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의 축복과 권징 (레 26:40-45)

날짜 : 2016-02-21
본문 : 레위기 26:40-45

서론 

레위기 26장은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장인데, 모세가 레위기 26장의 내용을 약 38년 후에 신명기 28~30장에 다시 반복해서 설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레위기 26장에서 말씀했던 분량보다 2장이 더 늘어 총 3개장에 걸쳐서 기록되었습니다. 모세가 이 말씀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레위기 26장은 세 가지 내용으로 구분됩니다. 첫째는 1~13절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잘 지키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즉, 언약의 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둘째는 14~39절로, 하나님의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이라 할지라도 언약을 어기고 배반하면 징벌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첫째 부분이 13개절로 되어 있는데 반해 둘째 부분이 26개절로, 복에 대한 말씀보다 징벌에 대한 말씀이 두 배나 많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천성적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기질보다 불순종하려는 기절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셋째는 40~45절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이 징벌을 받을지라도 이것이 하나님의 권징임을 깨닫고 마음을 낮추고 돌이키면 하나님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다시 회복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즉, 언약의 회복입니다. 레위기 26장은 언약적 축복, 언약적 징벌, 언약적 회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레위기 26장에 기록된 언약을 중심으로 다섯 가지 주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Ⅰ.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신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과 관계를 맺으실 때는 반드시 언약을 매개 수단으로 삼으십니다. 언약으로 상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언약의 말씀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언약은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레위기 26장에는 언약이라는 단어가 8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9절에 “내가 너희를 권고하여 나의 너희와 세운 언약을 이행하여 너희로 번성케 하고 너희로 창대케 할 것이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세우시고 이행하기도 하십니다. 15절에 “나의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나의 법도를 싫어하여 나의 모든 계명을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배반할진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하기도 합니다. 25절에 “내가 칼을 너희에게로 가져다가 너희의 배약한 원수를 갚을 것이며 너희가 성읍에 모일지라도 너희 중에 염병을 보내고 너희를 대적의 손에 붙일 것이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언약을 배반하면 하나님이 칼을 가져다가 원수를 갚으신다는 무서운 말씀입니다. 
또 42절에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고 그 땅을 권고하리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언약’이 3번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기억하십니다. 44절에 “그런즉 그들이 대적의 땅에 거할 때에 내가 싫어 버리지 아니하며 미워하지 아니하며 아주 멸하지 아니하여 나의 그들과 세운 언약을 폐하지 아니하리니 나는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폐하지 않으십니다. 45절에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 위하여 열방의 목전에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그들의 열조와 맺은 언약을 그들을 위하여 기억하리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조와 맺은 언약을 기억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언약’(Covenant)은 레위기 26장에 가장 중요한 단어입니다. 그래서 이 장은 언약을 중심으로 묵상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사람이 언약 관계에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레위기 26장 11~12절에 그 핵심적인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내 장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 되면 하나님이 그들의 장막 가운데 함께 거하십니다(Dwell).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싫어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하십니다(Love). 또한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행하십니다(Walk). 이것이 언약적 관계를 설명해 주는 핵심구절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건져주신 목적은 1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 그 종된 것을 면케 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너희 멍에 빗장목을 깨뜨리고 너희로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멍에를 매고 고통 받고 있는 것을 방임하지 않으시어 그들의 멍에를 깨뜨리시고, 일어나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적 관계를 맺으시기 위해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 중에 거하시고, 사랑하시고, 또한 그들 가운데 행하셨습니다. 죄의 멍에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깨뜨리시고, 우리로 일어나서 마음대로 다니게 자유를 주신 것은 우리들로 언약의 백성으로 삼기 위함이었습니다. 
언약은 일반적으로 사람들 간에 맺는 약속과 성격이 다릅니다. 가장 큰 차이점이 약속은 지킬 수도 있고 지키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언약은 당사자가 한 번 맺으면 절대로 함부로 변경하거나 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언약은 ‘조직적인 약속’(Structured Relationship)입니다. 
옛날에 언약을 맺을 때에 당사자끼리 평등한 관계에서 맺은 ‘평등 언약’도 있었지만, 어떤 경우에는 왕이 피정복국가 백성들과 수직적인 관계에서 맺는 ‘불평등 언약’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평등, 불평등 언약의 관계없이 어느 누구라도 임의로 변경하거나 폐지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약의 내용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 언약이 바로 ‘시내산언약’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시내산에 당도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과 시내산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역사를 이해함에 있어 시내산언약을 잘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출애굽기 19장 7~8절에 “모세가 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 앞에 진술하니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로 여호와께 회보하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말씀을 증거했는데, 이 말씀의 핵심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여러분, 십계명을 모두 암송하고 계십니까? 요즘은 십계명을 다 외우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시내산언약의 핵심인 십계명을 증거했을 때, 백성들은 모두 계명을 지키겠노라고 응답했습니다. 그래서 체결된 언약이 바로 시내산언약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단순합니다. 너희가 십계명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면 내가 반드시 복을 주고, 너희가 이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으면 네게 벌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십계명을 잘 지켜서 구원 받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구원의 기준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애굽에서 나와 구원받은 백성들입니다. 이 백성은 예표적으로 구원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이미 출애굽한 백성들에게 주어진 시내산 언약은 구원의 기준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래서 이를 지키면 복을 받고, 지키지 않으면 징벌이 따르는 복과 벌의 기준이 됩니다. 하나님의 벌은 애굽의 노예로 돌이키시는 구원의 상실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매를 맞는 징계를 가리킵니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도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 속에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시내산 언약이 아니라 은혜언약입니다. 은혜언약은 누구든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죄 용서함을 받고 죽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 속에 성령을 보내주시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지옥가기는 다 틀린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 문 앞에 섰을 때, “내가 너를 천국에 들어오게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느냐?”고 물으신다면 우리는 “예수님과 은혜언약을 맺었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언약 때문에 우리를 받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천국에서 받아주시겠다는 언약, 어길 수도 변경할 수도 폐지할 수도 없는 이 은혜언약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상대하실 때, 언약을 매개로 삼으십니다. 

Ⅱ. 시내산 언약을 충실히 지키면 복을 받는다. 

레위기 26장 1~2절에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목상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의 성소를 공경하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십계명 첫 돌비에 적힌 내용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3~13절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실 네 가지 복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물질적 복’(Material Blessing)입니다. 땅이 많은 소산물을 내고, 나무에 열매가 풍성하게 맺혀서 이듬 해 파종할 때까지도 다 거두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너희가 배불리 먹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잘 준수하면 물질의 복이 임하게 됩니다. 
둘째, ‘육신의 안전’(Physical Security)입니다. 땅에 안전히 거하게 되고, 전쟁 없이 평화를 누리게 되고, 두렵게 할 사람이 없고, 사나운 짐승도 없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이 사회에 칼을 소지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면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애들을 밖에 보내지 못할 것입니다. 육신의 안전이 보장된다는 것은 엄청난 복입니다. 
셋째, ‘군사적 승리’(Military Victory)입니다. 대적들이 모두 물러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5명이 100명을 쫓아 보내고, 100명이 10,000명을 쫓아 보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넷째, ‘영적인 복’(Spiritual Benefits)입니다. 하나님이 장막에 함께 거하시고, 사랑해 주시며, 백성들 가운데 행하시는 복입니다. 이 모든 복들은 택한 백성이라고 해서 저절로 받고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것을 준행해야 주시는 것입니다. 철저히 조건적인 복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이 주신 계명들을 잘 지켜야 합니다. 십계명을 잘 지켜야 합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복을 받으려면 십계명을 잘 지켜야 합니다. 
한국 기독교가 율법폐기론에 빠져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는 티켓만 얻으면 되지, 십계명을 지켜서 무엇 하느냐는 사상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교세가 커져도 사회의 윤리 도덕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십계명을 내다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사람이고, 혹여나 들어가도 꼴찌가 될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9). 

Ⅲ. 하나님의 택자라도 시내산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권징이 따른다. 

14~15절에 “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치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나의 법도를 싫어하여 나의 모든 계명을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배반할진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싫어하고, 성경을 읽지도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멸시하고, 준행하기를 싫어하고, 배반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구원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옥 간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현실 속에 하나님의 권징이 임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매를 대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선하신 분, 우리가 아무렇게나 해도 복만 주시는 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엄위하시고 무서운 분이십니다. 로마서 11장 22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고 좋으신 분이심과 동시에 무섭고 두려운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엄위가 나타나면 엄청나게 무서운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0~31절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징벌을 내리실까요? 첫째, 질병을 내리십니다. 16절에 “내가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곧 내가 너희에게 놀라운 재앙을 내려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하게 할 것이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몸의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는 질병을 내리십니다. 
둘째, 가난하게 만드십니다. 농산물을 수확해도 원수가 와서 다 빼앗아 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6절 후반에 “너희의 파종은 헛되리니 너희의 대적이 그것을 먹을 것임이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셋째, 전쟁에서 패하게 하십니다. 17절에 “내가 너희를 치리니 너희가 너희 대적에게 패할 것이요 너희를 미워하는 자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며 너희는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쟁에 패배하는 것입니다. 
넷째, 위태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들짐승들이 창궐하여 자녀들을 해치고 육축들을 죽이게 됩니다. 22절에 “내가 들짐승을 너희 중에 보내리니 그것들이 너희 자녀를 움키고 너희 육축을 멸하며 너희 수효를 감소케 할지라 너희 도로가 황폐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심하고 밖에 나가 돌아다닐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난과 어려움이 얼마나 극심한 지, 29절에 보면 자기 자식의 고기를 먹게 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남의 집 자식을 먹을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식을 먹을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얼마나 괴로운 심판입니까?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유다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멸망할 때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예레미야애가 4장 10절에 “처녀 내 백성의 멸망할 때에 자비한 부녀가 손으로 자기 자녀를 삶아 식물을 삼았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녀를 삶아 먹은 부녀가 잔인한 부녀가 아니라 자비한 부녀라고 했습니다. 인자한 어머니조차 자식을 먹은 것입니다. 
제가 1997년도에 미국의 신학교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학생들이 “한국 사람들은 개를 잡아먹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잡아먹는다”고 했더니, 야만족이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성경을 제대로 읽어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성경에 자비한 부녀가 자기 자식을 삶아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한민국이 한 때 전쟁의 처참함으로 먹을 것이 없어도 자식을 먹지 않고 개를 잡아먹었던 것이다. 너희 역시 참혹한 전쟁을 치르고 난 후 먹을 것이 없게 되면 개를 잡아먹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더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도 자기 자식을 삶아 먹었는데, 배고파 죽을 지경이 되면 개라고 왜 안 먹겠습니까? 
하나님이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병을 주시고, 가난과 패배를 주시고, 자녀를 삶아 먹게 되는 극심한 어려움을 겪게 하시는데, 그보다 더한 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포로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33절에 “내가 너희를 열방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식년을 지키라고 하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자, 하나님이 그들의 땅을 강제로 안식하게 하셨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사람들에게 붙잡혀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는 가운데, 가나안 땅은 70년의 안식년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오차 없이 역사 속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언약의 복을 받은 이야기보다 언약의 권징을 받은 이야기가 훨씬 많습니다. 대한민국도 하나님께 매를 많이 맞았습니다. 일본의 통치를 받았던 36년, 그리고 이어진 한국전쟁은 하나님의 아주 큰 매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매가 없었다면 유불선으로 점철되어있던 대한민국에 기독교가 퍼져나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온갖 어려움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려주시도록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된 줄 믿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복을 많이 받고 부자로 잘 먹고 잘 살게 되니, 사치하고 방탕하고 타락해서 하나님께 배역하고 교회에 대해 막말을 합니다. 다시 하나님의 권징이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북한의 김정은이 설치고,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고, 교육・경제・국방의 위기 등 사회 곳곳에서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권징이 아닌 복을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Ⅳ. 권징을 받는 택자들이 돌이키면 하나님은 다시 언약적 복을 내리신다. 

레위기 26장에는 권징을 받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권징임을 깨닫고 죄를 자복하고 마음을 낮추어 징벌을 순순히 받아들이면, 하나님은 다시 언약을 기억하시고 언약적 복을 내려주신다는 원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회복하시고 다시 복을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죄를 자복하고 마음을 낮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만하면 갖가지 권징이 따르게 됩니다. 다니엘 9장에 보면 다니엘이 자기와 열조의 죄를 자복할 때 70이레에 관한 계시 받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느헤미야 1장에 술 맡은 관원장인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이 성벽도 없이 원수들에게 능욕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자기와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함으로 성벽 재건의 기도 응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신명기 30장 1~10절에도 포로가 되었을 지라도 레위기 26장, 신명기 28장의 말씀이 생각나서 온전한 마음으로 회개하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다시 기뻐하시고 복을 내리시며 생명을 얻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모는 자녀가 잘못했을 때 한 대 때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녀가 진심으로 자기 잘못을 고백하고 똑바로 하겠다고 하면 한 대 더 때리겠습니까? 그를 받아주겠습니까? “내 마음이 더 아팠다”며 받아주지 않겠습니까? 더 때리는 아버지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잘해 줄 것입니다. 레위기 26장 40~45절은 택함을 받은 백성들이 권징을 받는 상황에서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이 다시 복을 주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Ⅴ. 언약의 근거는 하나님의 은혜에 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든, 권징하시든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었다는 그 자체가 은혜입니다. 이방 백성들을 향한 언약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언약에 있어서 외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십계명도 없고 어떻게 하면 복을 받는지에 대한 약속도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권징도 사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 다른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이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권징도, 복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결론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이 말씀이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까요? 십계명을 지키면 물질적인 복을 다 받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면 원수가 떠나가는 일들이 항상 일어날까요? 반드시 꼭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100% 똑같이 적용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 언약 아래 있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공로를 세우사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은혜언약 아래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다릅니다. 
그러나 똑같이 적용될 수는 없다할지라도 은혜 언약 아래 있는 신약시대의 성도도 모세가 받은 십계명을 삶의 중요한 기준으로 받아야 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십계명은 시대를 초월해서 지켜야 마땅한 항존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계명을 잘 지키고 살면 복을 받는다는 기본 원리는 같습니다. 또 이를 어기면 권징이 온다는 원리도 똑같습니다. 그러면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날까요? 
복의 내용면에서 강조점이 달라졌습니다. 신약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구약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주신 물질적, 현세적 복보다 영적이고 내세적인 복을 중심으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물질적인 복과 현세의 복은 금 덩어리와 같은 것이고, 영적이고 내세적인 복은 다이아몬드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만일 금 덩어리와 다이아몬드가 있으면 어떤 것을 갖겠습니까? 둘 다 갖고 싶지만 그런데 둘 중 하나만 갖고 살라 시면 저는 무조건 다이아몬드를 갖겠습니다. 
사도 바울과 열 두 사도들을 보면, 그들은 세상에서 많이 가진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내세적인 복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금 덩어리는 천국의 보도블록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영적인 복을 구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현세적인 복은 영적인 복을 받기 위해 희생시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복을 구하되, 물질적인 복은 보너스로 받고 누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나라가 지금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위기에 대한 책임은 정치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있다면 마음을 낮추고 자복하고 돌이켜 하나님의 복을 다시 누리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복을 구하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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