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신 5:22-33)

날짜 : 2018-03-04
본문 : 신명기 5:22-33

  신명기는 영어로 Deuteronomy로서 두 번째 강론 또는 율법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율법을 두 번째로 주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 주신 율법을 모세가 두 번째로 강론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처음으로 십계명을 강론했고 그리고 모압 평야에서 두 번째 강론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십계명의 결론이 되는 부분입니다. 십계명의 결론도 여전히 십계명 강론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의 서론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신명기는 전체적으로 고대 왕과 신하 사이에 맺는 ‘종주권 언약 문서’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신명기 5장도 마찬가지로 전체 구조가 왕과 신하 사이에 종주권 언약문서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주권 언약문서에는 6가지의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첫째, 전문입니다(Preamble). 전문이란, 언약을 누구와 맺고 있는가를 밝히는 것입니다. 신명기 5장 6절 후반부에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언약을 맺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후반부에 위치하고 있지만 영어성경은 전반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둘째, 역사적인 서언입니다(Historical Prologue). 왕이 백성들에게 무슨 일을 해주셨는지를 밝히는 부분입니다. 신명기 5장 6절 전반부에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라고 했습니다. 왕이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켜 준 일을 하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백성들은 왕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의무사항이 있습니다(Stipulation or Duties).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에 이러한 의무사항을 요구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런 것을 요구 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의무사항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그러므로 신명기 5장 7~21절까지는 의무사항인 십계명이 나와 있는 것입니다.    
  넷째, 언약문서를 공적으로 읽고 기록해 두는 것입니다. 신명기 5장 22절이 그 내용입니다. "여호와께서 큰 음성으로 이스라엘 총회에서 선포하시고 두 돌비에 기록하셔서 모세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적인 선언이고 공적인 기록인 것입니다. 
  다섯째, 언약체결의 증인들이 누구인가를 밝혀 두는 것입니다. 신명기 5장 23~27절까지가 그 내용입니다. “지파의 두령과 장로들”뿐만 아니라 온 회중이 다 증인이 되었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섯째, 상벌규정입니다(Blessings and curses). 언약을 지키는 경우에 왕이 베푸는 상은 무엇이며 또한 언약을 어기는 경우에  받는 벌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5장 28~33절의 내용이 여기에 해당이 됩니다. 그러면 오늘은 십계명의 결론 부분으로써 언약문서의 선언과 기록, 증인들, 상벌규정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I. 언약문서의 공적인 선언과 기록(22절) 
  첫째로 십계명의 공적인 선언이 있습니다. 신명기 5장 22절에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을 산 위 불 가운데 구름 가운데 흑암 가운데서 큰 음성으로 너희 총회에 이르신 후에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그것을 두 돌판에 써서 내게 주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의 언약을 말씀하실 때에는 모세나 천사들을 시키지 아니하시고 하늘에서 ‘직접’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십계명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에 시내산에 불과 구름과 흑암이 덮여 있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불과 구름과 흑암 가운데서 십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십계명을 공적으로 선언하실 때의 그 광경이 얼마나 엄위하고 인상적이었는지를 우리가 상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이 십계명을 말씀하실 때에는 작은 소리로 속삭이신 것이 아니라 큰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귀로만 들은 것이 아니라 큰 음성의 진동이 온몸을 다 흔들고 뼈마디가 녹을 정도로 하나님의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듣거나 잘 못 들었다고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말씀하시고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삶의 기준은 십계명만으로 충분하고 더하거나 뺄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윤리는 십계명으로 충분합니다. 십계명이 우리 성도들의 윤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독교 윤리를 십계명으로 말씀하시고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복잡한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십계명을 따라 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둘째, 언약문서의 공적인 기록입니다. 하나님은 이 십계명을 큰 음성으로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직접 손으로 쓰셔서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십계명을 종이 위에 쓰지 않으시고 돌판 위에 쓰신 이유는 십계명이 확정된 법이고 영원한 법임을 선포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돌비에 기록하신 것은 십계명이 객관성을 가진 명확한 법이기 때문에 어떤 혼란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는 법입니다. 우리는 법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법 자체가 혼란스럽고 객관적인 명확성이 없다고 한다면 ‘법의 지배’라는 원리도 아무 의미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법과대학 시절에 교수님이 법의 기원을 자연법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왜냐하면 17~18세기에 합리주의 자들이 법의 기원을 말할 때에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고 자연법(naturel law)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연법이란 사람마다 달리 말하고 인간의 이성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하는데 인간의 이성도 사람에 따라서 천차만별인 것을 보면 자연법도 객관성과 명확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연법을 말씀하지 않으시고 기록된 객관적이고 명확한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원리를 제시하신 것입니다. 
  십계명이 돌비에 기록된 또 다른 이유는 세대가 아무리 변화하더라도 하나님의 법은 보존되어야 하고 후손들에게 전수가 되어야 하며 백성들에게 읽혀져야 하기 때문에 돌비에 명확하게 기록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사람들의 구전에 의존하여 전수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돌비에 기록된 말씀을 일점일획도 떨어지지 않도록 변함없이 명확하게 기록해서 후손들에게 대대로 전수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늘에서 큰 음성으로 직접 말씀하신 것이고 두 돌비에 직접 기록하신 것이 십계명인 것입니다. 십계명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II. 언약체결의 증인들이 누구인가? 
  첫째, 온 회중들이 있습니다. 신명기 5장 23절에 “산이 불에 타며 캄캄한 가운데서 나오는 그 소리를 너희가 듣고 너희 지파의 두령과 장로들이 내게 나아와”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온 회중이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을 귀로 들었고 불과 구름과 흑암 가운데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영광을 그들은 직접 눈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온 백성이 200만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남자만 60만명이고 여자와 노인 어린아이까지 합하면 그 정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00만명이나 되는 온 회중이 하늘에서 들리는 큰 음성과 하나님의 영광을 모두 보고 들었던 증인들이었습니다.  
  둘째, 각 지파의 두령들과 장로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과 영광의 광경을 보고 들은 각 지파의 두령들과 장로들이 모세에게 나아온 것입니다. 그들이 나아온 것은 깊은 경외심과 깊은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죄인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때는  누구라도 다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 잡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죄인들이 하나님을 직접 만나게 되면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5장 25절에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여호와의 음성을 다시 들으면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더구나 모세도 두려워했다고 히브리서 12장 21절에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으나”라고 했습니다. 백성들과 두령들 뿐만 아니라 모세 자신도 두려움에 떨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렇게 죽음의 공포를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를 믿지 않는데도 천국에 갈 것이라 믿고 있는 사람이 베드로의 실수로 천국에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사람은 즉시 하나님을 보고 죽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는 절대로 들어갈 수가 없는 곳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뵙고 죽음의 공포에 떨었던 많은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사사기 6장 22~23절에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고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을 만나고 죽을까봐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안심하라 죽이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기드온이 거기에 단을 쌓고 그곳을 ‘여호와 샬롬’이라고 불렀습니다. 여호와 샬롬은 ‘여호와는 평강이시다’는 뜻입니다. 
  또 사사기 13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악을 행하여 40년 동안 블레셋 사람에게 고난을 당할 때 ‘기묘’라는 이름을 가진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와 그 아내에게 나타나서 아이를 낳을 것이고 그는 나실인이 되어 이스라엘을 블레셋으로부터 구원할 것이라고 예언을 해주었습니다. 그때 마노아가 생각하기를 ‘이 사람은 보통 분이 아니구나’를 깨닫고 여호와의 사자에게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드릴 때 여호와의 사자가 단 불꽃 가운데서 내려와서 소제물과 번제물을 사르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사기 13장 12~21절에 “마노아가 이에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그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노아의 아내가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시려 했다면 제사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후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대로 마노아의 아내가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삼손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사야도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면서 이사야 6장 5절에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6장 6~7절에서는 스랍천사가 단에서 취한 핀 숯을 입에 대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죽지 않고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죽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셋째, 백성의 대표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또 다시 듣게 된다면 우리가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하여 백성의 대표자들이 모세에게 나아와 간청을 하고 약속을 하고자 했습니다. 신명기 5장 27절에 “당신은 가까이 나아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하시는 말씀을 다 듣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당신에게 이르시는 것을 다 우리에게 전하소서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백성의 대표들이 모세에게 간청한 것은 중보자가 되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말씀을 잘 듣고 말씀대로 행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7절에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중보자로 해서 율법을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은혜와 진리의 중보자가 되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모세는 몽학 선생으로서 율법을 알려주는 중보자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실체로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하나님과 화목함을 주시는 중보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천국에 가려면 중보자가 있어야 합니다. 중보자 없이 자기의 의로 천국에 가겠다는 것은 착각입니다.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는 아무도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백성들의 대표는 이와같이 모세를 중보자로 요청을 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행하겠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언약을 체결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의 대표자들은 출애굽기 5장 27절에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넷째, 모세에게 배우는 교훈이 있습니다. 목회자는 중보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을 가까이해서 말씀을 충실하게 연구하고 성도들에게 말씀을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하나님께 순종을 약속해야 합니다. 순종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의 약속이 없는 사람은 성도라고 할 수 없고 복도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III. 언약준수에 따른 상벌규정(28~29절)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중보자를 요구하는 것을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신명기 5장 28~29절에 “여호와께서 너희가 내게 말할 때에 너희의 말하는 소리를 들으신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네게 말하는 그 말소리를 내가 들은즉 그 말이 다 옳도다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나의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중보자를 요구하는 그들의 말이 다 옳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성도들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깨닫고 중보자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크게 기뻐하시고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게 되면 우리 자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손들도 영원히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벌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바네아에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불순종함으로써 40년 광야에서 방황하게 되는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십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순종하며 살게 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영육간에 복을 받고 세상에서도 번창하는 복을 주십니다. 신명기 5장 32~33절에서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다시 한 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말씀대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면 영육간에 복을 받게 되고 세상에서도 번창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론 
  사람이 받는 구원은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본구원이고 또 하나는 건설구원입니다. 기본구원은 천국과 지옥을 결정해주는 것입니다. 기본구원은 십계명을 지켜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십계명은 기본구원을 위한 법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본구원의 원리는 내가 죄인이고 나의 죄값을 대신 갚아주신 중보자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중보자 예수그리스도가 주시는 믿음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이 선물을 받은 사람은 기본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고 천국에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건설구원이 있습니다. 건설구원의 원리는 기본구원을 받은 성도가 이 세상에서 형통하고 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십계명을 묵상하고 사랑하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구약이나 신약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야고보서 1장 25절에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십계명을 마음에 두고 십계명을 따라 행하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기본구원이 십계명을 지켜서 받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율법주의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복 받는 원리를 지키고 사랑하는 것은 건설구원이고 그것은 율법주의가 아닌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하나님이 행정하시는 원리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율법을 두 돌비에 주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법을 우리의 심비에 새겨주시고 우리 안에 성령을 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며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신약시대에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성령의 능력을 주시는 이유는 바로 이 십계명의 요구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도적질을 했지만 지금은 예수를 믿고 도적질을 하지 않게 되고, 과거에는 간음을 했지만 지금은 간음을 하지 않게 되고, 과거에는 사람을 죽이려고 했지만 지금은 사람을 살리려 하고, 과거에는 우상 숭배했지만 지금은 하나님만 섬기고 살아가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동일하게 십계명을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사람들은 복 받는 인생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다른 점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기도하고 성령충만을 받고, 십계명을 어긴 죄가 있으면 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씻음을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십계명을 따라 살면서 자기와 자기 후손들이 복 받기를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도 십계명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순종함으로써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영원한 복을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목록으로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