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 하나님께 감사하라(골로새서 1:12~14)

날짜 : 2007-11-30
본문 : 골로새서 1장 12-14절

본문 : 골로새서 1장 12-14절
제목 : 성부 하나님께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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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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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하나님의 교회는 일 년에 두 차례씩 감사절기를 지킵니다. 전반부에는 맥추감사절, 후반부에는 추수감사절입니다. 맥추감사절은 보리 추수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이고, 추수감사절은 가을 추수를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난 도시에 살고 있어서 보리 추수나 가을 추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감사할 제목이 뭐가 있겠는가? 나에게 왜 감사헌금을 내라고 하나?’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우리가 감사해야 할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특별히 성부 하나님을 지목하여 그 분께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골로새서는 기독론에 관한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스펄전 목사님은 ‘성부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말씀에 착안해서 이 본문을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를 많이 참조하여 오늘 본문을 준비했습니다. 본문을 개역성경으로 읽긴 했습니다만, 이 본문에 대한 번역은 공동번역 성경이 더 훌륭하므로 그 내용을 한 번 읽어드리겠습니다. ‘아버지께 감사를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께서는 성도들이 광명의 나라에서 받을 상속에 참여할 자격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시어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아들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속박에서 풀려났습니다.’ 본문은 왜 우리가 성부 하나님을 특별히 지목하여 감사드려야 하는지, 왜 사도 바울이 그와 같은 명령을 내렸는지에 대해 두 가지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1. 성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


첫째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서 특별히 성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를 잊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성자 예수님을 향해서는 많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대신 피를 흘려주셨고, 손발에 못이 박히셨으며, 몸이 찢기셨고, 심장이 터지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성자 예수님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우리의 입술에서는 감성적인 감사(emotional thanksgiving)의 고백이 흘러나옵니다. 또한 성령님을 향해서는 의지적인 감사를 드립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 보혜사요,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께서 은사와 능력과 지혜를 주시고, 우리를 위해서 해주시는 일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의지적인 감사를 통해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성자와 성령님에 비해 성부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대상에서 빼기가 쉽습니다. 찬송을 살펴봐도 성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찬송보다는 성자 예수님, 성령님을 찬양하는 찬송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우리는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주셨는지를 잘 아는데서 오는 지성적인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성자 예수님을 향해서는 감성적인 감사를, 성령님을 향해서는 의지적인 감사를, 성부 하나님을 향해서는 지성적인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성부 하나님께 특별히 감사드려야 할 두 번째 이유는 성자의 사역이나 성령의 사역이 궁극적으로는 모두 성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말씀은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는 의미이며,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다’는 말씀은 ‘성부 하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계획하시고 성자 예수님께 명령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택한 자를 불러 모으신다’는 말씀도 ‘성부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여 성자 예수님께 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모든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를 살려주시지만, 이 중생의 사역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는 사역입니다. 골로새서 2장 13절을 보면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성도를 거룩하게 하시는 성화의 일도 성령님의 사역이지만, 유다서 1장 1절을 보면 그것도 궁극적으로는 성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이 구절에서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라는 부분은 영어성경 킹제임스 버전(KJV)에 ‘sanctified by God the Father’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번역하자면 ‘성부 하나님에 의해서 거룩하심을 입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성자의 사역도, 성령의 사역도 궁극적으로는 성부께서 계획하신 일입니다. 성자는 성부께서 계획하신 일을 집행하는 분이요, 성령은 성자께서 집행하신 일을 개인에게 적용하는 분이십니다. 성자는 집행자요, 성령은 적용자로서 계획자이신 성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감사해야 할 최우선 순위에 성부 하나님을 올려 놓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2.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심 (13절)

오늘 본문은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두 가지 일을 말씀합니다. 첫째는 13절입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여기에서 ‘그’는 성부 하나님입니다. 본문은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내시고 옮겨 주셨다(rescued and translated)’는 이 말씀을 과거에 완전히 끝난 일로 묘사합니다. 과거에 우리를 이미 옮겨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처해 있던 세계는 흑암의 세계였습니다. 이 흑암의 세력도 권세(the power of darkness)를 가졌는데, 이 권세는 영적인 흑암, 도덕적인 흑암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은 무엇이며 마귀에게 속한 것은 무엇인지 전혀 분별할 수 없는 어두움입니다. 미신과 악령과 귀신과 거짓된 종교와 철학에 이끌리고, 자신의 악한 정욕과 탐심에 이끌리어 어둠의 권세자들이 조종하는 대로 살 수 밖에 없었던 어두운 세계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이런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어두움 가운데 있으면 건전한 판단력을 가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누구라도 몇 시간 정도는 어두움 속에서 머물 수 있습니다. 날이 너무 밝으면 눈가리개로 일부러 어둠을 만들어서 자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도 어두움 속에 있고, 내일도, 다음 달에도, 내년에도, 10년 뒤, 100년 뒤, 억 만년 뒤에도 어두움 속에 있어야 한다면 그 사람은 빛을 보게 해달라고 소리를 지르다가 아마 미쳐버릴 것입니다. “빛을 달라! 반딧불이든, 성냥불이든 조금이라도 빛을 보기를 원한다! 가족을 볼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원수라도 볼 수 있게 해달라!” 실제로 죄수들을 캄캄한 독방에 오래 가둬 놓으면 결국에는 정신병동으로 옮기게 된다고 합니다. 외로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두움이 실제적인 원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어두움의 권세 속에 처해 있던 우리를 성부 하나님께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부 하나님께 특별히 감사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건지시고 편안한 세상으로 옮겨 주셨습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본문에 나오는 ‘옮겨 주셨다’는 단어를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노예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옮기신 사건과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시키시고 예루살렘으로 옮겨주신 사건을 기록하는데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 단어는 완전히 옮겨서 더 이상 돌아갈 이유도 없고, 돌아갈 필요도 없는 경우에 사용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옮겨주신 나라는 아들의 나라입니다. 이 아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고로 아들의 나라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이 되신 나라입니다.
이 세상의 정치제도로는 민주주의가 좋은 것 같지만 민주주의는 언제나 중우정치(衆愚政治)로 흘러갈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따지고 보면 왕 제도가 가장 좋은 제도입니다. 그런데 나쁜 왕이 등극하면 이 제도는 아주 망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왕 제도를 거부하고 중우정치가 될지라도 민주주의를 채택하는 것입니다. 만약 훌륭하고, 조금도 나쁜 점이 없는 왕이 세워진다면 그 세상은 참으로 바람직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아들의 나라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이십니다. 거기에는 독재와 파쇼와 음모와 거짓이 없습니다. 오직 사랑과 자비와 용서와 은총과 기쁨과 감사만 있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는 반역과 데모도 없습니다. 제가 전에는 동현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사람들이 아파트 앞에 있는 관세청에서 얼마나 데모를 많이 하는지 밤 12시가 넘어도 시끄러워서 잠을 자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청담동으로 이사를 갔는데 이번에는 강남구청 앞에 모여서 데모하는 사람들 때문에 곤란을 겪기도 했습니다. 무엇을 놓고 데모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데모하는 일이 잦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나라에는 데모도, 반역도, 독재도 없습니다. 그 나라의 백성들은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주신 하나님, 우리의 죄를 위해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신 어린 양 예수님께 절대적으로, 완전하게, 그리고 영원히 순종합니다.
그 나라는 찬양과 빛의 나라이며, 사은의 나라(kingdom of thanksgiving)입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없고, 오직 감사만이 넘칩니다. 지금은 우리가 불평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보면 모든 불평이 다 사라집니다. 그 곳에서는 “내가 여기 오지 않았다면 어땠을 것인가? 아마 영원한 어둠, 지옥에 떨어졌겠지. 예수님께서 나를 건져주지 않으셨다면 나는 영원히 망할 뻔 했다. 너무 감사하구나!”라는 고백이 절로 나올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아들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우리가 흑암의 권세와 전투를 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빛의 나라의 백성이 되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흑암의 나라가 여전히 존재하여 우리를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가들은 지상의 교회를 일컬어 ‘전투적 교회(militant church)’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전투적 교회에 속해 있기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피곤하거나 지치기도 하고, 때로는 절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은 이후에 갈 나라는 ‘승리적 교회(triumphant church)’요, 마귀와 흑암의 권세가 찾아올 수 없는 승리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승리의 세상에서 영원토록 살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흑암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져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신 성부 하나님께 영원히 감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우리를 ‘빛의 나라(천국)’에서 만유를 상속받기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하심 (12절)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두 번째 일은 본문 12절에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2절의 ‘빛 가운데서’라는 표현은 공동번역 성경에서 ‘광명의 나라에서’로 번역되었습니다. 광명의 나라, 빛의 나라는 13절에 나타난 아들의 나라입니다. 아들의 나라는 곧 하나님의 나라요, 천국입니다. 성도들은 지금도 천국 백성이요, 죽은 후에도 천국에 들어가는 백성인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옥 가기에 다 틀린 사람들입니다. 지옥에 가려고 노력하다가는 얻어터지기나 하지 지옥에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옥에 갈 사람처럼 살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 땅을 떠날 때 빛의 나라에 받아들여지는 천국 백성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성부 하나님의 은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너는 천국에 들어온 것만 해도 고맙지? 너에게 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저쪽 구석에 있는 찌그러진 오두막에 들어가서 쪼그려 살아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본문에는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를 천국에 들어가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권리까지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아무리 부자집에 살고 있다고 할지라도 아들이 아닌 이상 종이나 하인에게는 별로 좋을 것이 없습니다. 저는 대학에 다닐 때 남의 집에서 가정교사를 하면서 밥을 얻어먹었는데, 거기서 먹는 밥은 마치 모래알을 씹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집에서는 동그랑땡이 반찬으로 나왔는데, 마구 집어 먹고 싶은 마음을 삼키면서 어렵게 한두 개를 집어먹은 적도 있었습니다. 눈치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부자집에 가도 한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서 동그랑땡도 못 얻어먹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천국에서 상속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종이나 하인, 일꾼으로 취급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줄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된 우리는 상속권을 갖습니다. 우리는 천국의 상속권을 가진 사람들인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로마서 8장 16-17절에는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후사’란 ‘상속자(heir)’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과 공동의 상속권을 가진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에베소서 3장 6절도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고 말씀합니다.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하나님의 후사,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의 후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후사가 되어서 상속을 받습니다. 상속을 받되 무엇을 상속받습니까? 히브리서 1장 2절에 보면 ‘예수님은 만유의 후사가 되신다’고 기록되었습니다. 만유란 모든 것(everything)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만유의 공동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영광입니다. 돈이나 명예가 우리의 영광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유를 상속하는 것인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고난을 조금 당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고생할 때, 그것을 고생이라고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혹시 땅 한 평 소유하지 못한 분이 계십니까? 통장의 잔고가 마이너스인 분이 계십니까? 절대로 기죽지 마십시오. 우리는 만유의 상속자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나중에 받을 상속에 비하면 새 발의 피입니다. 우리가 받는 영광은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살면서 조금 배고프다고, 땅도 없다고, 조금 가난하다고 기죽지 마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빛의 나라에서 받는 상속의 지분이 위대한 줄 알고 용기 있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상속의 지분을 얻기에 합당한 자가 되었습니다. ‘합당하다(fitness, suitable, sufficient)’는 말은 ‘적합하다, 충분하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어른과 같은 힘은 없어도 인간으로서 모든 기능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장성하기만 하면 완전한 어른이 되기에 필요한 모든 조건들을 다 갖췄기 때문에, ‘어린아이는 어른이 되기에 합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른이 된다고 해서 팔이 세 개로 자란다거나, 다리가 다섯 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른이 되어도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눈도 두 개, 귀도 두 개입니다. 오늘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는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장성하지 못했을 뿐이지 빛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가기에는 합당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상속의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만유를 상속하기 위해 필요한 은혜와 능력과 구원과 죄사함과 성령의 은총을 모두 가진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아무리 영적으로 어리다고 할지라도 천국에서 상속권을 행사하기에 합당하며,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결 론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빛의 나라로 옮겨주시고, 빛의 나라에서 만유를 상속하기에 필요한 모든 상속권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이와 같은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은 빛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반드시 구속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 14절의 말씀과 같이 구속(redemption)은 죄사함((forgiveness)입니다. 구속, 곧 죄사함을 받은 사람만이 천국으로 들어가기에 합당한 존재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는 천국에 갈 자신이 없어. 나는 천국 가기에 합당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기 합당한 존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성도들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젊을 때는 죽음이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나이가 들어서 70세, 80세가 되면 죽음이 가까움을 느낍니다. 물론 죽음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음은 반드시 겪어야 할 일입니다. 아무리 건강하게 살아도 때가 되면 죽습니다. 지난주에 돌아가신 어떤 분은 94세이신데도 아주 건강하셨다가 그만 쇼크를 받고 소천하셨습니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죽음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빛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재도 빛의 나라의 백성이긴 하지만 지금은 흑암의 나라와 전투를 해야 하기 때문에 피곤하고 연약하여 지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는 오직 축복과 사랑과 감사와 은혜와 감격만이 가득한 빛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는 이 땅을 떠나더라도 언제든지 천국에 들어갑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리스도인들은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되, 이번 추수감사절은 특별히 성부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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