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우선 신앙고백서 24장의 제목을 보면 “예수그리스도가 국가정치와 무슨 관계가 있기에 이런 제목을 공부해야 하는가?”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질문 자체가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는 영역이 교회뿐이라는 잘못된 생각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관해서는 역사상 네 가지 모델이 존재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① 교회가 국가보다 우위에서 교회가 국가를 지배하는 모델입니다. 중세기 사회가 이와 비슷합니다.
② 국가가 교회 위에 있어서 국가가 교회를 지배하는 모델입니다. 영국 성공회가 이와 비슷합니다.
③ 국가가 교회와 완전히 단절되었다고 생각하는 모델입니다. Anabaptist가 이와 비슷하고 현대 근본주의가 이와 유사한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고, 국가는 마귀의 지배 아래 있으므로 성도는 국가 위정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상입니다.
이는 초대교회 영지주의 사상과 같은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④ 교회와 국가는 모두 하나님의 지배아래 있지만, 교회와 국가는 다루고 있는 영역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 모델입니다. 개혁주의와 침례교회의 사상이 이와 비슷합니다. 장로교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교회에 간섭하는 영역이 크고 강하며 침례교회는 정교분리를 좀 더 철저히 주장하여 교회의 독립성을 더욱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침례교회가 Anabaptist처럼 정교 단절의 모델을 따른 것은 아닙니다.
Ⅰ. 제1항은 “국가 위정자는 하나님이 임명하신 직분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1. 롬13:1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국가 위정자의 위치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국가 위정자들을 백성 위에 두셔서 백성들을 다스리게 하셨지만, 하나님 아래 두셔서 하나님의 관할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백성들이 국가 위정자들을 자기 아랫사람 취급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위정자들이 자기 위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롬13:2에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라고 했습니다.
2. 국가 위정자가 임명된 목적은 무엇입니까? 신앙고백서 24장 1항 전반에 “하나님은 자기의 영광과 공적인 선을 위하여 위정자들을 임명하셨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1항 후반에서는 “선을 행하는 자들을 보호하고 격려하는 한편 악을 행하는 자들을 처벌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목적이요, 백성들을 향해서는 ”권선징악“을 행함으로써 공적인 선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국가위정자가 하나님을 거역하는 방향으로 정치나 행정을 한다든가, 아니면 선한 자를 처벌하고 악한 자를 높인다든가 하는 일을 하면 하나님이 직접 국가 위정자와 그 후손들을 처벌하시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3. 국가 위정자가 가지고 있는 권세는 무엇일까요? 신앙고백서 24장 1항 중반에 “하나님은 이러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국가 위정자들에게 칼의 권세를 주셨다”라고 하였습니다. 칼이란 포악한 범죄자들을 처벌하고, 공적인 불의를 제어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것입니다. 국가가 포악한 범죄자들에게 정당한 징벌을 하지 않으면, 그 칼은 위정자 자신을 향하게 될 것입니다. 불의한 판결을 하는 판사들은 이런 진리를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롬13:4은 이 진리를 확증하고 있습니다. “(13: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Ⅱ. 제2항은 “그리스도인이 공직을 수락해야 하느냐?”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1. 이 문제는 21C에는 아무런 이슈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16C 종교개혁기에는 첨예하게 대립하였던 이슈였습니다. 왜냐하면, Anabaptist들은 그리스도인은 공직을 수락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Anabaptist의 신앙고백서인 Schleitheim Confession(슐라이트하임 고백서) 제14항은 “국가의 정치는 하나님께 가증스러운 것이며, 국가가 무력을 갖는 것은 마귀적인 악이기 때문에 절대로 가담치 말아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침례교인들은 이 문제에 관해서 Anabaptist들과는 견해를 달리하고 습니다.
2. 먼저 성도가 공직을 수락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정당한 일임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눅3:14에서 군인들이 침례요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을 때 침례요한이 군인들에게 공직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말을 한적이 없습니다. 롬13:1,4,6에 보면 공직은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요”,“하나님의 사자요”,“하나님의 일꾼”이라고 했습니다.
3. 공직자들은 무엇에 관심을 두어야 할까요? 공직자들은 사명을 수행할 때에 그 나라의 건전한 법에 따라서 정의와 평화를 수행할 때에 그 나라의 건전한 법에 따라서 정의와 평화를 유지 하려는 일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공직자가 국가에 해를 끼치는 이적행위나 하고, 간첩질이나 한다면 그는 마땅히 공직에서 추방되고 이적행위에 대한 처벌을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4. 공직자들은 대단히 중요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의 정의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는 정당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합법적으로 전쟁을 치를 수 있는 것입니다. “평화론자”들은 전쟁에 반대하는 논리를 펼치지만, 성경은 “정당전쟁론”을 지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의 위정자가 공적인 정의와 평화를 지키고자 공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공직자의 특권인 것입니다. 물론 전쟁은 비참한 일이지만 침략하는 적들, 테러를 하는 악인들에게 무저항으로 복종하는 것은 더욱 큰 비참을 초래하는 일이고, 상식적으로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Anabaptist들이나 여호와 증인들은 “평화론”을 내세워 전쟁을 거부하고, 군대에 가는 것도 기피하지만, 남들이 피를 흘려 싸워 지킨 자유를 자기들이 누리겠다는 생각입니다. 침례교는 이런 Anabaptist들과는 다른 사상을 가진 것입니다. 전쟁이 있는 곳에는 가수들이나 연예인들이 끼어서 전쟁에 반대하는 노래도 부르고 공연도 하지만, 그것은 전쟁의 비참을 위로하려는 노력 정도로 봐줄 뿐입니다. 20세기 세계대전들이 지나고 Bob Dylan, Peter Paul & Mary 이런 가수들이 불렀던 대표적인 노래가 “Blowing in the wind(바람만이 대답을 알고 있다)“ 는 노래였습니다.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Before they call him a man?많은 길을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간도 아니란 말인가? 얼마나 많은 일을 겪어야 사람이 사람대접 받을 수 있을 것인가?How many seas must a white dove sail Before she can sleep in the sand?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를 건너야 백사장에 편히 쉴 수 있을까?How many times must the cannonballs fly Before they are forever banned?얼마나 많은 포탄이 하늘을 날아야 영원히 포탄이 추방되는 세상이 될 것인가?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g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내 친구에 그 대답은 바람 속에 날리고 있다네, 바람 속에
Ⅲ. 제 3항은 국가위정자들을 향한 성도들의 두 가지 의무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1. 첫째로, 성도들은 국가위정자에 대한 복종의 의무를 갖는 것입니다.
1) 왜 복종해야 할까요? 복종 의무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국가 위정자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종들이기 때문에 복종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롬13:2에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라고 했습니다.
2) 그러나 국가위정자들의 모든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합법적인 명령에만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합법적이냐 아니냐 하는 궁극적인 판단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도들은 국가가 우상에게 절하라 명하면 순종할 이유가 없습니다. 국가가 주일을 폐지하라 해도 순종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명령에 대해서 성도들은 거부권과 저항권을 갖는 것입니다. 복종의 의무도 그 범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3) 복종 의무는 “주님 안에서”갖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종 의무의 본질은 궁극적으로 신앙적이며, 하나님께 대한 복종의 표현인 것입니다.
4) 복종해야 하는 동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국가위정자에 복종하지 않으면 심판을 자처하는 일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위정자에 복종하지 않는 것은 성도의 양심에도 위반되기 때문입니다.
2. 둘째로, 성도들은 국가위정자들을 위해서 기도의 의무를 갖습니다. 위정자들뿐만 아니라 권세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하기 위함입니다. 딤전2:2이 기도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결론>
교회도 국가 안에 존재하는 기관입니다. 국가가 불안하면 교회도 불안해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국가가 공산화되면 교회는 북한처럼 폐쇄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국가를 사랑하고, 국가를 위해서 기도하고, 복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용감하게 국가의 안전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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