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십계명의 제5계명을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시간 십계명의 서론에서 말씀드렸다시피 학자들 중에는 제5계명을 첫째 돌비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부모가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리인이기 때문에 첫 번째 돌비에 들어가는 것이 맞다고 하는 논리인 것입니다. 레위기 19장 3절에 보면“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경외하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 단어는 하나님께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부모를 경외하라는 말씀은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경외를 받도록 명하신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에 대한 존경과 순종은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모를 대리인으로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대사를 파송을 했을 때 대사를 대하는 태도는 그 대사 개인에 대한 태도가 아닙니다. 그 대사를 보낸 나라에 대한 태도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미국 대사를 나라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들어왔더라도 무례한 태도로 대했다면 그것은 대사 개인에 대한 태도가 아니라 그 대사를 보낸 나라에 대한 태도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모는 하나님이 보낸 대사 곧 대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창조주가 아니고 피조물이기 때문에 대신계명을 기록한 첫째 돌비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대인계명을 기록한 둘째 돌비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이 부분을 지난 시간 십계명의 서론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십계명의 제5계명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5계명은 십계명에 가장 가운데 있는 계명입니다. 그래서 위로는 대신계명 아래로는 대인계명의 가운데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두 돌판을 연결해주는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를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가시적인 판단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지도 않는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라면 부모도 마땅히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5계명은 부모공경이 하나님 공경일 뿐만 아니라 십계명 계명의 한 가운데 있기 때문에 부모 공경을 잘하는 사람은 인간사회 속에서도 다른 사람의 권위에 존경할 줄 알고 순종할 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 대한 공경 그리고 인간사회에서 정상적인 권위에 대한 공경 이 모든 것을 가운데서 결정해주는 핵심적인 요소가 부모에 대한 공경인 것입니다. 유교가 효를 강조한다고 하지만 기독교는 효를 가장 핵심적인 계명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5계명은 대신관계와 대인관계의 연결고리요 근본적인 원리인 것입니다.
I. 제5계명의 내용은 무엇인가?
첫째, 신명기 5장 16절에“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공경하라는 히브리어 원어가‘카바드’(כָּבַד)라는 동사입니다. 카바드는‘무겁게 만들다 비중이 있게 만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뜻은 부모가 자기 인생에서 매우 비중이 큰 존재라는 것입니다. 자기 인생에서 부모를 귀찮은 존재로 여기지 말고 아주 귀중한 존재 비중이 큰 존재로 여기고 존귀히 여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카바드라는 단어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이 단어를 명사로 바꿔서 쓰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할 때에도 많이 사용되는 단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부모를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공경받아야 될 마땅한 존재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래서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두리뭉실하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본문을 보면“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는데 여기서 인칭대명사가 다 단수로 되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부모공경의 명령을 각 사람 각 개인에게 주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에게 공경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공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경을 받으시든 안 받으시든 하나님의 명령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부모를 공경해야 되고 그 방법 또한 하나님이 명령하신 그대로 정확하게 공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공경의 대상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생물학적인 부모가 공경의 대상이 됩니다. 자기를 낳아주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결혼한 사람은 자기 아내의 장인과 장모까지 공경을 해야 합니다. 2) 생물학적인 부모가 아니더라도 부모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공경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재혼을 해서 양부모가 생긴 경우에도 공경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대신에 부모들은 재혼을 할 때 자녀들과 논의를 해야 하고 자녀들은 양부모를 공경할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고려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손들과 아무 상관없이 결혼하게 되면 자손들이 나중에 공경하기 어려운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부모는 동일하게 공경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먼저 나왔다고 해서 아버지를 더 공경받아야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레위기 19장 3절에“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라”라고 했습니다. 원어를 보면 너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경외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네 모부를 경외하라고 해야 하는데 우리말 단어에는 모부라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신명기 5장 16절에는 아버지가 먼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나 어머니가 먼저 나왔기 때문에 먼저 공경받아야 한다는 것은 성립될 수 없는 논리인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동일하게 다 공경을 받으셔야 합니다.
셋째, 부모공경의 이유에는 어떤 조건이나 이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라고 하는 존재는 산 사람의 생애에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는 다릅니다. 사람은 누구나 육신적인 생명을 부모로부터 받은 존재입니다. 옛말에 신체발모는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부모로부터 받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생명의 궁극적인 원천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부모는 직접적인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로부터 생명을 얻은 우리는 아버지를 닮았던 어머니를 닮았던 부모를 닮았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할아버지, 외할아버지라도 닮았습니다. 또한 우리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 생명뿐만 아니라 양육과 보호도 받습니다. 부모가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도 죽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를 낳아서 쓰레기통에 버렸다면 아이는 혼자 살지 못하고 결국 죽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모가 우리를 버리지 않고 보호해 주셔서 우리가 살아나게 된 것은 부모가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보살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까지 장성하고 건강하게 된 것이지 만약 우리에게 먹을 것을 안 주었다면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고 성장할 수가 있겠습니까? 부모가 우리에게 옷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헐벗지 않았지 옷을 안 주셨으면 우리가 벌거벗고 다니거나 헌옷이나 주서입지 않겠습니까? 또 부모가 우리를 공부시켜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무식한 존재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봐주시도록 사랑의 대리인으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통해 생명도 주시고 보호해주시고 양육해주시고 공부도 시켜주시고 결혼한 뒤에는 애프터서비스까지 해주시는 보통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부모님이 부족하다고 싫어하고 이렇게 저렇게 공격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닌 것입니다. 부모공경은 이유가 없습니다. 부모공경은 무조건 부모이기 때문에 공경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넷째, 부모공경을 명령받은 존재는 누구인가입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부모의 집에서 살고 있는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절에“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라고 했습니다.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는 것은 무조건 옳다는 것입니다. 또 결혼을 해서 독립한 자녀들도 여전히 살아계신 부모를 공경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4절에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며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부모가 연로해서 스스로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경우에 그 부모는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부모에게 혜택을 돌려줄 자녀가 없으면 손자가 그 혜택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부모가 옷도 사주고 밥도 해주셨으면 밥을 사드려야 되고 우리가 아플 때 돌봐주셨으면 돌봐드리고 병원비도 내어 드려야 합니다. 또 외로울 때는 외롭지 않도록 함께 해 드려야 됩니다. 이처럼 제5계명은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효(孝)라고 하는 단어가 분명히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어리던 어른이 되었던 다 부모를 공경해야 될 책임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다섯째,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에는 하나님의 결재(sign)가 나 있는 것입니다.“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싸인이 난 것입니다. 이것은 폐하거나 없앨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사람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폐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몹시 책망하셨습니다. 마가복음 7장 10-13절에 보면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하였거늘..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부모에게 드려야 될 것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리고 나서 고르반이라고 얘기합니다. 고르반이란 하나님께 드린 예물을 뜻합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드릴 예물을 하나님께 드렸기때문에 부모에게 안 드려도 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릴 것은 하나님께 드리고 부모에게 드릴 것은 부모에게 드려야지 부모에게 드릴 것을 빼앗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리고 부모에게는 안 드려도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으로 사람의 계명을 폐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주 잘못된 것이라고 크게 책망을 하셨던 것입니다.
여섯째, 부모공경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약속을 주셨습니다. 에베소서 6장 2-3절에“..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두 가지 약속입니다. 하나는 부모를 공경하는 효자에게는 하나님이 행하는 일에 성공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또 하나는 땅에서 생명의 장수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효를 행하면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그 결과로서 이런 하나님의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축복을 목적으로 공경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것은 안 됩니다. 부모를 공경하기는 싫은데 오래살고 싶어서 공경한다는 것도 안 됩니다. 부모 공경이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일 때 그 결과로서 하나님이 축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놀부가 흥부처럼 부자가 되고 싶어서 멀쩡한 제비 다리를 부러뜨려가지고 그 다음에 고쳐준다는 것은 축복 받을 마음이 아닌 것입니다. 흥부처럼 이미 부러진 다리를 자비심을 갖고 고쳐줘야 제비가 박씨도 갖다 물어주고 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효를 진심으로 행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그 결과로서 장수의 복과 성공의 복을 함께 주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반대로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어려서부터 부모를 힘들게 하는 사람, 담배피지 말라고 하는데 담배피고, 술 먹지 말라하는데 술 마시고, 나쁜 친구 사귀지 말라하는데 나쁜 친구와 사귀고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성공할 가능성이 굉장히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공부를 못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술 먹고 담배 피는데 언제 공부하겠습니까 또 나쁜 친구를 사귀면 죄에 빠지게 되고 건강도 잃고 병에 걸려 결국 일찍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 공경을 안 하는 사람은 성공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1986년부터 1991년까지 5년 동안 살고 공부하고 했는데 뉴올리언스를 알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그 당시에 팝송가운데 The House of Rising Sun이라는 노래가 있었는데 이 노래를 부른 팀은 The Animals(짐승들)라고 하는 팀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그 노래가 무슨 가사인지도 모르고 뉴올리언스가 나왔기 때문에 무작정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가 결국 뉴올리언스에 있는 침례교 신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노래 가사가 이렇습니다.“뉴올리언스에는 집이 하나있는데 그 집을 사람들은 해뜨는 집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인생을 망쳤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재단사로 내가 어렸을 때 청바지를 만들어주셨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도박꾼이었는데 항상 여행가방 두 개를 들고 다니셨습니다. 나의 아버지가 행복하고 만족한 순간은 술 취해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려서 아버지가 술 취하고 도박했기 때문에 집을 나가서 방황을 하다가 이제 열차를 타고 뉴올리언스로 다시 돌아갑니다. 그런데 내 발 하나는 기차 위에 얹어있고 다른 하나는 플랫폼에 얹어있는데 내 발에는 무거운 쇠사슬이 달려있습니다”라는 가사입니다. 죄수의 몸이 되어서 뉴올리언스에 있는 감옥에 가려고 기차를 타고 가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마지막에는 이런 가사로 끝이 납니다.“우리 엄마한테 내 말 좀 전해주시오 나같은 자녀가 되지 말라고 다른 자녀들한테 나같이 집 나가고 부모를 거역하고 그러다가 발목에 쇠고랑 차는 사람이 되지 말게 해달라고 전해주시오. 내가 살던 집은 해뜨는 집입니다.” 참 씁쓸하고 암울한 가사입니다. 여기서 가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라는 사람이 도박이나 하고 매일 술만 먹으니까 자식들이 결국 집을 나가서 부모공경도 못하고 거역하다가 결국 죄수의 몸이 되어 뉴올리언스로 끌려가고 있다는 내용의 노래인 것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뉴올리언스를 가게 되서 저는 5년 동안 공부도 하고 목회도 하게 되었습니다. 제5계명은 너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II. 제5계명의 신학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은 인간사회에 권위 있는 시스템을 두셨다는 것입니다(authority system) 우리는 권위주의라는 단어나 권위주의를 싫어합니다. 그런데 권위주의를 싫다고 해서 정당한 권리마저 배척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권위주의가 나쁘더라도 정당한 권위에 대해서는 인정을 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권위는 최고의 권위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권위는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2절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라고 했습니다. 가정에서 부모의 권위에 순종함을 배운 사람은 대신관계에서 하나님의 권위에도 순종할 줄 알게 됩니다. 대인관계에서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5계명에 대한 순종이 대신관계와 대인관계에 대한 핵심적인 연결고리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가정에서 부모의 권위에 순종하는 법을 배운 사람은 학교에서도 선생님의 권위에 순종할 줄 알게 됩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선생님께 대들고 욕하는 얘들은 뻔합니다. 집에서도 부모에게 순종 하지 않는 얘들입니다. 또한 부모의 권위에 순종하는 법을 배운 사람은 직장에서도 상사의 권위를 인정할 줄 압니다. 가정에서 부모에게 효를 행하는 자녀는 직장에서도 상사의 권위를 인정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또한 국가에서도 공무원의 권위를 인정할 줄 알고 교회에서도 목회자와 장로님들의 권위를 인정할 줄 압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주신 권위들을 인정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정에서부터 권위에 인정하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권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과 권위에 대해 순종하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나는 권위자가 부모입니다. 하나님은 부모를 통해서 권위에는 순종해야 된다는 것을 제5계명을 통해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자녀들이 잘못하면 근실하게 징계해야 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13장 13절에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자녀가 잘못하면 징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를 기죽일까봐 잘못하는데도 내버려두면 나중에 그 자녀는 부모공경을 배우지 못하게 되고 결국 그 부모는 자녀에게 공경을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징계하므로 자식은 부모공경을 배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잠언 23장 13-14절에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자녀를 징계할 때는 하나님이 안 죽게 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어려서 자녀에게 채찍을 몇 대 되면 커서는 안 되도 됩니다. 그런데 어려서 기죽인다고 채찍을 안 되면 나중에는 되려고 해도 그때는 힘이 약해서 될 수가 없습니다. 그때는 교정이 불가합니다. The House of Rising Sun의 가사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아이를 채찍으로 때리면 음부에서 구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정에서 이 권위에 순종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이토록 중요하기 때문에 마귀가 가정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가정의 무너지게 되면 교회도 힘을 잃게 되고 다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귀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하면 세대간의 갈등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세대간에 부모는 자식과 갈등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반대하고 대적하고 이 세대 간의 갈등이 심화되면 자동적으로 교회는 재앙이 오게 되고 국가는 다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의 권위, 부모의 권위가 절대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실 때는 권위라는 시스템을 두셨습니다. 가정에서나 국가에서나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교회에서나 다 권위라는 authority system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둘째, 인간의 권위는 하나님에게 받은 권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게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모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범위에 어긋나는 행위를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라고 하더라도 교회에 가지 말라, 하나님을 거역하라고 하는 교훈은 자식이 받아들일 의무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모가 잘못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절에도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라고 했습니다. 부모 순종도 주 안에서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순종하는 의무도 주 안에서 순종하고 부모가 양육할 때도 주 안에서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모의 권위도 하나님의 권위를 거스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권위가 있어도 가르쳐야 될 내용을 가르쳐야지 가르치치 말아야 할 잘못된 사상이나 이데올로기를 가르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지러운 사회가 되고 우리는 참 소망이 없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들도 하나님 말씀데로 정당한 법에 허용된 권위를 행사해야 됩니다. 또 아무리 공무원이라고 해도 법에 없는 것을 지키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 목사 장로라고 해도 성경과 어긋난 이단 사설 신비주의를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성경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권위의 행사도 가장 큰 권위자이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셋째, 정상적인 권위를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반항이고 죄의 본질입니다. 부모가 정상적인 권위를 행사하는데 자녀가 안 들으면 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반항인 것입니다. 그런 자녀들에게는 채찍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공무원의 권위를 거역하는 시민에게는 심판이 필요합니다. 군대를 가라고 하는데 안 간다면 감옥에 가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군대를 4년을 다녔습니다. 공군장교로 소위 1년 중위 3년을 했습니다. 28살때부터 32살까지 내 머리가 잘 돌아갈 때에 국가를 위해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국가가 하라고 했기 때문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안 가면 영창에 가는 것입니다. 요즘 군대 안 가는 것이 양심의 자유라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또한 목사와 장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교인에게는 권징이 필요합니다. 정상적인 권위를 거역하는 것은 반항이요 죄이기 때문입니다.
III. 부모와 자녀의 구체적인 의무는 무엇인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해설한 17세기의 영국의 청교도인 중에 토마스 빈센트(Thomas Vincent)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이 소요리문답을 해설할 때에 자녀가 부모에 대한 의무는 무엇이고 부모가 자녀에 대한 의무는 무엇인가에 대해 탁월하게 요약을 해 놓았습니다. 먼저 자녀가 부모에게 지는 의무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일곱가지 의무를 말하고 있습니다. 1) 내적으로 존경하라 2) 외적으로 공경하는 태도를 보이라 3) 부모의 교훈을 부지런히 마음에 새기라 4) 부모의 합법적인 명령에 의지적으로 순종하라 5) 부모의 정당한 책망과 징계를 받아들여라 6) 부모의 합당한 권고를 기꺼이 따르라 7) 부모에게 감사하고 노년기에 봉양하라.
그렇다면 부모가 자녀에게 지는 의무는 무엇인가? 1) 어린 시절에 부드러운 사랑으로 돌보아 주어야 한다. 2) 성경을 아는 지식을 갖도록 훈련해야 한다. 3) 자녀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선한 모범을 보여야 한다 4) 친절한 말로 격려해 주어야 한다. 5) 순종을 가르치되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는 것은 요구하지 말라 6) 현재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고 미래에 필요한 것도 예비해 주라 7) 자녀들의 재능과 취행에 따라서 좋은 직업을 갖도록 인도하라 8) 자녀들에게 합당한 가정을 이루도록 하라
결론
오늘날은 권위가 무너진 사회입니다. 가정에서의 부모의 권위 학교에서의 선생님의 권위 국가에서도 통치자의 권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권위라는 시스템이 너무나 무너져버려서 우리 사회가 위기가운데 처해 있습니다. 권위를 회복하는 길은 제5계명밖에는 없습니다. 가정에서 부모가 자식들에게 권위에 순종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효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나 사회가 안정되는 일이나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모공경을 잘해서 복을 받고 우리 자녀들도 부모공경을 잘해서 이 땅에서 성공하고 모두다 장수를 누리는 자녀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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