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교통(Communion)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와 연합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그 일치를 근거로 해서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나누는 일(Sharing)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통은 다른 말로는 성도의 교제(Fellowship)라고 합니다.
Ⅰ. 성도의 교통의 구속적 근거는 그리스도와 연합입니다. (1항 전반)
성도의 교통은 단순한 인간적 연합도 아니며, 직접적인 연합도 아닙니다. 성도의 교통은 그리스도를 공동의 구주로 모시고 있는 연합이며, 그리스도를 매개로 한 간접적인 연합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첫 번째는 성령의 내주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신자의 마음속에 내주하시는 은혜와 신자들의 믿음의 행사라는 두 가지 조건이 없이는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었다고 해서 그리스도와 하나의 위격을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웨스트민스터 고백서는 이 점을 좀더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성도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가지는 이 교제는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신성의 본체에 조금이라도 참여할 수 있다거나, 그리스도와 동등한 존재가 됨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이것을 인정함은 불경건하고 망령된 일입니다”(26장 3항) 각종 신비주의적 이단자들은 그들 자신도 신이 된다고 주장하나, 이 고백서는 이런 신비주의를 단호히 배격합니다.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행하신 모든 일과, 그리스도가 중보자로서 현재 소유하시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의 것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 죽음, 부활, 영광은 성도의 고난, 죽음, 부활,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되면, 저절로 성도간에 연합되는 것입니다.
Ⅱ. 성도의 교통에 대한 일반적 정의는 무엇일까요? (1항 후반)
성도의 교통이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그 근간이 되어 성도들끼리 서로 사랑함으로 연합이 되어 각자가 받은 은사와 은총을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정의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은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되고 그리스도를 사랑함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신부인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머리만 사랑하고 몸은 사랑하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성도들은 자기 자신 만을 위해서 사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이웃을 위해서 살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도들 서로 서로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는 성도들은 각자 받은 은사와 은총을 나누며, 영육간의 상호 유익을 이눕니다.
성도들이 가진 유익을 상호간에 주기 위해서 공적인 의무와 사적인 의무들을 질서정연하게 이행해야 합니다.
Ⅲ. 성도의 교통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될까요? (2항)
성도의 교통이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영역은 영적인 영역과 육신적인 영역으로 나누어 집니다.
영적인 영역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상호 건덕(建德)을 위한 영적인 봉사, 구체적으로는 교육이나, 선교나, 권면이나, 전도 등의 영적인 영역이 이에 해당됩니다.
육신적인 영역은 외적인 육신적인 생활에서 성도들이 서로 돕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 두 가지 영역에서 거룩한 교제와 교통을 지속해야 합니다.
성도의 교통의 대상자들은 우선 성도의 직접적인 교제권에 있는 가족, 교회의 성도들과 교통해야 합니다. 또한 이러한 교통은 우주적 교회로 확대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도의 교통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성도의 교통은 개인의 소유권이나 재산권을 탈취하여 공산사회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헌신으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결 론>
교회는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룬 사람들이 건강한 성도의 교통을 이룰 때에 건강한 교회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유익을 주며 살아야 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