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웨스트민스터 고백서에서 제27조에 “성례전에 관하여”(of the Sacraments)라고 하여 5개 조항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을 침례교는 두 개 조항으로 줄여놓았습니다. 그리고 “성례전”이라는 단어를 회피하고 있습니다.침례와 주의 만찬을 “성례전”이라고 부를 것이냐, “교회의식”이라고 부를 것이냐 하는 문제는 성례전이 무엇이냐 하는 개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첫째로, “성례전”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Sacramentum에서 나온 말인데 이 단어는 라틴 벌게이트(로마 가톨릭의 성경)에서 “신비- mystery”의 번역어로 사용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례전 자체에 어떤 신비적 변화나 능력이 있다고 하는 의미로 사용된다면 침례교가 이 용어의 사용을 거부해야 마땅합니다.둘째로, 그러나 성례전을 일반적으로 교회의 거룩한 의식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면 사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용어의 혼란이 초래된다면 “교회의식”(Church Ordinances)이라는 용어로 충분할 것입니다.
Ⅰ. 교회의식의 특수성
제1항에서는 침례와 주의 만찬을 “적극적이며 주권적인 제도”(Positive and sovereign institution)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적극적인 제도라는 말씀의 의미는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자연과 거스른”(opposed to nature)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침례와 주의 만찬은 자연법이 요구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도 요구되지 않던 것이요, 오직 신약시대에 예수님께서 주권적으로 제정하신 제도라는 의미입니다.
Ⅱ. 교회의식의 제정자
이 두 가지 의식은 교회의 법을 수여하실 수 있는 유일한 권위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의식을 준수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에 순종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Ⅲ. 교회의식의 지속성
이 두 가지 교회의식은 세상 끝까지 지속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들이 죽어도 이 두 가지 의식은 계속 되어야 하며 세상 끝까지,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시까지 지속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식은 과거적인 측면으로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억하며, 미래적인 측면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대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Ⅳ. 교회의식의 합당한 집행
제1차 런던고백서에는 “모든 제자들은” 누구나 교회의식을 집행할 수 있다고 되어 있고, 웨스트민스터 고백서는 오직 “안수받은 목사들”만이 의식을 집행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필라델피아 고백서는 그 중간적 위치를 취하여 “자격이 있고, 그 일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서 집행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안수받은 목사가 있을 때는 당연히 목사가 집행하되,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집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안수받은 목사가 없는 경우는 가까운 목사의 지도 아래 적절한 사람이 집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 29장 침례에 관하여
<전문>
1. 침례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신약성서의 의식이다. 침례는 침례받는 당사자 에게는 첫째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함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표식이며1), 둘째로, 죄들이 사함 받는 표식이며2) 셋째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하여 새생명으로 살고 행한다는 표식이 된다.3)
1) 롬 6:3-5; 골 2:12; 갈 3:27
2) 막 1:4; 행 22:16
3) 롬 6:4
2.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순종을 실제로 고백하는 사람들만이 이 의식의 합당한 유일한 자격자들이다.1)
1) 마 3:1~12; 막 1:4~6; 눅 3:3~6; 마 28:19~20; 막 16:15~16; 요 4:1~2;
고전 1:13~17; 행 2:37~41; 8:12~13; 36~38; 9:18; 10:47~48; 11:16; 15:9; 16:14~15, 31~34; 18:8; 19:3~5; 22:16; 롬6:3~4; 갈 3:27;
골 2:12; 벧전 3:21; 렘 31:31~34;빌 3:3; 요 1:12~13; 마 21:43
3. 이 의식에 사용되는 외적 요소는 물이며, 침례 받는 사람은 물속에
들어가서1) 성부, 성자,성령의 이름으로 침례 받는 것이다.2)
1) 마 3:11; 행 8:36, 38; 22:16
2) 마 28: 18~20
4. 침수례 즉 사람을 물 속에 담그는 방식이 이 의식의 합당한 시행을 위해서 요구되는 방식이다.1)
1) 왕하 5:14; 시 69:2; 사 21:4; 막 1:5, 8~9; 요 3:23; 행 8:38; 롬6:4; 골 2:12;막7:3~4 10:38~39; 눅 12:50; 고전 10:1~2; 마3:11; 행1:5,8; 2:1~4, 17.
Ⅰ. 침례의 영적인 의미 (1항)
1. 수침자침례의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수침자입니다. 왜냐하면 침례는 하나님과 수침자 개인간의 언약적인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침례는 종종 공적인 환경이 아니라 사적인 환경에서도 행하여졌습니다. 이 점이 주의 만찬과 다른 점입니다. 주의 만찬은 집단적인 의식이지만, 침례는 개인적인 의식입니다. 침례 자체가 구원을 주는 것은 아니나, 침례의식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결혼식이 결혼시키는 것은 아니나, 혼인 당사자들에게 중요한 의식인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2. 침례의 세 가지 의미침례란 무엇인가? “복음의 언어적인 형태를 비언어적 가시적인 의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라고 함축성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침례는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옴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되는 의미가 있습니다(Union with Christ). 둘째로, 침례는 수침자의 죄가 사함 받았다는 것을 상징합니다(엡1:7) (remission of sins). 셋째로,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자신을 외탁하여 새 생명으로 살고 행한다는 “마음의 도덕적 정화”(moral purification of our heart)라는 의미가 있습니다.침례는 복음에 대한 신앙적 반응(saving response to the gospel)이므로 유아들에게 시행 될 수 없음은 당연합니다.
Ⅱ. 침례의 합당한 대상자(2항)
침례의 합당한 대상자라는 명제는 “누가 침례를 받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침례교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한 자만이 합당한 대상자가 됩니다. “신자의 침례”(believers’ baptism)원리를 고수하는 것입니다.
침례에 대하여 여러 가지 신학적 주장이 존재 하여 왔습니다. 전통적으로 로마가톨릭 교회는 침례중생설(baptismal regeneration) 주장하였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영세가 중생을 주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침례교, 재침례교, 개혁교 전통에 속한 사람들은 이런 사상을 부인했습니다.
침례중생설을 반대하는 개신교도들 가운데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침례교도들입니다. 개혁교도들은 소위 연약신학에 근거해서 유아세례를 주장합니다. 유아세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은혜언약(Covenant of Grace)은 신자들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육신적 자녀까지 포함 한다는 것이다 이들을 언약적 자녀(Covenantal Children)이라고 부릅니다.
두 번째, 구약시대 언약의 표식은 할례였고, 어린아이들에게 적용되었고 때로는 어른들에게도 적용되었습니다.
세 번째, 신약시대 언약의 표식은 세례이며, 할례를 대신하였다. 따라서 세례는 어른들뿐 아니라 유아들에게도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침례교 특히 개혁주의적 칼빈주의 신학구조를 가진 특수 침례교도들은 개혁교도들처럼 언약신학을 믿기는 하되 언약적 자녀라는 개념은 거부합니다. 은혜언약은 오직 믿는 자에게 국한되는 것이지, 그 육신의 자손까지 자동적으로 포함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침례교인들은 유아세례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반응합니다.
첫 번째, 구약의 할례와 신약의 침례가 언약적인 표식이라는 점에서 공통성이 있지만, 그 시행 대상자를 저절로 동일시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 침례 받은 자는 마땅히 주의 만찬에 참여해야 하는데 유아세례 받은 자가 주의 만찬에 참여하려면 개인적이며 지적인 신앙고백이 별도로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유아는 그러한 믿음의 고백을 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유아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은 논리적 모순입니다.
세 번째 신약성서는 일관성 있게 신자의 침례를 시행하고 있으며, 유아세례 주장자들이 근거 구절로 내세우고 있는 일부 구절들은 그 논리가 박약합니다(마 19:13~15, 막 10:13~16; 눅 18:15~17)
Ⅲ. 침례의 외적 요소(3항, 4항)
침례는 물을 사용한다. 물은 씻는 것을 상징하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입니다(행22:16).
침례는 거룩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받는 것이다. 마태복음 28:18~20은 이 점을 분명히 명하고 있습니다.
침례의 양식은 ‘침수례’(Immersion or Dipping)입니다. 그러나 다른 양식으로 세례나 관수례를 받은 사람을 무효라고 선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합당한’ 방식으로 침례를 주려면 ‘침수례’가 요구된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침례의 원어는 밥티조이며 이 용어는 헬라어의 문자적 의미로 침수례를 뜻합니다. 침례가 주는 상징적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고 부활하는 것인데, 오로지 침수례만이 그 상징적 의미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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