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호세아 13장 4-14절
제목 : 멸망 중에 오는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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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러나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5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권고하였거늘 6 저희가 먹이운 대로 배부르며 배부름으로 마음이 교만하며 이로 인하여 나를 잊었느니라 7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사자같고 길 가에서 기다리는 표범 같으니라 8 내가 새끼 잃은 곰 같이 저희를 만나 그 염통 꺼풀을 찢고 거기서 암사자 같이 저희를 삼키리라 들짐승이 저희를 찢으리라 9 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나니 이는 너를 도와주는 나를 대적함이니라 10 전에 네가 이르기를 내게 왕과 방백들을 주소서 하였느니라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네 왕이 이제 어디 있으며 네 재판장들이 어디 있느냐 11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 12 에브라임의 불의가 봉함되었고 그 죄가 저장되었나니 13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저에게 임하리라 저는 어리석은 자식이로다 때가 임하였나니 산문에서 지체할 것이 아니니라 14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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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호세아 13장은 아홉 편의 설교 가운데 여덟 번째 설교입니다. 이 설교의 주제는 북 왕국 이스라엘은 멸망을 스스로 자초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멸망 중에서도 도움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멸의 길로 가고 있는 것에 대해서 대단히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회개하면 언제라도 구원해주시니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증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계속해서 완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다가오는 멸망을 피할 길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왕이 있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 (호 13:1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왕을 주실 때도 기뻐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사무엘 선지자 시절에 이스라엘 백성이 우리도 왕이 있어야 되겠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굉장히 섭섭하게 여기셨습니다. 내가 왕인데 또 무슨 왕이 필요하냐고 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왕이 있어야 된다고 고집부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왕을 주시면서 세 가지 경고를 하셨습니다. 첫째, 아내를 많이 두지 마라. 둘째, 은과 금을 너무 쌓지 마라. 셋째, 타고 다니는 말 등을 너무 많이 두지 마라. 하지만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 가운데 하나님의 경고에 귀를 기울인 왕은 단 한명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기를 거부하고 인간을 왕으로 모셨더니 그것이 도리어 부패와 멸망을 초래한 원인이 되었고 왕은 멸망의 상황에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북 왕국 이스라엘은 B.C. 721년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침공해서 왕과 백성 모두 앗수르의 포로가 되었고 북 왕국은 완전히 멸망당했습니다. 나라가 망하니까 백성 개개인도 다 멸망당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느냐? “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나니 이는 너를 도와주는 나를 대적함이니라” (호 13:9) 이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세 가지 진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I. 죄는 파괴의 능력이 있다
죄는 건설의 능력은 없고 파괴하고 멸망시키는 능력만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열두지파가 있는데 남부의 중심지파는 유다이고 북부의 중심지파는 에브라임입니다. 북쪽의 열지파가 북 왕국을 형성했는데 그 중심지파가 에브라임입니다. 에브라임은 요셉의 두 아들 가운데 차남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를 할 때에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므낫세가 장남이고 에브라임이 차남입니다. 그런데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할아버지인 야곱이 죽기 전 두 손자를 축복합니다. 축복하는데 왼손을 므낫세 머리 위에 오른손을 에브라임 머리 위에 얹고 축복했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야곱의 손이 잘못되었다고 말했지만 야곱은 알고 있다며 차남이 장남보다 더 큰 민족을 이루고 더 큰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여 가로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창 48:19) 외국에 나가서 머리를 함부로 만지면 큰일 납니다. 그나마 오른손으로 만지면 욕만 먹지만 왼손으로 만지면 고소당합니다. 왼손을 아이들 머리 위에 얹는 것을 그렇게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야곱이 왼손을 므낫세에게 얹어서 므낫세가 복을 받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야곱이 오른손을 차남 에브라임에게 얹어 축복한대로 에브라임은 번창했습니다. “에브라임이 말을 발하면 사람이 떨었도다” (호 13:1) 에브라임이 말 한마디만 하면 사람들이 벌벌 떱니다. 말의 권세가 있고 그만큼 에브라임이 높은 지위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저가 비록 형제 중에서 결실하나” (호 13:15) 에브라임이 형제 중에서 결실한다는 것은 원래 열매를 맺는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번창하다(thrives)는 의미입니다. 에브라임은 형제 중에서 가장 번창하고 에브라임이 말 한마디만 하면 다 떠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번창하여 물질적으로 풍족하니까 이것이 축복이 안 되고 도리어 멸망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에브라임이 말을 발하면 사람이 떨었도다 저가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이더니 바알로 인하여 범죄하므로 망하였거늘” (호 13:1) 돈이 많아지고 먹을 것이 풍족하니까 자기를 높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 숭배 곧 우상 숭배인 것입니다. 자기 숭배와 우상 숭배는 일맥상통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우상을 만들어서 숭배하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원하는 사람은 권력을 갖춘 모양의 우상을 만듭니다. 돈을 원하는 사람은 돈 많게 생긴 우상을 만듭니다. 사람이 자기 숭배를 하게 되면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어있습니다. 호세아 13장 6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죄에 빠지는 과정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희가 먹이운 대로 배부르며 배부름으로 마음이 교만하며 이로 인하여 나를 잊었느니라” (호 13:6) 배부르고 물질적으로 부유하면 사람이 교만해집니다. 교만해지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고 필연적으로 우상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배부르고 돈 많을 때 조심해야 됩니다. 여러분 21세기 우리 대한민국은 호세아 13장 6절의 멸망의 경로를 걷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배부름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20세기에도 국가적 멸망의 위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제가 어렸을 때 4.19가 일어나고 또 5.16이 일어나고 어느 날 갑자기 화폐개혁을 하는 등 급격하게 변화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위기에도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회복시키신 이유는 기도하고 선교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고 선교하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선교하는 일에 우리가 아까워하지 말아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도 공짜로 받은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외국 선교사들이 와서 대학도 세워주고 병원도 세워주는 등 공짜로 받고 나눠주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선교를 위해서는 아끼지 말아야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의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배부르니까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져 멸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낱낱이 기록해놓으셨습니다. “에브라임의 불의가 봉함되었고 그 죄가 저장되었나니” (호 13:12) 이 말씀을 영어로 보면 “The guilt of Ephraim is stored up, his sins are kept on record.” 에브라임의 불의는 다 하나님이 저장해 놓으셨고 죄는 다 기록으로 남겨놓으셨다고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기록하면 봐주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록하시기 때문에 봐주는 것 없이 작은 죄 하나도 빠짐없이 다 기록을 해놓으십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말씀이 여러 곳에 나와 있습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요한계시록 20장 12절입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계 20:12)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지은 죄를 기록해놓고 그 기록대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의 죄를 다 기록을 해놓으시냐? 사람들도 이제는 USB라는 작은 물건에 책 수백 권을 저장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 기록하지 못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동영상으로 기록해놓으시고 사람마다 저지른 죄를 비디오로 보여주면 누구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록물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그 피로 싹 지워지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데 왜 밤에 꿈꾸면 옛날에 지은 죄가 자꾸 생각나는가? 그것은 마귀가 복사본을 가지고 와서 내미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마귀에게 예수님의 피로 원본은 지워졌으니 마귀야 물러가라고 명령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죄는 기억도 안하시고 바다 깊은 곳에 던져버려 아무도 찾을 수 없게 만드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기록물이 그대로 남아서 모두 심판받게 됩니다.
죄는 하나님을 대적자로 만듭니다.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사자같고 길 가에서 기다리는 표범 같으니라 내가 새끼 잃은 곰 같이 저희를 만나 그 염통 꺼풀을 찢고 거기서 암사자 같이 저희를 삼키리라 들짐승이 저희를 찢으리라” (호 13:7-8) 여러분 길을 가다 새끼 잃은 곰을 만나면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또 길을 가다 표범을 만나면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사자, 표범, 암사자, 들짐승과 같은 무서운 존재들이 왜 기록되었느냐? 하나님께서 죄를 향해서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죄인을 향한 대적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만과 우상숭배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죄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대적자가 되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멸망합니다. “저가 비록 형제 중에서 결실하나 동풍이 오리니 곧 광야에서 일어나는 여호와의 바람이라 그 근원이 마르며 그 샘이 마르고 그 적축한 바 모든 보배의 그릇이 약탈되리로다 사마리아가 그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므로 형벌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어린 아이는 부숴뜨리우며 그 아이 밴 여인은 배가 갈리우리라” (호 13:15-16) 일본 사람들은 쓰나미를 무서워합니다. 제가 오사카에 있는 장로님한테 오사카는 안정되고 좋은 곳이라며 동경사람들이 오사카로 몰려와 땅값이 올라서 좋겠다고 그랬더니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진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기 때문에 앞으로 오사카 쪽으로 오게 될 거라며 무서워 떠는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쓰나미를 무서워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허리케인을 무서워합니다. 허리케인이 한번 불면 고속도로를 달리던 큰 트럭이 공중으로 날라갑니다. 허리케인이 오면 미국도 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동풍을 무서워합니다. 아라비아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모래바람인데 이것이 한번 지나가면 생명은 다 죽어버립니다. 농사를 많이 지어 부자가 되는 것도 소가 오백 마리나 되는 것도 소용없습니다. 동풍이 지나가면 다 폐허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저희는 아침 구름 같으며 쉽게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 마당에서 광풍에 날리우는 쭉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 (호 13:3) 모아두었던 은과 금이 아침 안개처럼 사라져버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는 이처럼 건설하는 능력은 전혀 없고 파괴하는 능력만 있습니다. 번영하는 국가를 파괴하는 것도 죄이고 행복한 가정을 파괴하는 것도 죄입니다. 죄의 본질은 파괴입니다.
Ⅱ. 파괴와 멸망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누가 파괴와 멸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자초한다는 것입니다. 킹제임스버전으로 호세아 13장 9절을 보면 “O Israel, thou hast destroyed thyself; but in me is thine help.” (호 13:9) 이스라엘아 네가 네 자신을 스스로 파괴하였다고 나와 있습니다. 멸망은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스스로 자초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책임을 전가할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하나님께서 물어보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찌 선악과를 따먹었냐고 물어보니까 아담은 하와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또 하나님이 이번엔 하와에게 왜 먹었냐고 물어보니까 하와는 뱀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책임을 전가했다고 해서 뱀만 혼났습니까?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 모두 벌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담의 범죄에 대해서 자신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담의 첫 번째 죄와 두 번째 죄는 의미가 다릅니다. 아담의 두 번째부터 그 이후의 저지른 죄는 아담의 죄입니다. 그것은 우리와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담의 첫 번째 죄는 의미가 다릅니다. 아담은 하나님과 선악과만 안 따먹으면 영생하지만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언약을 맺을 때 혼자 맺은 것이 아니라 아담의 허리 안에 있는 온 인류를 대표해서 맺은 것입니다. 이것을 대표성의 원리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한 것은 아담 안에 있던 모든 인류가 동참해서 범죄한 것입니다. 대통령이 외국에 가서 조약을 맺으면 그건 대통령이 대표자로 맺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다함께 그 조약에 참여한 것입니다. 자신이 아니라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대표자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온 일류의 대표자로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 언약을 어김으로 죄가 들어왔고 모든 사람이 죄인 되었고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이른 것입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5:12) 아담 한 사람이 죄 지은 것이 모든 사람이 사망을 경험하게 된 원인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대표성의 원리입니다. 아담의 첫 번째 죄와 나는 상관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공로를 세운 것이 나와는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공로를 힘입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이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대표해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듯예수님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 즉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을 대표해서 십자가에서 죄 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벌 받은 것이 곧 내가 벌 받은 것이고 죄 사함 받은 것으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죄도 우리 각 사람의 책임이고 자범죄도 우리 각 사람의 책임인 것입니다.
죄와 멸망은 인간 스스로가 초래한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 구절을 통해 이 진리를 확증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나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 (렘 2:17) “네 길과 행사가 이 일들을 부르게 하였나니 이는 너의 악함이라 그 고통이 네 마음에까지 미치느니라” (렘 4:18)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잠 6:32) 옆집 아저씨가 간음했는데 내가 망하는 법은 없습니다. 자기가 간음했기 때문에 자기 영혼이 망하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롬 6:23) 사망은 죄를 지은 사람이 대가로 벌어들인 삯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심판하고 멸망시킨 것은 앗수르 군대입니다. 그리고 앗수르 군대를 불러오신 분은 하나님이지만 멸망의 궁극적인 책임은 이스라엘 백성 자신들에게 있습니다.
사람들은 죄가 파괴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죄를 추구합니다. 술 마시는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 병든다는 것을 알면서 계속 마시는 것입니다. 담배 피는 사람들도 담배 피는 것이 폐암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피는 것입니다. 뻔히 알면서 왜 그러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 인간의 마음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죄성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Ⅲ. 죄와 멸망의 싸이클을 끊어버릴 도움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나니 이는 너를 도와주는 나를 대적함이니라” (호 13:9) 이것을 킹제임스 버전으로 보면 약간 다르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O Israel, thou hast destroyed thyself; but in me is thine help.” 오 이스라엘아 네가 네 자신을 파괴시켰지만 내 안에는 너의 도움이 있다고 되어있습니다. 아무리 멸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도 하나님께는 도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은 왕이 도와줄꺼라고 생각했지만 왕 자신도 도망가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또 우상이 도와줄꺼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우상은 자기 스스를 지키지도 못하는 존재입니다.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은 작전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도움이 안 되는 물건입니다.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합니다. 왜 우상을 섬기십니까? “네 왕이 이제 어디 있으며 네 재판장들이 어디 있느냐” (호 13:10) 불러도 대답 없는 왕입니다. 하나님만이 도움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괴롭힌다고 말합니다. 제가 전도하면 나는 당신을 안 괴롭히는데 왜 당신은 나를 괴롭히냐고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괴롭히신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자기를 괴롭힌다고 말하는 사람은 속에 귀신 들어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마 8:29) 예수님께서 괴롭게 한다고 하는 것은 귀신들이 하는 소리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괴롭히시는 분이 아니고 구원하는 분입니다. “그러나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호 13:4) 하나님만이 구원이시며 하나님 밖에는 구원자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 (호 13:14) 하나님의 구원은 뉘우침이나 주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궁극적으로 음부에서의 구원이요 사망에서의 구원입니다. 인류의 가장 큰 원수는 사망입니다. 사망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구원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망과 음부의 권세에서 건져내실 수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음부가 무엇이냐? 지옥이냐? 아닙니다. 지옥과 음부는 다릅니다. 지옥은 불신자가 가는 곳이고 음부란 죽은 사람들이 가는 세계를 전반적으로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러분 죽은 사람 중에 음부에 갔다 살아나올 사람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음부에서 살아나와 영원히 살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망이 인류의 최고 원수이고 이 사망을 이기는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55-57) 바울이 부활장에서 인용한 말씀이 호세아 13장 14절입니다. 결국 죄와 멸망으로부터의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오고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원의 중보자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호세아라고 하는 말은 히브리어로 호세아고 헬라말로 하면 예수입니다. 그러니까 호세아 선지자가 예수님의 대변인으로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 우리 인간의 도움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도움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도움이란 “둘러쌈”(Surrounding)이라는 의미입니다. 나는 죄로 말미암아 멸망당해야 하고 사망에서 음부에 영원히 있을 수밖에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예수님께서 나를 둘러싸시는 것입니다. 멸망이 오다가도 예수님께서 둘러싸신 사람은 피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망하긴 다 틀렸습니다. 사망권세가 우리를 죽여 영원히 음부에 가두려고 해도 예수님께서 건져내셔서 부활시키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한번 죽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은 흙집이기 때문입니다. 이걸 고쳐봤자 그게 그겁니다. 70살이 넘으면 잘생기나 못생기나 모두 똑같습니다. 재료가 흙이기 때문에 영원히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한번 죽고 영원히 썩지 않는 신재료로 부활해서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망과 멸망을 당해야 마땅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둘러싸시고 그 팔로 안으시며 구원해주시고 사망과 음부의 권세가 우리를 해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변자로서 이스라엘 국가에게 호소하고 백성에게 호소하고 나아가 열방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왜 멸망의 길, 지옥의 길, 사망의 길로 가려느냐? 내게는 도움이 있고 내게는 구원이 있노라. 내 팔에 와서 안겨라. 멸망의 일보 직전이라도 내 팔에 와서 안기면 구원이 있느니라.” 여러분 죽기 5초 전이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갑니다. 그러니까 이제 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때부터 멸망이 물러가고 축복이 오며 사망권세도 이겨 부활하는 은총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여러분을 둘러싸고 계신 것을 믿고 예수님과 동행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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