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규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레 11:1-8)

날짜 : 2015-11-15
본문 :

서론 

레위기 11장은 음식규례에 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숫자 11이 젓가락처럼 생겨서 외우기도 쉽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음식규례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음식규례는 신명기 14장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신약시대 성도들에게 음식규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오늘 날까지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혼란케 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많은 유대인들은 여기 기록된 음식규례를 지키고 있고, 안식교도들도 음식규례를 지키고 있습니다. 식당 가운데도 음식규례를 지킨다고 홍보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고기를 먹지 않고, 오직 야채만 먹겠다는 채식주의자로 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무엇을 먹어야 하고,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레위기 11장에 기록된 음식규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Ⅰ. 음식규례의 세부내용 

레위기 11장은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 1~23절까지는 ‘정한 식물’과 ‘부정한 식물’을 구별하는 기준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한 식물’은 영어로 ‘Kosher’라고 합니다. 히브리어 ‘카셰르’에서 유래한 단어인데, ‘적합한’(Right, Fit)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부정한 식물’은 반대로 ‘Unkosher’라고 합니다. 먹을 수 없는, 부적합한 식물을 가리킵니다. 
요즘은 ‘Kosher Meat’라는 단어가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레위기 11장에 기록된 ‘정한 음식으로 분류된 고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한 음식만을 파는 식당을 ‘Kosher Restaurant’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니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레위기 11장의 음식규례가 여전히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23절에 기록된 생물은 크게 네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육지생물과 바다생물, 하늘을 나는 생물과 곤충입니다. 
육지생물에게 정한 식물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두 가지입니다. 3절에 “짐승 중 무릇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을 하는 두 가지 조건이 다 충족된 생물이라야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소나 양이나 염소와 같은 동물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 중에 하나라도 조건이 맞지 않는 것은 먹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약대, 사반, 토끼, 돼지와 같은 동물은 먹을 수 없습니다.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지 못하면 부정한 식물이 되는 것입니다. 
바다생물은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어야 합니다. 돔 종류같은 것들입니다. 둘 중 하나라도 없거나 둘 다 없는 것은 먹을 수 없습니다. 조개, 게, 굴, 새우, 바다가재, 뱀장어, 문어, 낙지, 오징어 등은 먹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모두 부정한 식물입니다. 
하늘을 나는 생물 중에는 20여종이 부정한 생물이라고 했습니다. 독수리, 매, 까마귀와 같이 육식을 하는 새들을 ‘Predators’라고 하고, 썩은 고기를 찾아가서 먹는 새들은 ‘Scavengers’라고 합니다. 또 당아새, 뻐꾸기, 부엉이, 소쩍새와 같은 조류도 부정합니다. 
곤충은 거의 모두 부정한 식물이지만, 다리가 있어서 땅에서 뛰는 메뚜기와 같은 것은 먹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둘째, 24~43절까지는 부정한 생물의 주검과 접촉해서 오염된 옷이나 그릇, 사람을 처리하는 문제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경우 저녁때까지 부정합니다. 저녁이 지나면 다시 정해지는데,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녁까지 부정한 사람이 됩니다. 돼지고기나 오징어를 먹었거나 그 주검을 만진 사람은 모두 부정합니다. 그릇이 좋은 그릇인 경우에는 설거지를 해서 저녁이 지나면 다시 사용하고, 값싼 그릇은 깨뜨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옷은 버릴 수 없으니 깨끗이 세탁해서 저녁이 지난 이후에 입도록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저녁이라는 시간의 제한을 두고 정함과 부정함을 정하셨습니다. 
셋째, 44~47절에는 음식규례를 주신 일반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될 것과 이방인들과 구별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음식규례를 주신 목적입니다. 

Ⅱ. 음식규례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의문들 

음식규례를 생각해 볼 때 여러 가지 의문점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왜 맛있는 돼지고기, 새우, 오징어, 낙지와 같은 것을 먹지 못하게 하셨는지, 신약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이런 음식을 먹어도 되는지, 먹지 말아야 한다면 이유는 무엇인지, 여러 가지 질문이 생기는 것입니다. 음식규례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규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음식규례를 주신 이유에 대해 네 가지 측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종교적인 목적’입니다. 레위기 11장에 기록된 부정한 식물들은 주로 이방인들이 이방신들을 섬기고 제사할 때 사용하던 생물들입니다. 우리나라도 불신자들이 제사지낼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동물이 돼지입니다. 돼지 머리를 제사상에 두고 제사합니다. 중동지방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이사야 65장 4절에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지내며 돼지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물건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방신들을 제사하는데 돼지고기가 많이 사용되었으니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들이 제사하는 곳에 가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종교적인 목적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이라는 견해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일부분 타당하나 완전한 설명이 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도 소나 양이나 염소를 가지고 제사를 드리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위생과 건강을 위한 목적’입니다. 부정한 생물들은 사람에게 좋지 않은 기생충이나 바이러스를 쉽게 옮길 위험이 있는 것들이라는 견해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백성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음식규례를 주셨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먹지 말라고 하신 것들은 고지혈증이나 고혈압을 유발하는 생물들이기 때문에 위생과 건강 상 먹지 못하도록 하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이런 주장도 일부분은 타당하지만 완전하지 않습니다. 
돼지고기는 선모충이라는 기생충이 있습니다. 반드시 삶거나 구워먹어야 합니다. 육회로 먹으면 안 됩니다. 굴도 마찬가지입니다. 날것으로 먹으면 좋지 않을 때가 있다고 합니다. 자연산 굴이라 할지라도 독이 생성되는 시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장들은 일부분 설득력을 갖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완전한 설명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부정한 식물과 접촉한 그릇이 저녁을 지나면 다시 정한 그릇이 된다는 것도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는 ‘정치적인 목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방인들과의 혼인을 금하여 민족적 단일성을 유지하도록 음식규례를 주셨다는 견해입니다. 이스라엘 남자가 이방 여인과 결혼을 했는데, 아침에 돼지고기, 점심에 오징어, 저녁에 굴을 요리해서 준다면 어떻게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역시도 충분한 설명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방 여인이라도 부정한 식물로 요리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민족적 단일성을 유지하시려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셨다면 이것 역시 불합리하다고 비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답변이 궁색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넷째는 ‘상징적인 교육의 목적’입니다. 예를 들어 공격적이거나 더럽거나 영적으로 사탄을 상징하는 것들을 먹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부정한 식물과 같은 종류의 삶을 살지 않게 하시려는 상징적 교육에 의의가 있다는 견해입니다. 
뱀 먹는 것을 금하심은 뱀처럼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활하게 행동하는 삶을 살지 못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오징어를 먹지 말라시는 것은 지조 없는 인물이 되지 말라는 상징적인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일부 타당성이 있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풍유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이 가미될 수 있기 때문에 객관적인 진리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이 설명들이 모두 완전하지는 않지만 통합적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조금씩 설득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각자 일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음식규례를 주셨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십계명의 제7계명 “간음하지 말라”는 첫째로 종교적으로 간음이 죄가 되기 때문이고, 둘째로 성병과 같은 질병이 오기 때문이며, 셋째로 간음이 영적으로 우상숭배를 상징하기 때문이며, 또한 간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면 사회가 더럽고 지저분해 지기 때문에 간음을 금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음식규례를 설명하는 이 네 가지 목적들은 어느 정도 타당한 이유들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Ⅲ. 음식규례는 신약시대에도 유효한가?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음식규례가 그대로 적용이 되는지에 대한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질문에 대해 안식교 계통의 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음식규례를 폐지했다는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음식규례를 철폐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레위기 11장의 음식규례가 십계명과 마찬가지로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항존법’(Standing Law)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음식규례를 완전히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식당을 가든지 돼지고기가 단 한 번도 닿지 않은 접시나 그릇을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새우나 오징어를 손질해 본 적이 없는 칼을 발견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음식규례를 완벽하게 지킨다는 것은 헛된 주장이며 불가능한 일입니다. 단 한 번이라도 지키지 못한다면 모두 지키지 못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안식교 계통의 학자들은 불가피하게 지킬 수 없는 것은 의식법에 속한 부분이고, 지킬 수 있는 것은 도덕법에 속하는 부분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레위기 11장 어디에서도 의식법과 도덕법을 구분해 기록하지 않습니다. 이런 모든 주장들은 모두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자의적인 해석인 것입니다. 
안식교 학자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갈 때 이미 정한 식물과 부정한 식물을 구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하나님이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기 전부터 노아 시대에도 존재했던 타당한 도덕법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노아 시대에 있었던 제사장, 제사법 등이 지금도 그대로 존재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두 다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신약성경에는 구약의 음식규례를 유대인이 지킬 필요가 없고, 이방인도 지킬 필요가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음식규례에 대한 명확한 진리입니다. 유대인들도 더 이상 음식규례에 제한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애당초 이방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았고,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에도 음식규례라는 멍에를 쓰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음식규례는 철폐되었습니다. 
그러면 돼지고기를 먹어도 될까요? 됩니다. 새우나 오징어를 먹어도 될까요? 됩니다. 유대인에게도 이제 더 이상 음식규례의 구속력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신 이상 유대인들이 민족적 단일성을 유지할 필요도 없고, 신앙적 단일성을 지킬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는 것들이 철폐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을 정치적, 종교적으로 따로 구별하기 위한 규례는 소용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명백하게 증거하였습니다. 로마서 14장 14절에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주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어떤 음식도 그 자체로 부정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로마서 14장 20절에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모든 음식이 정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5~26절에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10장 27절에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하매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자가 불신자의 집에 초청을 받아 갔는데, 요리를 해 놓았습니다. 그러면 아무 것도 묻지 말고 먹으라는 것입니다. “이 음식이 정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우상에게 바쳤던 음식입니까?”라고 묻지 말고 그냥 먹으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상에게 바친 음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것은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상에게 음식을 바친 사람의 믿음을 위해서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믿음이 약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골로새서 2장 16절에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먹고 마시는 문제 가지고 논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구약시대에는 안식일을 토요일에 지켰지만 지금은 주일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폄논하지 못하게 하라시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 바꾸신 것을 두고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21절에도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문제들이 세상의 초등학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 이런 것들을 열심히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음식 문제를 가지고 구원과 연관 지어 신앙의 규율로 삼아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율법주의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부류입니다. 복음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2~5절에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이 문제에 관해 결론을 내렸습니다. 
“혼인을 금하고 음식을 폐하라!”고 거짓 선지자들이 말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결혼하면 안 됩니까? 그러면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이 더 거룩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양육해봐야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독신으로 산다고 거룩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음식규례나 할례나 독신제도와 같은 것들은 모두 초등학문이라고 합니다. 부정한 식물을 폐하라고 하는 사람들은 양심에 화인 맞아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기 때문에 우리는 감사함으로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물론 영양학이나 위생, 그리고 건강상의 문제는 별개입니다. 영양학자의 판단으로 “당신에게 이런 음식은 좋지 않으니 먹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구원이나 신앙, 종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입니다. 
레위기 11장에 음식규례를 기록해 주신 하나님의 목적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한 백성이요, 이방인들은 부정한 백성이라는 예표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백성들이 정한 백성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백성들은 죄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부정한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레위기 11장의 음식규례를 주신 예표적인 목적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이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을 교훈합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닮아가고, 이방 불신자들처럼 살지 말고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아가야 하고, 불신자들과 구별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예표적인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정한 백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정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구별된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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