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찾으라(사 55:6~9)

날짜 : 2007-12-12
본문 : 이사야 55:6~9

본문 : 이사야 55장 6-9절
제목 : 여호와를 찾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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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9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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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이사야서의 중요한 명령 가운데 하나는 여호와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서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그 외에도 ‘그를 부르라, 돌아오라, 버리라’ 등의 여러 가지 명령이 있지만 여호와를 찾으라는 주된 명령에 비하면 부수적입니다.
이사야 51장 1절에도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나를 들을찌어다’ 라고 기록되었고 58장 2절에서도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겨하며’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또 65장 10절에도 ‘사론은 양떼의 우리가 되겠고 아골 골짜기는 소떼의 눕는 곳이 되어 나를 찾은 내 백성의 소유가 되려니와’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백성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여호와를 찾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오고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비극이 온 원인은 그들이 여호와를 찾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9장 13절에는 ‘이 백성이 오히려 자기들을 치시는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는 최고의 비결은 여호와를 찾는 것입니다. 또한 불신자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도 여호와를 찾는 것입니다. 시편 14편 2절에는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시편 9편 10절에도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예수 믿은 신자든 아니면 아직 믿지 않은 불신자이든,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든 아직도 미숙한 사람이든 모두다 ‘여호와를 찾으라’ 는 명령의 지배를 받습니다.
오늘은 이사야서를 통해서 ‘여호와를 찾는다는 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가’와 ‘우리는 왜 여호와를 찾아야 하는가’에 대한 두 가지 문제를 생각해보겠습니다.
 
1. ‘여호와를 찾는다’는 말씀의 의미

여호와를 찾는다는 것의 의미는 우리가 여호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두루 찾아다녀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찾는다는 것을 영어로는 ‘find’가 아니라, ‘추구한다, 찾는다’는 뜻을 가진 'seek'를 씁니다. 본문 6절에 보면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여호와를 찾는다’는 말씀의 첫 번째 의미는 하나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주를 찾고자 하는 사람은 주를 불러야 합니다. 주를 부른다는 것은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기도를 어려워합니다. 대표기도가 어려워서 직분을 맡지 않으려는 분도 계십니다. 기도를 잘하려면 성경적인 지식도 많아야 되고 종교적인 언어도 잘 구사해야 되며 말주변도 좋아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도하라고 하면 많은 장애물이 내 앞에 놓여 있다고 생각을 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기도하라’는 종교적인 용어 대신에 ‘부르라’는 쉽고 단순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를 부르라’(Call upon Him). 부르는 일은 쉬운 일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맨 처음 언어를 배울 때 ‘엄마’를 부릅니다. 그 다음은 ‘아빠’를 부릅니다. 학생이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선생님’하고 부르면 됩니다. 앞에 가는 남자가 누군지 모르면 ‘아저씨’하고 부르고, 여자가 누군지 모르면 ‘아주머니’하고 부르면 됩니다. 식당에서 김치를 더 시키려면 ‘웨이터’를 부르면 됩니다. 이처럼 부르는 일은 쉽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부르면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 날 도와주세요. 여호와 하나님! 날 용서해 주세요. 여호와 하나님! 날 구원해 주세요. 여호와 하나님! 내가 피곤하니 힘주세요. 여호와 하나님! 내가 지쳤으니 날 새롭게 해 주세요. 여호와 하나님! 내 갈 길을 인도해 주세요.” 하나님을 부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여호와를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이화여대 명예교수이고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으로 인정받는 이어령 씨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어령 씨의 딸 미나씨는 국제변호사입니다. 미나씨는 1992년에 갑상선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지만 모두 재발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미나 씨의 아들도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로 인해 유치원에 가서도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미나 씨는 점차 시력을 상실하여 거의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어령 씨가 하와이에 살고 있는 딸을 방문하고 자기가 도와줄 길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어령 씨는 하와이에 있는 작은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하나님, 나의 사랑하는 딸 미나에게서 빛을 거둬가지 않으신다면 나의 남은 삶은 주의 종으로 살겠습니다.” 이어령 씨가 이 기도를 한 이후에 딸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망막이 정상으로 되돌아와서 시력이 회복된 것입니다. 이 일후에 이어령 씨는 딸에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지식도 돈도 너를 구할 수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네게 빛을 주셨구나. 네가 시력을 잃었을 때에 본 빛을 나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렴” 이런 고백을 한 후로 그는 기독교인이 되었고 신앙을 간증하는 간증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것이 첫 번째 단계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와 가까이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만나주기고 도와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여호와를 찾는다’는 말씀의 두 번째 의미는 악한 길과 불의한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본문 7절 말씀에는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여호와를 찾으며 동시에 악을 행하고, 불의한 생각을 갖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떤 남자가 조강지처를 버리고 첩을 얻어 동거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다시 조강지처를 찾아 전화를 했습니다. “여보, 내가 당신에게 돌아가고 싶소.” 그러자 본처가 물었습니다. “그 첩과는 헤어졌습니까?” 그러자 남자가 “아니오, 첩하고도 계속 살아야지.”라고 대답하면 본처의 반응은 뻔합니다. “나를 찾으려면 첩과 헤어지세요.” 본처를 찾을 때는 첩을 버려야지, 본처를 찾으면서 첩과 계속 동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찾으려면 불의한 길과 악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단계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하던 악한 예를 하나 보여줍니다.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사 8:19)’ 마술사나 신접한 자들은 스스로를 죽은 자와 교통하는 ‘영매’라고 자처를 합니다. 진짜 그렇지는 않는데 죽은 자와 교통하는 영매라고 자처하면서 속살거리고 지절거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살거리거나 지절거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들으라’고 선포하십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의사소통 방식은 눈짓하는 것과 발짓하는 것입니다. 식당에서 밥 먹는데 발짓하면서 의사소통을 하거나 손으로 가리어 사람들에게 ‘속닥속닥’하는 의사소통 방식도 싫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접한 자나 마술사, 또는 사단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에 말씀을 공포하시며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사람과 의사소통을 할 때는 얼굴과 눈을 보면서 정상적으로 대화해야 합니다. 속살거리고 지절거리는 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그런데 마술사나 영매들은 속살거립니다. 죽은 자의 영매로 자처하는 자들에게 산자의 일을 구하는 것은 악한 길입니다. 귀신을 숭배하고 점치는 것도 악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자기 하나님께 구하라, 하나님을 찾으라 이런 사악한 길은 버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고 널리 용서하신다’고 하십니다. 점치러 다니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즘은 대선 때이므로 사람들마다 점쟁이를 찾아가서 “이 후보가 되겠습니까? 아니면 저 후보 되겠습니까? 이 후보의 약점은 무엇입니까? 저 후보의 약점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래서 점쟁이 들이 대목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악한 길입니다. 우리는 산 자의 일을 위하여 죽은 자의 영매로 자처하는 자들에게 물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살아있을 때에도 못한 일을 죽어서 할 수는 없습니다. 산자의 일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악한 길을 버리고 불의한 생각을 버리는 것이 하나님을 찾는 두 번째 단계입니다.
마지막으로 ‘여호와를 찾는다’는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31장 1절은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찐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3절은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신이나 영이 아닌 존재를 찾아서 도와달라고 해봤자 아무런 소용없다는 말씀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이신 여호와를 앙모하고 그분을 찾아서 도움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국가적인 위기, 가정적인 위기. 개인 영혼의 위기, 그리고 교회적인 위기에 신도, 영도 아닌 존재에게 도움을 청하지 말고 거룩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라는 겁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찾는 세 번째 단계입니다.
고아의 아버지이자 기도의 대가로 불리는 영국의 죠지 뮬러는 “내가 평생 말씀과 성령을 따라 하나님의 인도와 도우심을 구했을 때는 언제나 성공했다. 그러나 마음의 정직성이 결여되어 하나님 앞에 바른 자세를 잃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닌 사람들의 충고를 의존했을 때는 모두 심각한 실패를 하였다”고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를 찾는 것은 악한 길을 버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내일부터 열흘 동안 특별새벽기도회를 합니다. 교구별로 모두 앉아서 어느 교구가 많이 모이는지 선의의 경쟁을 하고, 교구별로 특송도 할 것입니다. 구역장님들은 구역원들이 다 나오시도록 격려해서 열흘 동안 여호와를 찾는 좋은 계기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여호와를 찾아야 할 이유 세 가지

우리가 ‘여호와를 찾아야 할 이유’에 대해 오늘 본문은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 이유는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라는 사실입니다. 본문 6절에는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의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시간이로다’는 말씀은 지금은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요 지금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가까이 계신 때라는 의미입니다. 찾아도 만날 수 없고, 불러도 너무 멀리 계셔서 대답도 안하신다면 하나님을 찾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가까이 계시며 우리를 만나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잠언 8장 17절에도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고 우리의 예배 중에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가까이 계시며 찾는 자를 만나 주십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는 하나님께서 만나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나길 원하시면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그러면 만나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까이 계시며 우리를 만나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찾을 수 있습니다.
둘째 이유는 하나님을 찾으면 긍휼과 용서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7절은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복수와 미움과 정제와 심판이 가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긍휼과 용서를 베풀어 주시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 하고 찾으니까 “너 이놈 잘 왔다. 내가 너를 찾기만 하면 혼내주려고 몽둥이를 지금 준비하고 있느니라. 이 몽둥이가 안 보이느냐 맛 좀 봐라”며 “땅”하고 때리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물론 하나님을 안 찾고 도망가는 사람에게는 그가 스스로 찾은 길이 심판의 길이요 멸망의 길이니 어쩔 수 없겠습니다만 돌이켜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는 긍휼과 용서를 베풀어 주십니다.
미가서 7장 18절은 ‘주와 같은 신이 어디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죄악을 용서하시고 허물을 덮어주시고 진노하시다가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찾으면노를 없애시고 “내 새끼 왔느냐? 네가 오기를 기다렸노라”고 하면서 안아주시고 긍휼을 베푸시며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69편 32절은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케 할찌어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우리의 죄악은 용서받고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여 우리의 영혼이 소생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을 찾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이유는 하나님을 찾음으로써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일치가 되고 우리의 길은 하나님의 길과 일치되는 거룩하고 위대한 일치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본문 8절로 9절은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겁주시려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야, 너하고 나하고는 수준차가 너무 난다. 그러므로 너하고 나하고는 상대할 수가 없다”는 의미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이 말씀의 원래 뜻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기 전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하늘과 땅과 같은 넘을 수 없는 간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찾으면 이 간격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은 인간 안에 오시고 성령이 우리의 마음에 거주하게 되어 거룩한 일치가 일어나게 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셔서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이 되게 해 주시고 우리의 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이 되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가까이 계시기 때문에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까이 계시고 긍휼과 용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때 우리의 생각과 인생길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좋아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합치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찾아야 합니다.

결 론: 하나님을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다.
 
시편 34편 10절은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찌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부족함이 있습니까? 여호와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는 하나님께서 만나 주십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새벽에 나와서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을 찾으면 만나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는 자를 향해 하나님은 진노를 거두시며 기쁨과 즐거움을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을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긍휼과 널리 용서함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찾읍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이 소생함을 얻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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