열매 맺는 성공적인 삶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해볼 것은 이 사람이 진정한 성도였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성도라 할지라도 일시적으로 세상의 유혹에 빠져서 배역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입니다. 참된 신자라도 신앙이 뒤로 미끄러지고 미끄러지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심각한 영적인 후퇴를 경험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예언을 하던 여로보암 2세 시대는 오늘날 대한민국과 여러 가지로 비슷합니다. 물질도 풍요하고 외적으로 성공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물질은 풍요해도 이전 세기와 비교를 해볼 때 심각한 영적인 배역이 일어났던 시대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호세아 14장은 1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배역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이스라엘이 고꾸라졌습니다. 엎드려졌습니다. 왜 엎드려졌습니까? 불의하다는 것은 신앙이 배역해서 엎드려졌다는 것입니다.
Ⅰ. 신앙이 배역하면 어떤 상태가 되는가? (1-3절)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앙의 배역을 돌이키고 돌아와서 세 가지를 말하라고 했습니다. 첫째, 수송아지를 대신해서 내 입술을 드리겠습니다. 둘째,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않고 말(타고 다니는)을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셋째, 손으로 지은 우상을 향해서 너희가 우리 신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이 축복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게 되면 신앙의 배역한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습니다.
1. 입술을 주께 드리지 않는다.
여러분 사람의 말하는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 기능입니까? 말은 인간이 가진 기능 가운데서 가장 탁월하고 중요한 기능입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습니다. 말이 얼마나 중요해요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을 수도 있고 원수가 될 수도 있고, 원수가 됐던 사람도 화목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전화만 잘 받아도 먹고 사는데 지장 없다고 합니다. 장로님들 하시는 말씀이 전화도 잘못 받는데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누구쇼? 웬만하면 끊으쇼" 라고 하면 그 사업 망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의 능력은 대단한 능력입니다. 그런데 신앙을 배역하게 되면 이 입술의 악 영향이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이 배역한 사람들은 입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될 입술이 기도하지 않고 전도해야 될 입이 전도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될 입이 찬양하지 않고 진리를 말해야 될 입이 거짓을 말하고 하나님을 예배해야 될 입이 바알을 숭배하는데 쓰이면 입술의 악 영향이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배역입니다. 그러니까 내 신앙이 지금 뒤로 미끄러져 있는지 전진하고 있가를 보려면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입술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은 사람은 신앙이 배역한 사람입니다.
2. 세상의 것을 의지하고 있는 상태이다.
신앙이 배역한 상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앗수르를 의지합니다(3절). 왜냐하면 앗수르가 그 당시에 떠오르는 정치세력이었기 때문입니다. 떠오르는 세력인 앗수르를 의존하고 타고 다니는 말 군사력을 의존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정치세력과 군사세력으로 나라가 지켜지지 않습니다. 60만 대군 가지고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줄에 딱 서면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정치력이나 군사력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의존하고 하나님을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도가 되어도 이 세상에 살면서 파워를 원합니다. 또 영향력도 원하고 권세도 얻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것에 마음에 새겨서 하나님을 버린다면 신앙의 배역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세상의 것들은 워낙 파워가 있어서 하나님과 맞먹습니다. 하나님과 맞먹는 파워가 있는게 돈입니다. 돈을 버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많이 버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많이 버시고 많이 저축하시고 그러십시오. 그러나 주일날 돈 버느라 교회도 안 나오고 또 하나님도 섬기지 않고 돈에 마음을 뺏겨서 하나님을 옆으로 치워놓고 이렇게 되면 그 사람 신앙이 배역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명기 17장 16절입니다.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애굽에 말을 얻으려고 자꾸 가다보면 말만 갖고 오는게 아니라 우상도 갖고 오니 말을 많이 두지 말라고 명백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정치세력 앗수르에 줄 서고 군사력에 줄 서고 하나님은 떠나버리고 멀리하여 신앙이 배역해서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나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는가? 돈을 의지하고 있는가?’ 둘 다 의지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신앙이 배역한 상태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잠깐 좀 계시죠. 주일날만 나가주는 것만으로 감사하지 뭘 자꾸 더하라 하십니까? 주일날 나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줄 아십시오. 나는 돈 따르겠습니다.” 이러지 마시란 말입니다. 앗수르나 말은 배반을 합니다. 이스라엘이 앗수르를 의지했더니 앗수르가 배반을 해서 주전 721년 이스라엘을 망하게 했습니다. 돈, 명예, 권력, 인기 이런 것들은 그것이 우리를 살려줄 것 같아도 결국 우리가 이 땅을 떠나 사망할 때는 전부 배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줄을 서있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도움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줄에 딱 서있으면 돈도 따라옵니다. 하나님을 따라가면 돈도 따라오고 인기도 따라옵니다. 권력도 마찬가지 입니다. 권력이 최고다 쫓아가면 권력이 도망갑니다. 그런데 하나님 전심으로 따라가면 권력 싫다고 해도 붙여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배역은 세상 것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3. 우상 숭배는 신앙배역의 극치이다.
자기가 나무를 깎아서 신이라고 칭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비합리적인 생각입니까? 여로보암 1세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창시자인데 금송아지 두개를 만들어 놓고 단과 벧엘에 두고 이것이 ‘너희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로라’고 그랬습니다.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인 것입니다. 금송아지를 섬기는 사람들이 바알과 아세라는 쉽게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버리게 되었고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헌신을 버리게 되었고 이것이 이스라엘의 배역이요 불의였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우리 시대의 거울입니다. 예수 믿은 지 오래되어도 입술로 한번 기도해보지 않고 한번 전도해보지 않은 사람은 배역한 것입니다. 또 하나님보다는 그래도 돈이 좋고, 권력, 명예, 인기를 의지하고 거기 줄 서 있는 사람 신앙이 배역한 것입니다. 또 하나님 사랑하는게 아니라 마음 속에 뭔가 더 사랑하는 한 가지를 품고 있는 사람이 신앙의 배역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불의인 것입니다. 신앙이 배역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벌을 불러오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신앙의 배역은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초기에 잡아서 고치면 살지만 이것이 너무 퍼져버리면 이건 고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고서는 나을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조금이라도 배역한 것이 있으면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주일에 와서 설교 한편 듣고 그걸로 끝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주일에 한 끼 먹고 사는 사람 있습니까? 집에 가서도 성경 부지런히 읽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이 가까워지고 성경을 멀리하면 귀신이 가까이 온다는 것이 진리인 것입니다.
Ⅱ. 회개하고 돌아오는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반응은 어떤 것인가? (4-8절)
하나님은 고치시는 하나님이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입니다(4절). 택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무궁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택한 백성이기 때문에 잘하면 하나님이 상급을 주시고 잘못하면 또 징벌을 주십니다. 이렇게 사랑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표현이 다릅니다. 예레미야 31장 3절입니다.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하나님의 사랑은 무궁한 사랑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해도 사랑하시고 잘못해도 사랑합니다. 잘하면 상주시고 잘못하면 매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상급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겠습니까? 매로 경험하겠습니까?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배역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무궁한 사랑은 끊어지지 않고 하나님이 즐거이 사랑하십니다.
1. 성도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회복시키신다. (5-6절)
하나님이 배역으로부터 돌아오는 성도들을 백합과 같고 백향목 같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둘 다 백자로 시작하죠? 하나는 백합화이고, 또 하나는 백향목입니다. 백합화는 꽃이고 백향목은 나무입니다. 백합화와 백향목의 첫 번째 특징은 향기롭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향기롭고 아름다운 삶이 되게 해주신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1년에 큰비가 두 번 오는데 씨 뿌릴 때 이른 비가 오고 곡식 거둘 때 늦은 비가 옵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 가지고 농사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중간에 이슬이 옵니다. 이슬은 소리도 없이 옵니다. 이슬은 곡식과 채소를 키워가지고 살려주고 무사히 추수를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와 같습니다. 소낙비 은혜도 중요하지만 이슬 같은 은혜도 중요한 것입니다. 주일날 와서 날도 더운데 30분은 졸고 30분은 말씀을 듣고 갔다면 30분은 이슬을 맞은 것입니다. 이슬비 은혜라 이것입니다. 이슬이 떨어질 때 리듬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슬은 소리 없이 떨어집니다. 언제 스며들었는지도 모르게 스며들어서 성도의 삶을 아름답고 향기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이 배역한 사람은 삶이 아름답지 못합니다. 향기롭지 못합니다. 악취가 나는 것입니다. 내 삶은 어찌하여 이렇게 악취가 나고 아름답지 못한 것은 신앙이 뒤로 미끄러져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이슬비 은혜를 받은 성도의 삶은 아름답고 예수의 향기를 바라는 삶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성도가 착하게 살면 사람들이 다 영광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불신자들도 “저 사람 예수 믿고 강남중앙침례교회 다니더니 사람이 변화됐어. 저 사람 저렇게 좋아졌네. 예수 믿는 사람은 뭔가 다른게 있나봐” 이렇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2장 15절입니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사람들은 참 냄새를 내고 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악취를 내고 삽니다. 바르게 살고 단정하게 사는 사람들은 냄새부터 틀립니다. 지나가면 샤워 깨끗이 하고 비누 냄새라도 나잖아요. 샴푸 냄새 그러니까 우리는 나쁜 냄새를 풍기고 살아서는 안 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며 살아야겠습니다.
2. 성도의 삶에 견고성과 안전성을 회복시키신다.
여러분 우리 신앙이 배역하면 나쁜 냄새를 내지만 배역해서 돌아오면 아름다움과 향기로운 그런 삶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름답고 향기롭다는 것은 좋은 것이로되 한 가지 약점이 있습니다. 여러분 아름다운 여자가 힘 센거 보셨어요? 아름다운 여자는 콩나물을 사도 무겁다고 하기 때문에 남편이 들어줘야 합니다. 아름다운 여자하고 살려면 남편이 고생 좀 해야 합니다. 저는 고생 많이 합니다. 설겆이 해주지 파 들어주고, 쓰레기 버려주고 고생이 많습니다. 그런데요 투포환 여자 선수가 있었어요. 얼마나 튼튼해요. 튼튼하긴 하지만 아름다운 면에서는 조금 부족합니다. 즉 우리 신앙도 아름답다워야 하지만 견고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름답고도 강해야 합니다.
호세아 14장 5절입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레바논의 백향목은 향기도 향기지만 견고성, 내구성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나무입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에 레바논의 백향목을 가져다가 성전을 지었습니다. 두로왕 히람에게 돈을 주고 백향목을 강으로 바다로 실어가지고 와서 성전을 지은 것입니다. 성도의 삶에는 매력도 필요하지만 뿌리를 깊이 내린 견고성도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히 이 두 가지를 회복시키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삶이 어떠해야 된다구요? 아름다워야 되고, 견고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을 읽을 때 안타까운 것은 바나바의 조카인 마가 이야기입니다. 바울이 1차 전도여행할 때 마가를 데려갔는데 마가가 마음이 담대하지 못했나봅니다. 중간에 힘들다고 돌아가버렸습니다. 바울이 화가 나서 2차 전도여행 갈 때에 바나바가 마가를 다시 데려가자고 하니까 바울이 안 된다고 하며 바울하고 바나바하고 대판 싸웠습니다. 저는 이 말씀 볼 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후에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섰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소아시아로 가고 바나바는 구브로 섬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마가를 버렸지만 바울의 생애 말기 로마 감옥에 2차 투옥되서 기록한 디모데후서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의 유익하니라”고 기록했습니다. 바울은 마가를 버렸지만 하나님은 마가의 아름다움과 견고함을 회복시키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우리 삶은 아름다워지고,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이 불안하다는 것은 신앙의 배역이 원인입니다. 신앙이 뒤로 자꾸 미끄러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가지고 입술을 주께 드려 주께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3. 성도의 인생에 활력과 번영력을 회복시키신다.
6절입니다. “그의 가지는 퍼지며 그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의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가지가 퍼집니다. 이것은 사람의 번영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생이 활력이 있게 되고 번창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그 사람은 뭘해도 잘 됩니다. 공부를 해도 잘됩니다. 장사를 해도 잘됩니다. 지난 중에 우리 청년 집회에 토스트 가게 하시는 분 왔습니다. 김석봉 장로님입니다. 지금은 토스트 파는 것보다 설계하면서 받는 사례비가 더 많습니다. 얼마나 성공을 했는지 토스트 가게를 해도 성공을 하고, 자식들도 잘 되었습니다. 여러분 영양실조로 죽게 된 아이를 1년 동안 주사를 놓고, 비타민 주고, 밥을 잘 먹이고 운동시키면 아주 건장한 젊은이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영혼도 기도안하고 말씀을 먹지 않으면 비실비실 영양실조 걸린 아이처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먹고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고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리면 영적으로 왕성해지는 생명력을 갖게 될 줄로 믿습니다.
4. 성도의 삶이 다른 인생들에게 유익을 주는 삶이 되게 하신다.
7절입니다.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그들은 곡식 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 여러분 백향목이 나무를 가지가 퍼지고 입사귀가 무성해지면 그 밑에 사람들이 와서 쉬게 되는 것입니다. 전에는 쉬다가 다 말라버리면 돌아가 버립니다. 돌아갔던 사람이 다시 그 그늘로 돌아오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삶이 이렇게 번영력을 갖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그 그늘에 와서 쉬고 유익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배역하면 그 인생이 남에게 민폐 끼치는 인생이 됩니다. 자타에 해를 끼칩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회복되면 나에게도 유익하고 남에게도 유익을 주는 그런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 인생은 남에게 유익한지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는데도 남에게 민폐되는 인생이 됐다고 한다면 그 원인은 신앙의 배역때문입니다. 내가 예수 믿어 택한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됐는데 내 인생이 어찌 시들시들 해진다면 영적인 배역이 원인입니다.
Ⅲ.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두 종류의 반응 (9절)
9절을 읽어봅니다.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은 그 길로 다니거니와 그러나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지리라” 호세아 선지자가 하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인데 이 말씀을 들어도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죄인들은 말씀을 안 듣습니다. 바위에 딱 걸쳐서 넘어지듯이 이 도에 걸쳐서 죄인은 넘어집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여호와의 도는 정직한도다 하는 것을 깨닫고 그 도에 행한다”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패역하면 멸망한다는 것을 깨닫고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이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는 출세한 사람도 있고 돈 많이 번 사람도 있고 똑똑한 사람도 있고 공부 많이 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져 있는 사람은 총명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져 있는 사람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그 사람은 결국은 하나님의 도에 걸려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아내가 이런 말을 합니다. 자기 남편이 돈도 잘 벌고 하는 사업도 잘 되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외국을 자꾸 다니는데 어느 날은 비즈니스 석에 타니까 한 스튜어디스가 특별히 잘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자기 남편이 그 스튜어디스와 외국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도에 걸쳐서 넘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을 가까이 하는 것이 지혜요 총명입니다.
결론
여러분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떠나 입술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고 세상의 것만 추구하고 우상을 따라 산 사람은 신앙이 패역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런 사람도 택한 사람이기 때문에 회복시키시는 회복의 하나님입니다. 오늘 하나님께 등 돌렸던 사람은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했던 사람은 다시 하나님께 가까이 오시기를 바랍니다. 가까이 오실 때 맨몸으로 오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오시기 바랍니다. 주일날 한번 듣고 마시지 말고 집에 가셔서 성경을 부지런히 읽으시기 바랍니다. 읽어서 못 깨달아도 그냥 읽으십시오. 성경만 가까이 해도 하나님이 가까이 오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글자를 몰라 넘기기만 했는데 복이 오더랍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삶에 아름다움도 회복시키시고 우리 삶의 견고성도 회복시키시고 우리 가정에 번영력도 회복시키시고 우리가 자타의 유익을 주는 복된 인물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정직한 도요. 이 도의 행하는 것이 인간의 지혜요 총명인 것입니다. 우리 강남중앙침례교회 성도들은 모두 지혜롭고 총명한 성도들인 줄로 믿습니다. 정직한 도로 행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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