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이사야 45:8~13)

날짜 : 2008-08-25
본문 : 이사야 45장 8-13절

본문 : 이사야 45장 8-13절
제목 :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
8 너 하늘이여 위에서부터 의로움을 비 같이 듣게 할찌어다 궁창이여 의를 부어 내릴찌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내고 의도 함께 움돋게 할찌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9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툴찐대 화 있을찐저 진흙이 토기장이를 대하여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할 수 있겠으며 너의 만든 것이 너를 가리켜 그는 손이 없다 할 수 있겠느뇨 10 아비에게 묻기를 네가 무엇을 났느냐 어미에게 묻기를 네가 무엇을 낳으려고 구로하느냐 하는 자에게 화 있을찐저 11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 12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친수로 하늘을 펴고 그 만상을 명하였노라 13 내가 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나의 사로잡힌 자들을 값이나 갚음 없이 놓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


서 론

이사야 45장 8-13절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바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피조물은 하나님과 다투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툴찐대 화 있을찐저(9).’ 둘째는 11절을 중심으로 주시는 교훈입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 오늘은 바로 이 11절 말씀을 중심으로 여러분과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34절에서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사야는 장래 일을 구하라고 했으니 모순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전혀 모순과 부조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장래에 대한 불신앙적인 두려움을 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래 일에 대한 믿음의 기도를 금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다가올 장래를 어떤 태도로 대하는가가 우리의 현재 신앙상태를 보여줍니다. 장래는 항상 불확실하기 때문에 인간은 쉽게 두려움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 선지자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장래에 대한 일을 하나님께 묻는 기도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
이사야 시대에 영적으로 부패하고 정치적으로 쇠약해진 유다가 결국 바벨론의 포로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 선포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두 가지 반응을 보였습니다. 첫째 부류는 이사야 5장 12절의 말씀처럼 여호와의 행하심과 그의 손으로 하신 일들을 생각하지 않고, 아침에는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한 사람들입니다. 내일이면 나라가 망하고 죽게 되었으니 오늘은 먹고 마시자는 방탕주의, 허무주의, 쾌락주의의 삶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부류는 바로 오늘 본문 11절의 말씀처럼 장래 일을 하나님께 묻는 사람들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미래를 허무주의, 방탕주의, 쾌락주의로 대하는 첫째 부류의 사람들을 정죄하면서 장래 일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하나님께 묻는 것이 바른 신앙의 태도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1. 하나님은 장래 일을 아시고, 기도하는 자에게 장래 일에 대한 지식을 주신다.

11절을 통해 우리는 세 가지의 명백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장래 일을 아시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장래 일에 대한 지식을 주신다는 진리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장래 일을 모르시는데 물으라고 말씀하셨다면 어불성설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장래 일을 모두 아십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로 구하는 자에게 장래 일을 알게 해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증거는 성경에 수없이 많습니다.
다니엘 2장을 보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는 장면이 나옵니다. 잠에서 깨어난 왕이 그 꿈을 다시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기억도 나지 않고 그 꿈에 대한 해석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왕은 바벨론의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와 술사들을 모두 동원해서, 자신이 꾼 꿈의 내용과 그 꿈의 해석을 알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그 꿈과 해석을 알리지 못하면 모두 죽임을 당할 판이었습니다. 그 때, 다니엘이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꿈을 알게 하시고, 해석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선포한 후에 그 꿈을 알려주고 해석했습니다. 그 꿈은 큰 신상에 대한 꿈인데, 머리는 정금, 어깨와 두 팔은 은, 배와 넓적다리는 놋, 종아리는 철, 그리고 발과 발가락은 철과 진흙으로 만들어진 신상이었습니다.
“왕이시여! 이 신상은 앞으로 진행될 역사를 보여줍니다. 정금으로 된 머리는 바벨론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은으로 된 두 팔은 바벨론보다 못한 두 나라(메대와 파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이며, 그 후에 놋과 같은 나라(헬라), 강하기가 철과 같은 나라(로마)가 연속해서 일어날 것입니다. 이 나라(로마)는 철과 흙이 섞이지 않는 것처럼 여러 민족의 독립성을 인정하면서도 통일된 국가를 이룰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열왕들이 통치할 때에 하늘의 하나님께서 한 나라를 세우실 것인데, 그 나라는 국권이 남에게 넘어가지 않는 영원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다니엘의 해석은 이후에 역사 속에서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영감 받은 하나님의 말씀인지 알고 싶은 분은 다니엘서만 공부해도 “아! 이 말씀은 보통 말씀이 아니구나.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구나”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영감을 받은 하나님의 말씀인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읽은 이사야 45장에도 이사야가 예언하던 시대로부터 200년 후에 일어날 일들이 기록되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 우리를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시키신다고 하셨는데, 우리에게는 힘과 능력이 없습니다. 어떻게 그 일이 이루어지겠습니까?”라고 묻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걱정마라. 내가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일으킬 것이다. 자기는 알지 못하지만, 내가 그를 택하여 칭호와 권세와 능력을 주고 그를 왕으로 일으켜 나라들을 점령하게 할 것이다. 바벨론도 그 앞에서 망하게 될 것이므로 너희는 아무런 값을 치르지 않아도 해방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장래 일을 알게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장래 일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21장 18절을 통해 베드로에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19절을 통해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젊어서는 죽지 않지만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들이 그를 끌고 가서 순교하게 될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후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사도행전 12장을 보면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가 아직 젊었을 때인데, 총 열 여섯 명의 군사들이 네 패로 나뉘어 베드로를 지켰고, 두 명의 군사들은 바로 옆에서 베드로를 지켰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도 베드로는 군사들 틈에서 잠을 잤습니다. 기록은 없지만 아마 코를 골면서 단잠을 잤을 것입니다. 어쩌면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는 위기상황에서 베드로는 어떻게 이와 같은 담대한 자세를 가질 수 있었을까요?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베드로가 이런 상황에서도 마음 편히 누워서 잘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요한복음 21장 18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 때문이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젊어서 죽지 않을 것을 믿었기 때문에 마음 편히 잠을 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베드로는 묶인 결박을 풀고 천사의 인도를 받아 감옥을 유유히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장래 일을 아시고, 기도하는 자에게 장래 일을 알려주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장래 일을 아실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장래 일을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14장 24절에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고 기록되었고, 이사야 46장 10절에는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하나님께서 장래 일을 아시고, 장래 일이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장래와 이 세계의 장래는 미국의 대통령 조지 부시나 중국 국가 주석인 후진타오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물론 독일 대통령 쾰러, 일본 수상 아베,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에게 달린 것도 아닙니다. 장래 일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아십니다. 장래 일을 계획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무당이나 점쟁이에게 가서 장래 일을 알려달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모르는 존재에게 물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의 장래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물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2. 하나님께 물어야 할 ‘장래 일’에는 제한이 있다

11절이 가르쳐주는 두 번째 진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물어야 할 장래 일에 제한을 두셨다는 점입니다. 장래 일을 물으라는 말씀을 자칫 오해하면 점쟁이들이 손님을 끄는 선전문구 정도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하나님께서 대답해 주실 장래 일의 한계를 명확히 정하였습니다.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11).’ 우리가 물을 때, 하나님께서 대답해주시는 장래 일은 하나님의 아들들에 관한 일과 하나님의 손으로 하신 일에 관한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물어야 할 장래 일의 제한이고, 이 제한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장래 일을 물으라고 하시자 많은 사람들이 기도합니다. “우리 아이가 금번 대학 수능시험을 치렀는데 합격하겠습니까? 남편이 국회의원 선거에 나갔는데 이번에 당선될까요?” 그러나 이런 질문은 기도라고 보기가 힘듭니다. 이런 질문은 박수무당에게 하는 질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점쟁이에게 하는 질문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다릅니다. 만약 누군가가 저에게 “저의 자녀가 대학에 합격하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예! 공부 잘 하면 합격하고 못하면 떨어질 것입니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혹시 “사업이 잘 되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성실하면 잘 되고 성실하지 않으면 안 될 겁니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인기가 있으면 당선되고 아니면 낙선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이런 질문은 점쟁이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고 하나님께 기도할만한 내용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대답하실 장래 일은 하나님의 아들들에 관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복수이므로 여기에는 단수인 ‘하나님의 아들’도 포함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지금 장래 일에 대해서 예언을 하는데, 그 예언의 핵심은 하나님의 아들과 그 아들이 구원할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이사야 7장 14절에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9장 6절에는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또한 이사야 11장 1절에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다윗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이 처녀의 몸에 잉태되어 태어날 것이고,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며, 그가 결국 세상을 통치하는 자가 될 것이라는 장래 일을 이사야가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또한 이사야 40장, 42장, 49장, 53장에 등장하는 여호와의 종의 노래에도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 수난 받으실 것이 예언되었습니다. 이사야가 물으라고 하는 장래 일의 핵심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것이며, 이 아들은 히브리서 2장 10절의 말씀대로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며 완성되는 일에 핵심을 두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내 손으로 한 일을 부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손으로 하신 일은 본문 8절에 기록되었습니다. ‘너 하늘이여 위에서부터 의로움을 비 같이 듣게 할찌어다 궁창이여 의를 부어 내릴찌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내고 의도 함께 움돋게 할찌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손으로 하신 일은 하늘이 열려 의를 내리고, 땅이 열려 구원을 내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많은 아들들을 구원하고, 그 아들들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며 완성되는 일에 관심을 두십니다.
여러분은 혹시 천국의 전화번호를 아십니까? 333번입니다. 왜 333번이냐면 예레미야 33장 3절에 이와 같은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이 말씀도 우리가 이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욕심을 채우는데 사용할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완성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 말씀대로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는데 언제나 풀려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예레미야 29장 10절에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을 묻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늘 걱정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좋은 옷 입게 해주세요!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해 주세요! 좋은 집에 살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물론 이런 기도를 하지 말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기도는 핵심이 아닙니다. 부차적인 내용입니다. 중국에 가면 복제품만 파는 일명 짝퉁시장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크리스챤 디오르, 샘소나이트 같은 명품 가방의 복제품도 판매합니다. 구경을 하다가 어떤 물건에 관심을 보이면 주인이 처음에는 30만원에 그 가방을 주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흥정을 하다보면 결국 만원까지 가격이 떨어집니다. 게다가 그 가방을 사면 덤으로 조그만 명품 복제 가방도 하나 선물로 끼워주겠다고 말합니다. 물론 덤으로 받는 조그만 가방도 좋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자신이 본래 사려는 가방에 있을 것입니다. 덤으로 주는 가방에 더 많은 관심을 쏟으면서 상품을 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걱정하면서 기도한다면 정작 사려는 가방에는 관심이 없고 “덤 주세요. 덤 주세요”하면서 덤에만 관심을 갖는 태도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장 큰 기도제목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덤으로 주십니다. 달라는 말을 안 해도 그냥 주는 것을 왜 목숨 걸고 구하십니까?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의 아들들에 관한 일과 하나님의 손으로 하신 일을 먼저 구하는 기도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은 친밀하면서도 담대한 기도를 원하신다.

11절이 가르쳐주는 세 번째 진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가 친밀하면서도 담대한 기도라는 사실입니다. 11절에는 두 가지 동사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물으라’는 동사입니다. 장래 일에 관해서 내게 물으라는 말씀은 기도할 때의 친밀성을 나타냅니다. 마치 사랑하는 제자가 교수님을 찾아 와서 모르는 문제를 문의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교수로 학교에서 근무할 때도 보면 꼭 강의 시작하기 전에 음료수 한 병을 사서 전해주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음료수 한 병 얻어 마시고 나중에 자장면을 사줍니다. 손해 보는 장사지만 학생과 교수가 가까워지는 좋은 계기가 됩니다. 자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과 친밀한 자녀들은 자신의 속마음도 모두 부모에게 이야기하며 조언을 구합니다. 친밀해야 서로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친밀한 기도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친밀히 여기십시오. 하나님을 멀리 계신 분, 무서운 분으로 여기지 마시고, 아버지 되시고 친구 되신 하나님께 친밀하게 나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1절에 등장하는 또 다른 동사는 ‘부탁하라’입니다. 이 ‘부탁하라’는 동사는 영어성경에서는 ‘내게 명령을 내리라(give me orders)’는 의미로 번역되었습니다. 언뜻 스쳐 읽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동사입니다. 피조물들이 감히 어떻게 하나님께 명령을 내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피조물들이 선택한 단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단어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명령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 관점으로 성경의 기도를 읽어보니까 대부분의 기도가 명령문으로 기록되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편 3편 7절에는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Arise, O LORD! Deliver me, O my God!)’라는 기도가 나옵니다. 원래는 “일어나라, 주여! 나를 구원해라. 내 하나님아!”와 같은 명령문이지만 이렇게 번역할 수는 없으니까 완곡하게 “일어나소서! 구원하소서!”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이사야 63편 15절에도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Look down from heaven and see)’라고 기록되었는데 영어성경에 동사가 먼저 나오는 것을 보면 분명히 명령문입니다. 또한 예레미야 31장 7절에서도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Save your people)’라는 명령문의 기도가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기도할 때 하나님께 담대하게 명령해야 합니다. “여호와여! 내 영혼에 부흥을 보내소서! 하나님이여! 내 가정에 복을 주소서! 여호와여! 강남중앙침례교회를 부흥시켜주소서! 이 나라에 대각성을 주옵소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정중한 말로 하되, 담대하게 명령하는 기도를 드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 론

하나님은 피조물의 명령을 받으시면서까지 자기 백성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원하십니다.
오늘날 한국에 수많은 기독교 인구가 있어도 한국 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기도가 너무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에 핵심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517년, 마틴 루터가 복음을 깨닫고 “하나님이여! 진리를 회복시켜 주소서!”라고 기도했을 때, 로마 가톨릭이 뒤흔들리는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또한 존 낙스는 사생활이 지저분한 메리 여왕이 통치하던 시절에 스코틀랜드를 구원해달라고 기도했고, 결국 메리 여왕이 쫓겨난 후에 스코틀랜드의 정치가 변화되는 위대한 역사를 이뤘습니다. 뿐만 아니라 존 웨슬리는 죽어가는 영국 백성들의 영성을 염려했기 때문에 영성을 회복시켜 주시고 세계를 내게 달라고 기도했고, 이로 말미암아 영국에 대 부흥과 대 각성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사사로운 욕심이나 채우는 샤머니즘적인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부흥을 소망하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이기적인 기도는 덤에 불과합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덤입니다. 그런 기도에 시간을 다 쓰지 마시고, 내 삶과 내 자원, 내 재능과 내 인생의 남은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이 세상의 나라가 번영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나라는 모두 멸망할 나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이 영원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이 지상에 존재하는 수 없이 많은 인간들 가운데 택함을 받아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서 영생을 누리며,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토록 사는 백성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계획을 깨닫고 거기에 우리 삶의 초점을 맞추어 가면 먹고, 살고, 입는 것들은 달라고 조르지 않아도 모두 채워주십니다.
장래 일을 하나님께 묻고, 친근하고 담대하게 기도하며, 어두운 이 시대에 세상을 뒤흔들어 놓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목록으로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