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초청(이사야 55:1~3)

날짜 : 2007-10-08
본문 : 이사야 55:1~3

본문 : 이사야 55장 1~3절
제목 : 위대한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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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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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이사야 선지자를 일명 ‘복음적인 선지자’(evangelical prophet)라고 합니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전도했는지는 이사야 55장만 읽어봐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이사야 55장은 신약으로 옮겨놓아도 신약인지, 구약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대단히 복음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이사야서를 가리켜 ‘다섯 번째 복음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내용을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1절은 ‘초청’의 말씀입니다. 목마른 자들에게 “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그리고 2절은 ‘질문’입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수고하느냐?”는 질문의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2절 후반부터 3절까지는 “청종하라, 나오라”는 명령입니다.

1. 1절은 ‘은혜로운 초청’이다

1절에 보면 거리에서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요즘은 그런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마는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길거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다니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새벽에는 “동포들!”을 외치는 애국자들이 많았고, 저녁에는 “찹쌀떡! 메밀묵! 만두!”를 외치는 장사꾼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도 이처럼 장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물장수, 포도주장수, 우유장수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가죽 부대에 물과 포도주와 우유를 담아서 “물 사세요! 포도주 사세요! 우유 사세요!”라고 외치며 다녔습니다. 그런데 보통 장사꾼들은 “물 한통에 천원! 포도주 한 병에 만원!”하는 식으로 외쳤지만, 본문 1절의 외침은 다릅니다. “돈 없는 자도 오시오. 사기는 사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시오.” 물도 공짜요, 포도주도 공짜요, 우유도 공짜입니다. 보통은 가격이 있기 마련인데, 본문에 나오는 물과 포도주와 우유는 모두 값없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기록된 물과 포도주와 젖은 모두 예언자의 언어로서 각각 상징성을 지녔습니다. 먼저 물은 생명 그 자체입니다. 인체는 70%가 물로 이루어졌습니다. 몸속에 수분이 2%가 부족하면 심한 갈증이 일어나고, 5%가 부족하면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그리고 12%를 잃으면 사망하게 됩니다. 우리가 마시는 드링크 중에도 2%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이 있는데 수분이 2%만 모자라도 심한 갈증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처럼 물은 생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악을 징계하실 때에는 하늘 문을 닫으시고, 비를 내리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 사회에는 재앙과 죽음이 오게 됩니다. 물이 부족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물을 사라는 것은 생명을 사라는 말씀입니다. 생명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거저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육신의 생명을 돈 주고 사신 분이 계십니까? 아닙니다. 육신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거저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도 은혜로 거저 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이렇게 서술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성경을 기록하신 목적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생명, 즉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육신의 생명을 거저 주셨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 참된 생명도 믿는 자에게 거저 주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포도주는 기쁨을 상징합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술을 멀리 해야 합니다. 포도주를 많이 마시고 취해서 노아처럼 실수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포도주가 기쁨의 상징이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104편 15절에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 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고 기록되었으며, 시편 4편 7절에는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처럼 포도주는 기쁨의 상징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1절은 말씀을 주신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예수님께서 말씀을 주신 목적은 기쁨을 주시려 함입니다. 기쁨은 돈 주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말씀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거저 주어지는 것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젖은 영적인 양식, 곧 복음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젖은 우유인데, 우유는 곧 양식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절에는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값없이 영적인 양식을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거저 받을 수 있습니다. 영생도 공짜, 기쁨도 공짜, 영적인 양식도 공짜입니다. 목마른 자도, 돈 없는 자도, 배고픈 자도, 어른도 아이도, 죄 있는 자도, 허물이 많은 자도 와서 공짜로 누릴 수 있습니다. 옛날 약장수들은 얘들도 가고, 돈 없는 사람도 가라고 말했지만, 이사야 선지자는 돈 없는 자도, 목마른 자도 오라고 선포합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의 복음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여기서 잘 넘어집니다. ‘내가 어떻게 그렇게 귀한 것을 공짜로 얻을 수 있겠는가? 내가 뭔가 공헌을 해야 하지 않는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개신교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인간이 영생과 구원을 얻기 위해서 기여하거나 공헌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영생과 구원과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것이요, 이 믿음조차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sola fide(오직 믿음으로), sola gratia(오직 은혜로)’입니다. 그리고 이 원리는 ‘sola scriptura(오직 성경에서)’에서 나옵니다. 우리 침례교는 개신교이므로, 이 은혜의 복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의 교리는 조금 다릅니다. 그들은 인간의 선행이 구원에 공헌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가톨릭의 교리에 따르면 인간이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선행을 많이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교리는 성경의 내용과는 다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장 6절을 통해 가톨릭의 그릇된 교리에 결정타를 날립니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만일 우리가 무슨 행위를 통해 공헌을 해서 구원과 영생을 얻는다면 그것은 은혜가 될 수 없습니다. 은혜라는 말은 그 자체가 절대 공짜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세 종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기고 구원받지 못한 죽은 영혼이요, 또 하나는 예수님을 믿기는 하지만 낙심한 영혼이요, 마지막은 예수님을 믿지만 약한 영혼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죽어있습니까, 낙심해 있습니까, 아니면 약합니까? 죽은 영혼에는 생명이 필요합니다. 생명은 물입니다. 낙심한 영혼에는 기쁨이 필요합니다. 기쁨은 포도주입니다. 그리고 약한 영혼에는 양식이 필요합니다. 양식은 젖입니다. 하나님은 물과 포도주와 젖을 값없이 사서 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놀라운 은혜입니다.

2. 2절 전반은 ‘질문’이다

2절 전반에는 하나님의 질문이 기록되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이는 바벨론의 포로 된 유다 백성들 중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 않고 바벨론에 그대로 남아있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바벨론은 물질문명이 극치를 이룬 사회였습니다. 바벨론의 공중정원은 지금도 고대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을 만큼 물질이 풍부했습니다. 돈과 먹을 것이 많았고, 문화도 발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 곳에서 은을 달아 주며 양식을 사는 등 수고해서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은 풍부하게 얻을지 몰라도 결국 그들의 영혼은 배고프고, 고달프며, 비참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대가 마치 이와 같습니다. 부요와 쾌락과 권세와 술과 약물과 문화와 예술과 명성과 권력은 있지만 영혼은 공허합니다. 아무리 바벨론의 영광이 크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작은 영혼 하나 채워줄 수가 없습니다. 한 때 많이 불렀던 복음성가 중에 ‘우물가의 여인처럼’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그 때 주님 하신 말씀 내게로 와 생명수 마셔라. 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내게 채워주소서. 넘치도록 채워주소서.’ 이 곡은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의 수가성 여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수가성 여인은 쾌락도 구해봤고, 세상의 만족도 구해봤습니다. 그러나 남은 것은 상처와 깨진 가정, 깨진 인간관계와 깨진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 영혼에 물과 포도주와 젖이 들어왔고, 그녀는 기쁨과 확신에 찬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쾌락과 권력과 돈과 명예와 인기를 추구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것들을 추구해봤자 결국에는 허무한 결과를 맞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봤자 결국에는 몸도 병들고 늙어 극복할 수 없는 죽음의 한계에 부딫히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권력을 잡아서 높은 권력자가 된다고 해도 결국은 물러날 때를 만나게 되고, 비참할 때를 겪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그것들을 추구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 세상의 너머에 기쁨의 세계, 영원한 세계인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도들에게도 돈과 명예와 권력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에 삶의 목적을 두거나, 목을 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영원한 내세, 천국에 있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영원한 기쁨과 영원한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허무한 길을 계속해서 걸어갑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갔고, 지금도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 예수님께서 천국에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있음을 알려주시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천국을 거저 주신다는 복음을 알려주셨으며, 믿는 자에게 영생과 기쁨과 영혼의 양식을 주시겠다는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이 질문은 인간의 실존을 파악하는 아주 깊이 있는 질문입니다. 스스로 노력하면서 허덕거리는 인생은 양식도 얻을 수 없고, 기쁨도 찾을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으로부터 오는 물과 포도주와 젖만이 생명이요, 기쁨이요, 양식인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2절 후반부터 3절까지는 ‘명백한 두 가지 명령’이다

2절 후반부터 3절까지에는 명백한 두 가지 명령이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는 ‘나를 청종하라’는 명령이고, 또 하나는 ‘내게 나오라’는 명령입니다. ‘나를 청종하라(listen diligently)’는 말씀은 ‘나의 말을 부지런히 들으라’는 의미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문제는 복음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영원과 내세에 관한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무관심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복음과 그리스도 예수님에 관해 말씀하실 때 잘 들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 좋은 것을 먹게 되고, 그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게 됩니다. 물과 포도주와 젖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청종하지 않으면 영원한 형별과 멸망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 3절 전반은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1장 28절을 통해 동일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사야 선지자와 예수님의 명령이 동일합니다. “죄 있는 모습 그대로 오라! 허물과 약점과 실패가 있더라도 상관하지 말고 오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이것이 영원한 언약이요, 다윗에게 허락하신 확실한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어떤 언약을 맺으셨습니까? 시편 89편 19-37절에 그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었습니다.
‘주께서 이상 중에 주의 성도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돕는 힘을 능력 있는 자에게 더하며 백성 중에서 택한 자를 높였으되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 나의 거룩한 기름으로 부었도다 내 손이 저와 함께하여 견고히 하고 내 팔이 그를 힘이 있게 하리로다 원수가 저에게서 강탈치 못하며 악한 자가 저를 곤고케 못하리로다 내가 저의 앞에서 그 대적을 박멸하며 저를 한하는 자를 치려니와 나의 성실함과 인자함이 저와 함께 하리니 내 이름을 인하여 그 뿔이 높아지리로다 내가 또 그 손을 바다 위에 세우며 오른손을 강들 위에 세우리니 저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 내가 또 저로 장자를 삼고 세계 열왕의 으뜸이 되게 하며 저를 위하여 나의 인자함을 영구히 지키고 저로 더불어 한 나의 언약을 굳게 세우며 또 그 후손을 영구케 하여 그 위를 하늘의 날과 같게 하리로다 만일 그 자손이 내 법을 버리며 내 규례대로 행치 아니하며 내 율례를 파하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내가 지팡이로 저희 범과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저희 죄악을 징책하리로다 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파하지 아니하며 내 입술에서 낸 것도 변치 아니하리로다 내가 나의 거룩함으로 한번 맹세하였은즉 다윗에게 거짓을 아니할 것이라 그 후손이 장구하고 그 위는 해 같이 내 앞에 항상 있으며 또 궁창의 확실한 증인 달 같이 영원히 견고케 되리라 하셨도다 (셀라).’
하나님께서 다윗을 찾아 언약을 맺으셨는데, 그 내용은 다윗을 택하여 기름을 부으시고, 도움과 능력을 주시며, 원수에게서 승리를 주시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후손에게 복을 주시되 후손들이 잘못하면 징책은 할지라도 인자는 버리시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저는 구약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가장 복을 많이 주신 사람이 다윗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윗과 맺은 언약은 은혜롭고 영원한 언약입니다. 한 때 저는 다윗에게 복 주신 언약을 볼 때마다 ‘이것은 다윗에 관한 축복인데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복음을 청종하고,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허락하신 은혜에 동참하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다윗과 언약을 맺으셨듯이 우리와도 영원한 언약을 맺어 영원한 사랑, 변함없는 은혜를 주십니다. 능력과 도움과 승리도 주시고, 늘 함께 하셔서 원수도 물리쳐주시며, 우리가 잘못하면 징책은 하시되 인자하심은 거두지 않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결 론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54장을 통해 여호와의 종들에게 주실 기업을 네 가지로 말씀했습니다. 지난주에 전해드린 바처럼 열매 없는 인생이 열매 있는 인생이 될 것이고, 하나님과 원수 된 인생이 하나님과 화친한 인생이 될 것이며, 진리를 모르는 인생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는 인생이 될 것이며, 패배하던 인생이 승리가 확보된 인생이 될 것입니다. 그런 후에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55장을 통해 택한 백성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선포합니다. “왜 세상에서 헛된 것만 추구하다가 인생을 허비하느냐? 나중에 속았다고 한탄하는 인생을 살려느냐? 복음에 귀를 기울여라. 그리고 예수님께 나아오라.”
재물도, 명예도, 권력도 예수님 안에 있을 때에 참 의미가 있고, 우리의 양식이 되며 우리를 배부르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오면, 하나님께서는 생명과 기쁨과 영혼의 양식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에게 허락하신 영원한 은혜에 동참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생애에 물과 포도주와 젖이 넘쳐나는 놀라운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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